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자본규제 풀린다…24조 투자여력, ‘투자자 전환’ 신호

김미현 2026. 4. 21. 06:0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금융당국이 보험사 자본 규제를 손질해 최대 24조원 규모 투자 여력을 풀기로 했다. 보험사를 단순히 보험금을 지급하는 기관이 아니라, 장기 자금을 움직이는 투자자로 활용하겠다는 신호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보험업권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핵심은 위험계수를 낮춰 투자 부담을 줄이고, 인프라·벤처 등 생산적 분야로 자금 흐름을 유도하는 데 있다.

위험계수 낮춰 ‘투자 문턱’ 완화

보험사는 투자할 때마다 ‘위험계수’를 적용받는다. 자산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면 그만큼 추가 자본을 쌓아야 한다. 정부는 이번에 이 기준을 낮춰 같은 자본으로 더 많은 투자가 가능하도록 했다. 특히 정책펀드와 벤처투자 규제를 크게 완화했다. 정책펀드 위험계수는 기존 49%에서 20% 이하로, 벤처투자는 49%에서 35%로 낮아진다. 그만큼 보험 자금이 이들 분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투자 대상도 넓어진다. 기존에는 도로·항만 등 전통 인프라 중심이었다. 앞으로는 신재생에너지나 인공지능(AI) 관련 시설까지 포함된다. 보험 자금이 미래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부채 규제도 함께 완화됐다. 자산과 부채의 현금 흐름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도 일정 범위에서는 인정해준다. 여기에 유동성 프리미엄 산출 기준을 넓혀 수익증권 등 다양한 자산을 반영할 수 있게 했다. 이 경우 보험부채를 계산할 때 적용되는 할인율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부채 규모는 줄어든다. 자본비율은 자연스럽게 개선된다.

당국은 이번 조치로 보험사가 최대 24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 여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 감독규정과 시행세칙 개정을 통해 제도화를 마칠 계획이다. 보험업계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본 규제를 덜 신경 쓰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더 다양하게 가져가며,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자산도 검토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실제 자금이 얼마나 ‘생산적 분야’로 흘러갈지는 별도 문제다.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위한 안정성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만큼, 고위험 투자 확대에는 여전히 신중할 수밖에 없다. 당국 역시 이를 의식한 듯 “확보된 자금이 실제 생산적 부문으로 집행되는지 지속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해외는 ‘투자 설계’까지…한국은 ‘규제 완화’ 중심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국내가 나아갈 방향도 가늠할 수 있다. 국내는 위험계수 조정 등 규제 완화에 초점을 둔 초기 단계다. 반면 해외는 자금이 실제로 흐르도록 ‘통로’를 설계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국내가 투자 여지를 넓힌 수준이라면, 해외는 자금 흐름 자체를 구조화한 셈이다. 규제 완화가 실제 투자 확대로 이어질지, 아니면 회계상 여력 확대에 그칠지는 향후 이 같은 단계 전환 과정에서 판가름 날 거란 관측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는 정부가 일정 기준을 충족한 펀드에 ‘라벨’을 부여하고 보험사·연기금 등 장기 자금을 해당 펀드로 유도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2025년 3월 기준 장기 투자자 37곳 가운데 23곳이 보험사·상호보험사로, 보험업권이 핵심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성과도 수치로 확인된다. 1단계(2020~2022년)에서는 21개 기관투자자가 약정한 60억유로를 넘어 64억유로를 실제 투자했다. 2단계(2023~2026년)는 추가 70억유로 이상, 최대 90~100억유로까지 확대를 목표로 설정했다. 정부가 일정 기준으로 투자 대상을 선별하고 인증한다는 점에서 ‘투자 허용’에 그친 국내보다 한 단계 적극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은 규제 완화를 넘어 시장 구조까지 손보는 ‘패키지형’ 접근을 택했다. 대학·연구기관·기업·투자자를 연결하고, 재간접 펀드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초기 상용화부터 성장, IPO, 세컨더리 시장까지 ‘진입–성장–회수’ 전 단계를 아우르는 투자 생태계를 함께 정비했다. 제도 정비도 병행됐다. 독일 정부는 자산운용 규정(Anlageverordnung)을 개정해 위험자본 투자 한도를 35%에서 40%로 확대하고, 인프라 투자에 별도 5% 한도를 부여했다. 벤처펀드 재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 이연 등 세제 지원도 도입했다.

영국은 보험사 자본규제 개편을 통해 투자 여력을 넓힌 사례다. 브렉시트 이후 기존 유럽 규제를 자국 실정에 맞게 손본 ‘솔벤시 UK(Solvency UK)’를 2024년 도입했다. 핵심은 위험마진 축소와 매칭조정 요건 완화다. 위험마진은 보험계약을 다른 회사로 넘길 때 추가로 쌓아야 하는 자본인데, 영국은 이를 생명보험은 약 65%, 손해보험은 30% 줄이는 방향으로 계산 방식을 바꿨다. 특히 장기 생명보험 부문에서 상당한 자본 여유가 생기도록 설계됐다. 실제로 2024년 한 해에만 약 109억파운드의 자금이 사회주택, 에너지, 교통 등 생산적 자산에 투자됐다. 보험 자본 규제 개편이 단순한 회계 조정이 아니라 실제 자금 흐름 변화로 이어진 사례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박지원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사는 국채와 우량 회사채 중심의 보수적 운용 관행을 유지해 왔고, 새 지급여력제도 도입 초기 단계”라며 “소규모 시범사업이나 공동펀드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성과와 리스크를 점검하면서 규제 보완과 투자 인프라 개선을 병행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미현 기자 mhyunk@kukinews.com

Copyright © 쿠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