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간신히 살려낸 반달곰, 지리산 너머 인간영역 엿본다

천권필 2026. 4. 21. 05: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07년 회수된 반달가슴곰 천왕이가 지리산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에 머물고 있다. 천권필 기자

갓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가슴에는 하얀 무늬가 선명했다. 멸종위기 1급 반달가슴곰이다.

" 천왕봉에서 등산객들이 가져온 음식을 먹다가 2007년에 회수된 ‘천왕’이에요. 이젠 스무살이 넘어서 사람으로 치면 할아버지가 됐죠. "
김한울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주임이 우리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난달 27일 방문한 지리산국립공원 생태학습장에는 자연 적응에 실패하거나 문제를 일으켜 회수된 반달가슴곰 14마리가 살고 있었다. 인간과의 충돌, 피해 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복원 20년 만에 100마리로…행동권 서울 면적 맞먹어


지리산 생태학습장에 살고 있는 반달가슴곰. 천권필 기자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에 자연 서식하는 반달가슴곰은 96마리로 추정된다. 올해 초에도 최소 2마리의 새끼가 태어난 것으로 확인된 상황이라서 100마리에 도달했을 가능성도 있다. 2004년 러시아에서 들여온 반달가슴곰 6마리를 지리산에 처음 방사한 후 20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그 사이 서식권은 지리산 밖까지 넓어졌다. 야생생물보전원이 위치추적기가 달린 반달가슴곰의 좌표를 분석한 결과, 행동권 면적은 복원 초기였던 2005년 154㎢에서 지난해 541㎢로 3.5배가량 늘었다. 서울에 맞먹는 면적(605.21㎢)까지 활동 영역이 확대됐다.

김경진 기자


2005년 방사 지역 주변에서 활동하던 반달가슴곰은 십년 뒤인 2015년엔 지리산국립공원 전역으로 퍼졌다. 지난해엔 지리산국립공원에서 북쪽으로 20㎞ 떨어진 전북 장수군 장안산에도 나타났다. 남쪽의 칠성봉(경남 하동), 동쪽의 웅석봉(경남 산청) 등으로도 행동권이 확대됐다. 이사현 야생생물보전원 서식지보전부장은 “지리산 바깥으로 벗어난 개체는 대부분 수컷인데, 그곳에는 암컷이 없다 보니 지리산을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매년 벌꿀 등 피해 발생 “일부 문제곰 때문”


곰깸 시즌을 맞아 지리산 지역주민과 반달가슴곰의 공존을 위해 열린 축제에서 어린이들이 노래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주민들은 반가움과 우려가 뒤섞인 반응이다. 이날 곰깸 시즌을 맞아 열린 공존문화행사에 참석한 이옥주 구례군 문수마을 이장(61)은 “반달가슴곰이 우리하고 같이 산다는 데는 어느 정도 적응됐지만, 개체 수가 너무 많아지면 혹시라도 피해가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박동식 평도마을 이장(70)은 “멸종된 반달가슴곰을 복원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곰이 겨울잠을 잔다는 이유로 임산물 채취를 못 하게 접근 금지를 할 때면 사람보다 곰이 더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곰이 양봉장에 침입해 벌꿀을 먹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2004년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반달가슴곰으로 인해 총 608건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84%가 벌꿀 피해였다. 지난해엔 총 18건의 벌꿀 피해가 발생해 7000만 원의 배상금이 지급됐다.

지리산국립공원 양봉지에 반달가슴곰 피해를 막기 위해 전기울타리를 쳤다. 천권필 기자

때문에 야생생물보전원은 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를 앞서 양봉지 주변에 전기 울타리를 치고, 종주 능선을 따라 ‘베어벨’을 달고 있다. 이 부장은 “반달가슴곰 대부분은 사람이나 민가를 회피하는데, 최근 발생한 피해의 대부분을 문제곰 2마리가 일으키고 있다”며 “충돌이 반복될 경우 해당 곰을 회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日 곰 습격에 충돌 우려…“넓어진 서식지 관리 숙제”


2020년 러시아에서 들여온 이후 지리산 생태학습장에 살고 있는 반달가슴곰. 천권필 기자
최근에는 일본에서 곰이 인간을 습격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반달가슴곰과 인간의 충돌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곰 공격으로 사망자 13명을 포함해 23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반달가슴곰 복원 프로젝트를 백두대간을 따라 확장하려던 계획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2020년 러시아에서 데려온 4마리도 7년째 방사하지 못하고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

양두하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장은 “과거 복원 사업이 개체 수를 늘리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반달가슴곰이 자연스럽게 서식지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숙제”라고 말했다.


곰과 공존 가능할까 “사회 수용력 고려해야”


지리산국립공원 탐방로에 걸린 반달가슴곰 경고문. 천권필 기자
전문가들은 반복적으로 갈등을 일으키거나 사람에게 위험을 주는 곰을 중심으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데이브 가셸리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곰전문가그룹 공동의장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국민을 곰과의 부정적 접촉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곰 복원 사업의 지속적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며 “공존은 갈등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잘 관리되고 있다는 이해와 신뢰로부터 형성된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적정 개체 수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본의 경우, 곰이 5만여 마리로 증가한 데 반해 농촌 인구는 급감하면서 사람과 곰 사이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분석이다.

야마자키 고지 전 도쿄농업대 산림종합과학과 교수는 “일본은 농촌 인구 감소로 농경지가 방치되면서 2차 활엽수림으로 전환되고 있고, 곰 침입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리산의 생태 및 사회 수용력에 부합하는 적정 개체 수를 설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개체군과 분포를 함께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구례=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