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내가 대통령 해야겠어!”…MB는 현대 떠날 결심했다
「 이명박 회고록 」
「 제1회 기로에 서다 」
1991년 11월의 어느 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나를 호출했다.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직을 비롯해 숱한 현대그룹 계열사의 요직을 맡고 있던 때였다. 내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가 흥분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 이 회장, 도저히 더는 견딜 수가 없어. 어떻게든 핍박을 견디고 버텨보려고 했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1300억원이 뭐야, 1300억원이! "

그는 그 직전 세무당국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거쳐 현대그룹과 정 회장 일가에 부과한 1361억원의 추징세액을 언급했다. 당시 현대와 노태우 정권의 악연은 뿌리 깊었다. 노태우 정권은 출범 이후 강력한 재벌 규제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현대를 문어발식 확장의 핵심그룹으로 지적하면서 규제의 타깃으로 삼았다.
정 회장도 참지 않았다. 정부 정책에 반발해 비판을 쏟아냈다. 자연스레 정권과 정 회장의 관계는 점점 더 악화했다. 그 결과가 그 세금 부과였다.
정 회장은 한참을 격노하며 세무당국, 그리고 배후에 있던 정권의 만행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다가 갑자기 나를 기습했다.
" 세금 내지 말고 차라리 그 돈 갖고 내가 정치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 "
깜짝 놀랐다. 나는 완곡하게 그를 말렸다.
" 회장님. 노태우 정권이 너무 심한 것도 맞고 그것 때문에 화가 많이 나신 것도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재벌 총수가 정치를 하는 게 온당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해주십시오. "
정 회장은 “생각 좀 더 해보라”며 나를 돌려보냈다. 그러더니 그해 11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세금 낼 돈이 없다”며 과세 불복 선언을 했다.

그건 그대로 정권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그 순간 시중에 나돌던 정주영의 정치 입문설 또한 빠르게 확산했다. 가족과 임원들이 말렸지만 돌아온 건 불호령뿐이었다.
" 내가 만든 회사인데 망해도 내가 망하는 거지! 뭐, 어때서 그래! "
하지만 여론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정 회장은 과세 불복 선언 이틀 만에 그걸 번복했다. 그 직후 새벽 출근길 중앙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내가 직접 정계에 진출하지는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치 입문 의지가 다소 약해진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정 회장이 또 다시 나를 불렀다. 그리고 폭탄선언을 했다.
" 나는 대통령이 될 거야. 그러면 말이야, 당신은 국무총리가 되는 거야. "
정 회장은 경악한 나를 보고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 나하고 당신이 손잡고 힘을 합쳐서 현대그룹을 이렇게 잘 이끌고 있잖아. 마찬가지야. 내가 대통령으로 큰 틀에서 이끌고, 당신이 총리로 실질적인 일을 처리해나가면 현대그룹처럼 국가도 잘 운영할 수 있을 거야. "
아무래도 반대가 충분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완곡하게 반대한 걸 두고 내 생각을 오해한 듯했다.
" 회장님! 총리가 되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 뜻은 재벌 총수인 정주영 회장님께서 정치를 하시면 안 된다는 겁니다. "
나는 말을 이어갔다.
" 회장님께서 대통령이 되시면 누구보다도 훨씬 더 잘하실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정경(政經) 유착이니 뭐니 말이 많은데 재벌 총수가 정치를 한다면 아예 정경이 같아지는 거 아닙니까. 또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같은 더 젊은 기업인들도 ‘나도 대통령 해야겠다’며 앞다퉈 정치에 뛰어들 겁니다. 그렇게 되면 경제가 흔들리고 정치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됩니다. "
정 회장의 얼굴에서 불쾌한 기색이 엿보였다. 하지만 내친 김이었다.

"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게 다 회장님께서 토대를 만드신 것 아닙니까. 저는 이걸 더 키워서 경제를 더 발전시키는 게 정치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정치는 유한합니다. 회장님께서 대통령이 되신다 해도 겨우 5년 밖에 못 합니다. 하지만 경제에 공헌하는 건 평생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회장님의 숙원인 남북 교류 확대도 정치인으로서보다는, 경제인으로서 훨씬 더 잘하실 수 있습니다. "
나는 열변을 토했지만 정 회장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이미 정 회장은 은밀하게 창당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에게 필요했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지난 20년 이상 최측근이자 조력자, 조언자였던 나였다. 심기를 불편하게 할 정도의 직설적인 반대 의견 표명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이 “조금만 더 생각해보라”며 나에게 재차 말미를 준 이유였다.
그 뒤에도 나와 몇 차례나 줄다리기를 반복한 정 회장은 1991년이 저물어가던 어느 날 “연말까지 결정하라”고 최후통첩했다.
진퇴양난이었다. 정 회장의 정계 진출에 찬성할 수도, 그를 따라 신당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정 회장의 뜻에 반대해놓고 현대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도 말이 안 됐다.
‘떠날 때가 된 것인가!’
아닌 게 아니라 나는 1980년대 말부터 이미 현대그룹을 떠나는 시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월급쟁이로서 정점에 섰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2세들이 충분히 성장한 만큼 내가 없어도 현대는 잘 운영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운신(運身)을 생각했다.
게다가 그 무렵 정 회장과 나의 관계는 예전 같지 않았다. 1990년 초 뜻밖의 손님들이 나를 찾아오면서 촉발된 한 사건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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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통령 될거야, 당신은...” MB 경악한 정주영 폭탄 발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7558
"왜 내가 주인공 아니야!" 정주영·MB 갈라놓은 '결정적 사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8505
■ 이명박 회고록 및 단독 인터뷰 전문공개
「 〈이명박 회고록〉
“이명박이란 놈이 건방지게!” 박정희 움직인 당돌한 편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1334
“이명박 이름만 돌림자 안썼다” MB, 친모 일본인설에 꺼낸 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9441
“너 인마, 그딴 걱정을 왜 해!” MB 고대 보낸 ‘헌책방 욕쟁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0363
〈이명박 전 대통령 단독 인터뷰〉
“인정하자, 보수는 참패했다” 이명박, 13년만에 처음 입 열다 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5706
尹, 수감중인 MB에 한 부탁 “UAE 국왕에게 편지 써달라” ②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5970
“그말 하니까 눈물이 다 나네” MB 울린 ‘한반도 대운하’ 좌절 ③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6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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