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소세키 이야기 품은 도쿄대 캠퍼스에 대학로의 향취가
대학로의 옛 서울대 캠퍼스와 도쿄대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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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가 세운 동숭동 경성제대 건물
병원·연못 배치 등 도쿄대와 닮은꼴
소세키 장편 『산시로』, 미쓰비시 고택
도쿄대 캠퍼스는 옛 이야기 넘쳐나
AI 시대 경쟁력은 상상력이 판가름
국내 대학 캠퍼스, 사색 공간 아쉬워
」
그런데 일제가 세운 대학이어서인지 경성제대 캠퍼스는 도쿄대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옛 도쿄대 정문인 아카몬(赤門) 위쪽에 새로 난 정문을 통과하면 좌우로 펼쳐진 캠퍼스를 만나는데 캠퍼스를 가로질러 우에노 공원으로 빠지려고 하면 그 전에 도쿄대 부속병원과 마주한다. 이 부속병원을 지나 5분쯤 걸으면 도쿄를 대표하는 우에노 공원을 만나서 시노바즈이케(不忍湖)를 바라볼 수 있다. 경성제대도 도쿄대의 이런 캠퍼스 배치도와 비슷하다. 과거 예과가 있던 문리대에서 큰길을 건너면 의대와 부속병원을 마주하고 여기를 통과하면 창경원(지금의 창경궁)과 마주하는데 창경원 내에 춘당지란 큰 호수가 있어서다.
박정희는 서울대를 왜 옮겼을까
![서울대 문리대가 있던 마로니에 광장. [사진 김정탁]](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2/joongang/20260422162036332jroi.jpg)
그런데 캠퍼스 배치도와 같은 하드웨어는 비슷할지 몰라도 캠퍼스가 품은 소프트웨어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도쿄대 캠퍼스는 이야기로 잘 꾸며져서 낭만이 흐르는 데 반해 옛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에선 이런 낭만을 찾기 힘들어서다. 굳이 낭만을 찾자면 1960년대 마로니에 광장에서 벌어진 한일협정 반대 데모에서부터 월남파병 반대 데모로 이어진 소위 낭만의 데모라고나 할까? 대통령 박정희는 공부는 않고 데모만 하는 서울대생의 이런 꼴이 보기 싫어 지금의 관악산 아래로 캠퍼스를 옮겼다는 소문이 당시 자자했다. 그런데 도쿄대가 면학의 장소를 넘어 낭만의 장소로 바뀐 데는 이 대학 출신 소설가들의 영향이 크다.
![도쿄대 정문. 원래 정문은 오른쪽에 있는 아카몬인데 현재 보수공사 중이다. [사진 김정탁]](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2/joongang/20260422162036613xpkz.jpg)
도쿄대 캠퍼스는 도쿠가와 막부 시절 서쪽의 가장 큰 번이었던 가가번의 마에다(前田) 가문의 에도 저택이었다. 그런데 19세기 말 메이지유신이 성공하면서 유신 정부는 최고의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서 이 저택에다 도쿄일고(東京一高)를 세웠는데 그 후에 도쿄대로 발전했다. 그래서인지 도쿄대 캠퍼스 곳곳에는 저택의 정원 풍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정문인 아카몬만 해도 그러하다. 이 문은 원래 마에다 가문의 저택 정문이었는데 헐지 않고 잘 유지해서 지금은 도쿄대의 상징이 되었다.
![도쿄대 안에 있는 산시로 연못. [사진 김정탁]](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2/joongang/20260422162036887kjhq.jpg)
그런데 캠퍼스 정원 풍의 압권은 캠퍼스 한복판에 자리한 육덕원(育德園)이라는 정원과 심자지(心字池)라는 연못이다. 육덕원은 일본을 대표하는 정원 조경 중 하나로 유명하고, 심자지는 지금은 산시로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연못 이름이 바뀐 건 나쓰메 소세키(夏日漱石·1867~1916)의 장편소설 『산시로』에 이 호수가 등장해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오가와 산시로(小川三四郞)는 시골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위해 도쿄로 상경한 뒤 도회지에서 다양한 삶들과의 교류를 통해 성장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 시골 청년을 통해 당시 일본 사회를 비평했는데 산시로가 소설 속에서 연모한 여인을 만난 곳이 심자지다.
![나쓰메 소세키 초상이 인쇄된 일본 1000엔권 지폐 일부. [사진 김정탁]](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2/joongang/20260422162037126kfxq.jpg)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근대 소설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이광수와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실은 일본인에게 이광수보다 더한 존재라서 20년간 일본 1000엔권 지폐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참고로 일본 1000엔권 지폐의 첫 주인공은 쇼토쿠 태자였고, 그다음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선정해 인쇄까지 마쳤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홍콩·대만 등 주변국들과의 외교 마찰이 심해 1984년 나쓰메 소세키로 바꾼 뒤 2004년까지 이 지폐를 사용했다. 그러니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로서 일본인에게 이토 히로부미에 버금가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사색에 빠지게 하는 산시로 연못
산시로 연못 주변에는 칠덕당(七德堂)이라는 검도장과 화살 터가 자리한다. 화살 터에는 밤인데도 활 쏘는 학생들로 이 일대 공간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또 여기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회덕관(懷德館)이란 건물이 있다. 다도(茶道) 실습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그 이름에서 보듯 학생들에게 덕(德)을 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지덕체(智德體) 중 덕과 체를 기리는 일이 산시로 호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게다가 육덕원과 산시로에서 검도장으로, 또 칠덕당에서 회덕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모두 흙길인지라 여기를 걷다 보면 사색할 분위기에 저절로 빠져든다.
![도쿄대 부속병원에서 우에노 공원에 이르는 무엔자카 길. [사진 김정탁]](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2/joongang/20260422162037417bkrw.jpg)
그런데 사색할 공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도쿄대에서 우에노 공원으로 가려면 부속병원을 지나야 하는데 이 부속병원을 왼쪽으로 하고 조금 더 내려오면 미쓰비시 그룹의 창업주인 이와사키 야타로의 큰 고택을 만난다. 그 고택을 지나자마자 마주하는 큰길을 건너면 거기서부터 우에노 공원이 시작된다. 우에노 공원으로 내려오는 이 호젓한 언덕길을 가리켜 무엔자카(無緣坂)라고 부른다. 도쿄대 출신의 소설가 모리 오가이(森鷗外·1862~1922)가 쓴 소설 『기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오카다(岡田)가 이 언덕을 늘 산책해서다.
![미쓰비시 그룹의 창업주가 살던 저택. 지금은 미쓰비시 박물관이 되었다. [사진 김정탁]](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2/joongang/20260422162037685dumr.jpg)
그런데 여기가 어째서 무엔자카로 이름 지어졌을까? 고리대금업자의 아내 오타마가 대학생인 오카다에게 연정을 품지만 결국에 마음을 전하지 못한다는 소설의 내용 때문이다. 그러니 무연(無緣)이란 연(緣)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너무나도 깊은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더해진 의미라고 본다. 그러니 여성 오타마에게 닥친 이런 ‘견딜 수 없는 사랑’이야말로 소설가 모리 오가이가 본 무연 중의 하나가 아닐까?
![우에노 공원에 있는 시노바즈이케 연못. [사진 김정탁]](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2/joongang/20260422162037924gnci.jpg)
우에노 공원에 들어서면 큰 연못과 곧바로 마주하는데 이 연못이 유명한 시노바즈이케(不忍池)이다. 불인(不忍)은 보통 ‘참을 수 없다’로 번역되므로 이 호수도 ‘참을 수 없음’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 30년 전쯤인가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 밀란 쿤데라의 작품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번역돼 우리에게 잔잔한 충격을 일으킨 적이 있다. 무엔자카를 지나와서인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 ‘견딜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필자의 가슴에 더 와 닿는다. ‘참을 수 없는 사랑’보다 ‘견딜 수 없는 사랑’을 해 보는 게 모든 사람의 로망이어서다.
AI는 이야기의 낭만 몰라
도쿄대 캠퍼스와 그 주위를 걷다 보면 이름에서부터 사색에 빠지게끔 한다. 대학을 가리켜서 교정이라 하지 않고 캠퍼스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 대학 캠퍼스는 현대식 높은 건물만 자랑하지, 거기에 상응하는 이야기가 부족하다. 대학 캠퍼스에 이런 이야기가 없고 건물만 덩그렇게 있으면 이런 곳에서 교육다운 교육이 과연 가능할까? 또 미래는 상상력의 시대가 아닌가? 분석력은 앞으로 AI가 대신할 테니 상상력이 곧 경쟁력이 되므로 무엇보다 이야기가 넘쳐나야 한다. 또 이야기가 사라진 대학 캠퍼스를 가리켜 낭만적이라고 할 수 없는데 AI는 이런 낭만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풀어내지도 못한다.
인간은 이런 낭만을 추구하기에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인간답게 사는 게 어떤 건지를 끊임없이 제기한다. 그럼으로써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지를 안다. 이제 우리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를 갖게 되었는데 대학 캠퍼스도 이런 유형의 인간을 만드는 데 일조해야 하지 않을까? 테크놀로지는 인간 기능을 확장하는 도구라서 자동차는 다리의 확장, 공작기계는 손의 확장, 미디어는 눈과 귀의 확장, AI는 두뇌의 확장일 뿐이다. 테크놀로지는 이런 인간 기능의 확장이라 자신이 누군지를 알아야 테크놀로지의 주인이 되지, 그렇지 못하면 종속된다. 이것이 대학만이라도 사색의 공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로서 충분하지 않은가.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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