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안전 앱’ 도입했더니 교섭 의무…중처법 지키려다 노봉법 걸렸다

이영근 2026. 4. 21.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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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조성 중인 SK하이닉스 반도체 일반 산업단지. 1기 팹은 내년 2월 가동을 앞두고 있다. 우상조 기자


SK에코플랜트가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상 사용자성 인정 판단을 받았다. 반도체 핵심 인프라 공사 현장에서 원청의 하청노조 교섭 의무가 인정된 첫 사례다. SK에코플랜트는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일반산단 신규 팹(Fab·반도체 생산공장)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거점인 청주 M15X 공장 건설을 맡고 있다. 반도체 수퍼사이클(초호황기) 속 글로벌 기업들이 일제히 증설 경쟁에 나선 가운데, 노조 리스크가 공사 일정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민주노총 전국플랜트건설노조(플랜트노조)가 SK에코플랜트를 상대로 제기한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지난 17일 기각했다. 하지만 SK에코플랜트의 사용자성은 인정했다. SK에코플랜트가 판정을 수용하면 단일화된 노조의 교섭 공고를 거친 뒤 실제 교섭이 이뤄진다. 다만 판정이 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SK에코플랜트의 사용자성이 인정된 가장 큰 이유는 ‘안전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 행사’ 여부였다. 플랜트노조는 원청(SK에코플랜트)이 안전·공정·작업 방식 전반을 통합관리하며 현장을 지배·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장 안전관리 시스템인 ‘안심 앱(애플리케이션)’ 운영과 안전 준수 하청 직원 포상, ‘3심 아웃제’ 등을 통제의 근거로 들었다. 5년 전 SK에코플랜트가 도입한 안심 앱은 하청이 위험성 평가·작업계획·보호구 착용 등을 직접 관리하고 원청은 이를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안전 놔두면 중처법, 안전 챙기면 노봉법


SK에코플랜트는 하청에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하청업체들이 매출 수천억~1조원 규모의 전문건설업체로 자체 시공 능력과 안전관리 조직을 갖춘 독립된 경영 주체라는 점 ▶임금·수당·근로시간 등은 하청업체가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 및 개별 근로계약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된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특히 사측은 안심 앱이 기존에 복잡한 안전 서류 업무를 디지털화해 현장의 안전 관리를 개선하기 위한 도입된 것이라며 “이를 이유로 ‘원청이 하청에게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보는 것은 산업안전법상 도급인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을 피하기 위해 안전을 강화하다 사용자로 인정되는 역설적 상황”이라며 “원청은 안전을 강화하면 노봉법에 걸리고, 안 챙기면 중처법 부담을 지는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토로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 첫날인 지난달 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건설 지연시 비용 증가 넘어 경쟁력 저하”


또 다른 쟁점은 노조의 대표성이었다. 노조에 따르면 용인·청주 현장의 플랜트건설노조 조합원은 510명으로, 전체 근로자 약 2만3000명 중 0.22%에 불과한 인원이다. SK 측은 1% 미만 소수 인원의 근로 조건에 대한 지배·통제권이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이 역시 인정되지 않았다.

이번 판단으로 업계는 반도체 공장 건설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용인 일반산단 내 197만㎡ 부지에 팹 4개를 건설할 예정인 SK하이닉스는 1기 팹 클린룸 오픈 시점을 2027년 5월에서 2월로 앞당긴 상태다. 최근 메모리 공급 부족이 심화하면서 고객사 주문이 급증하자 생산 시점을 최대한 앞당기기 위해서다.

공사비 증가 우려도 제기된다. 앞서 플랜트노조는 주요 건설사에 ‘위험수당 현실화’, ‘적정 임금제’, ‘최저가 입·낙찰제 금지’ 등 21개 요구안을 제시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메모리 반도체 초호황기인 지금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할 시기인데, 공장 건설이 지연되면 비용 증가를 넘어 경쟁력 저하로 직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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