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억대 연봉자의 푸념…그 뒤엔 8800만원에 갇힌 근소세

억대 연봉자가 10년 새 3배로 늘어 154만 명을 기록했다. 근로소득세 고율 과세 구간인 ‘8800만원의 벽’은 2008년 이후 그대로여서 유리 지갑인 직장인을 겨냥한 소리 없는 증세가 예고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투기용 부동산에 세제 혜택을 줄 바엔 열심히 일한 근로자의 세금을 깎아주는 게 낫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근소세 개편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20일 중앙일보가 국세통계포털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연말정산(2024년 귀속 신고자) 기준으로 총급여액이 1억원 이상인 억대 연봉자는 154만6000명이다. 1년 새 15만여 명 증가했다. 2014년엔 52만6000명에 불과했는데 10년 새 3배로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전체 근로소득자에서 억대 연봉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3.2%에서 7.3%로 2배 넘게 불어났다.

근로소득세는 국가가 직장인 월급에서 떼가는 세금(세율 6~45%)이다. 2024년 귀속 신고 기준 억대 연봉자가 전체의 57.2%를 부담하고 있다. 특히 과세표준(근로소득금액에서 각종 공제금액을 제외한 금액)이 8800만원을 넘어서는 순간 세율이 24%에서 35%로 뛴다. 2008년 이후 수차례 세법개정이 이뤄졌지만 ‘과세표준 8800만원 초과시 35% 세율 적용’ 기준은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근로소득세 기본공제액도 2009년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오른 후 그대로다.
정부는 2014년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를 위해 최고세율 과표를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낮추기도 했다. 국가데이터처의 화폐가치 계산기를 활용해서 2008년의 8800만원을 지난해 가치로 환산하면 약 1억2566만원이다. 물가 상승분을 반영하면 세율 구간이 1억2500만원대로 올라야 맞지만, 17년째 제자리다. 소리 없는 증세란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월급을 빼면 소득이 거의 없는 ‘흙수저 고소득자’들은 억대 연봉이 마치 신기루 같다고 호소한다. 시중 대형은행에 다니는 차모(41) 과장은 “연봉은 1억원이 넘지만 무주택자라 항상 박탈감에 시달린다”며 “연봉이 적더라도 부모가 주택 구입 자금을 보태주는 ‘저소득 금수저’가 훨씬 여유로운 삶을 꾸릴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 재직 중인 박모(40)씨도 “연봉이 8000만원에서 1억원이 되기까지 4년 걸렸는데 그사이 물가는 오르고, 애들 학원비도 더 드니 체감은 전혀 안 된다”며 “세금 내고 나면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 한 번 안 가고 대출만 갚아도 허덕이는데, 여전히 배부른 소리라고들 한다”고 푸념했다.

정부 입장에서 근소세 수입은 경기 하강 국면 법인세·양도소득세수가 흔들릴 때도 든든한 재정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근소세 수입은 역대 최대인 68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반도체 경기 회복에 성과급 등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12.1%(7조4000억원) 증가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근소세는 2016년(31조원) 이후 연평균 9.2%씩 가파르게 상승했다. 근로소득 연말정산 신고자도 2108만 명으로 2015년(1733만 명) 대비 21.6% 증가했다. 하지만 생산인구 감소, 성장 정체 가능성을 고려하면 ‘유리 지갑’에 기댄 세수 증가는 한계에 봉착할 거란 우려가 크다.
전문가들은 이런 ‘브래킷 크리프(Bracket Creep·물가 상승에 따라 명목 소득 증가, 실질 구매력은 늘지 않아도 더 높은 세율 구간을 적용받는 현상)’를 방치하면 근로의욕 저하와 조세 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서울 집값이 월급보다 가파르게 오르면서 젊은 세대는 땀 흘려 일해도 자산 축적이 어렵다”며 “이젠 임금의 실질 가치 하락을 반영한 ‘물가 연동형 소득세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경희ㆍ장원석ㆍ안효성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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