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임신했어요" 다시 나를 찾은 산모
산모·신생아 관리사로 7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돌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며 생각한 이야기들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박영선 기자]
"관리사님, 저… 셋째 임신했어요."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재작년 11월, 둘째 아영이를 돌봤던 집이었다. 반가움보다 먼저 놀라움이 앞섰다. 아영이를 품에 안고 등을 두드리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셋째라니.
"출산일이 다가오니까 관리사님 생각이 제일 먼저 나서요. 혹시… 이번에도 다시 와주실 수 있을까요?"
전화를 끊고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짧은 통화였지만,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닌, 나여야만 한다는 확신이 전해주는 묵직한 울림이었다. 그 집의 풍경이 영상처럼 눈앞에 또렷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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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관문 벨을 누르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마주한 현관문입니다. AI 생성 이미지 |
| ⓒ AI 생성 이미지 |
돌봄 현장은 늘 아기만을 위한 정적인 공간은 아니다. 특히 큰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시간이 조금 다른 속도로 흐른다. 아영이는 유난히 분유를 잘 먹는 아이였다. 잘 먹는 아이는 순했고, 잘 잤다. 아기가 깊은 잠에 빠져들면 비로소 집안에 고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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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의 웃음으로 채워지는 거실 첫째 아이와 풍선을 불며 교감하는 평온한 일상의 한때입니다. AI 생성 이미지 |
| ⓒ AI 생성 이미지 |
"이모, 가지 마요. 나랑 더 놀아요."
그 짧은 말 한 마디가 퇴근길 자동차 창가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돌봄은 아기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을 지탱하는 모든 구성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임을 그때 다시금 깨달았다.
모든 만남이 인연이 되지는 않지만 산후관리사로 일을 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모든 만남이 다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정해진 일정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지만, 가끔은 '관리사 지정'이라는 특별한 선택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단순히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넘어, 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최상급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물론 마음이 있어도 모든 인연이 이어지지는 않는다. 산모의 출산일이 갑자기 바뀌거나 관리사의 일정이 꽉 차 있거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때는 아쉽게 어긋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다시 연결되는 인연은 기적처럼 더 또렷하게 남는다.
"관리사님, 저 셋째 임신했어요."
다시 떠올려봐도 그 한 마디 안에는 먼저 '공동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힘들고 막막했던 산후의 시간을 함께 견뎌낸 전우애 같은 믿음 말이다. 이런 인연은 돌봄이 끝난 뒤에도 끊기지 않는다.
"관리사님, 우리 아기 이렇게 컸어요."
가끔 전해오는 사진 속 아기는 내가 처음 만났던 그 신생아 얼굴이 아니다. 어느새 또렷해진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웃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잠깐의 시간을 함께했을 뿐인데,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마음은 마치 멀리 있는 손주를 보는 것처럼 뭉클하다.
다시 그 집의 문을 두드릴 준비를 하며 다음 주부터 나는 다시 그 집으로 간다. 이번에는 셋째 아기다. 도현이는 얼마나 의젓해졌을까. 갓난쟁이였던 아영이는 어떤 장난꾸러기가 되어 있을까. 강아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줄까. 생각만으로도 그 집의 아침 풍경이 그려진다.
나는 이제 안다. 산후 돌봄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 종료되는 단순 노동이 아니라는 것을. 인생에서 가장 취약하고 고단한 시기를 함께 통과한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향기처럼 남아, 다시 서로를 찾게 만든다.
현관문을 열면 다시 시작될 소란스러운 환영. 나는 그 소중한 인연의 끈을 다시 정성껏 이어보려 한다. 다시 나를 불러준 그 따뜻한 신뢰에 보답하는 길은, 그저 변함없는 온기로 아이와 산모를 품어주는 일임을 잘 알기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돌봄의 자리가 아닌, 꼭 당신이어야 한다는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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