일본, 칸 경쟁 3편 진출…작가주의 생태계의 힘 [D:영화 뷰]
미니 시어터 토양 위에 자란 작가주의 영화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일본 영화계의 신구 거장들이 나란히 이름을 올리며, 일본 인디 영화가 지닌 견고한 인프라와 작가주의의 저력을 다시 한번 세계에 증명했다.
이번 경쟁 부문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상자 속의 양',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올 오브 어 서든'(AllofaSudden), 그리고 후카다 코지 감독의 '나기 노트'(Nagi Notes)까지 총 3편이 진출했다. 한국 영화계가 나홍진 감독의 '호프'를 통해 자본과 작가성이 결합한 대형 프로젝트의 힘을 보여준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은 개별 창작자의 독창적 문법이 산업 구조와 맞물려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세 감독은 저마다 칸과 긴밀한 관계를 쌓아온 인물들이다. 우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상자 속의 양'을 통해 통산 10번째 초청이자 8번째 경쟁 부문 진출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썼다. 2001년 '디스턴스'로 칸과 인연을 맺은 그는 2004년 '아무도 모른다'로 야기라 유야에게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안겼으며,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심사위원상을, 2018년 '어느 가족'으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에도 2022년 '브로커'와 2023년 '괴물'로 연달아 수상 릴레이를 이어간 그는 지난해 심사위원 활동에 이어 올해 다시 연출작으로 돌아왔다. 신작 '상자 속의 양'은 휴머노이드를 소재로 삼았으며, 아야세 하루카와 다이고, 신예 쿠와키 리무가 출연해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묻는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역시 '올 오브 어 서든'으로 경쟁 섹션에 부름을 받았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칸·베를린·베니스 소위 세계 3대 영화제를 모두 석권한, 현재 일본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다.
2021년 '드라이브 마이 카'로 제74회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까지 품었다. 같은 해 '우연과 상상'으로 제7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2023년에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제8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번 신작 '올 오브 어 서든'으로 칸 경쟁 부문에 재차 도전하는 하마구치는, 3대 영화제를 모두 경유한 작가주의 감독이 칸의 최고 영예에 다시 한번 도전하는 그림을 만들어냈다.
후카다 코지는 2016년 '하모니움'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그 공로로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기사장(슈발리에)에 추서됐다. 팬데믹으로 온라인 전환됐던 2020년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더 리얼 씽'이 공식 초청되는 영예를 누렸고, 2025년 제78회 칸 영화제에서는 '연애재판'이 칸 프리미어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번 제79회에서 신작 '나기 노트'로 처음으로 황금종려상 경쟁 부문에 진입하게 됐다.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시작해 단계적으로 경쟁으로 진입한 후카다의 발걸음은 신구 세대가 나란히 경쟁 무대에 오른 이번 라인업의 구조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이들의 칸 경쟁 진출 배경에는 일본 영화 산업 특유의 이중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 상업 영화 시장은 애니메이션과 만화 원작 영화가 흥행을 주도하는 구조다. '귀멸의 칼날', '원피스', '드래곤볼' 같은 메가 프랜차이즈가 극장 스크린 대부분을 점유하는 동안, 그 이면에는 상업 영화와 분리된 채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해온 인디·작가주의 영화의 인프라가 존재한다.
이 인프라를 지탱하는 핵심은 전국 각지에 뿌리내린 미니 시어터 네트워크다. 도쿄의 유로스페이스나 오사카의 시네마 클레르 같은 공간들은 실험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상영하면서 신인 감독들의 첫 발표 무대가 돼왔다.
이러한 극장들은 단순한 상영 공간을 넘어서 감독과 관객이 직접 대화하는 커뮤니티로 기능하며, 작가주의 영화가 소규모 관객과 관계를 맺고 입소문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특히 후카다 코지 감독이 독립 제작 방식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으면서도 국내 관객 기반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소극장 네트워크의 존재 덕분이었다. 실제로 팬데믹으로 미니 시어터들이 줄줄이 폐관 위기에 처했을 때, 후카다 코지와 하마구치 류스케는 직접 미니 시어터 살리기 모금 운동에 나서며 이 공간들과의 연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물론 고레에다 히로카즈처럼 상업 자본과도 유연하게 협업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감독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미니 시어터와 인디 씬이라는 토양 위에서 출발한 커리어라는 점에서 맥락은 다르지 않다.
이렇게 축적된 필모그래피는 자연스럽게 국제 영화제 회로와 연결됐다. 로테르담, 베를린, 로카르노 같은 유럽의 영화제들이 일본 인디 영화를 조기에 발굴해 세계 무대에 소개하면서, 일본 작가주의 감독들은 국내 상업 자본 없이도 국제적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경로를 확보했다.
극장 기반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감독이 해외 영화제에서 다시 검증받고, 그 성과가 다시 국내 인프라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했다.
이 지점에서 같은 경쟁 부문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한국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4년의 공백 끝에 한국 영화가 다시 칸 경쟁 부문에 내민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이 한국인 최초로 심사위원장을 맡은 해에, 한국 영화는 봉준호·박찬욱·나홍진으로 이어지는 검증된 작가들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칸의 중심부에 진입했다. 성과 자체는 분명하다.
그러나 일본이 세 편을 들고 온 방식과 한국이 한 편을 들고 온 방식 사이에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차이가 있다. 일본의 세 편은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미니 시어터 네트워크와 인디 생태계가 서로 다른 속도로 성장한 감독들을 경쟁 부문까지 밀어올린 결과다. 한국 역시 전주·부산 등 국제영화제와 독립영화 씬을 통해 새로운 작가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고, 윤단비·이옥섭 같은 감독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그 성과가 칸 경쟁 부문이라는 가장 높은 무대까지 이어지는 경로가 아직 충분히 넓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 영화가 쌓아온 국제적 위상을 다음 세대가 이어받기 위해서는, 독립영화와 인디 씬에 대한 산업적 관심이 지금보다 더 촘촘해질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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