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연둣빛 희망을 받아 적는 아침

2026. 4. 2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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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목사·시인

지금까지 내가 받아 적은 시편들 속에 유독 나무의 그림자가 짙었던 모양이다. 언젠가 한 후배 시인은 나를 ‘나무의 사제’라 불렀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당치 않은 소리네. 사제라니, 나는 그저 나무를 우러르는 미천한 ‘신도(信徒)’일 뿐이네.

내가 나무의 신도를 자처하는 것은 그 푸른 스승으로부터 삶의 지극한 이치를 배우기 때문이다. 특히 소음과 속도의 시대에 가장 희귀해진 느림의 미학을 나는 나무에게서 배운다. 자아를 대면하고 타인을 보듬는 일뿐 아니라, 생의 비약을 꿈꾸는 창조적 상상력 또한 이 고요한 느림의 토양 없이는 싹트지 못하기 때문이다.

「 삶의 이치 가르쳐주는 푸른 스승
나무의 시간에 조급함은 없어
시인은 나무의 말을 받아 적을 뿐

김지윤 기자

틈만 나면 발길을 옮기는 곳이 있다. 원주 문막읍 반계리에 자리한 수령 800년의 은행나무. 며칠 전, 봄꽃 구경차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를 데리고 그 나무를 찾았다. 아기 부채를 닮은 연둣빛 잎들이 웅성거리며 돋아나는 거대한 은행나무의 위용 앞에 친구는 넋을 잃고 탄성을 내뱉었다. “아, 저건 나무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대궐이구먼!”

친구의 눈엔 대궐로 보였겠지만, 나는 그 거목 앞에 설 때마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이 거대한 생태계에 잠시 머물다 가는 미미한 손님임을 뼈아프게 깨닫는다. 일찍이 그 둘레를 재어보니 열두 아름이 넘었다. 하지만 800년의 세월을 견딘 나무에게서 노쇠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해마다 어김없이 파릇파릇한 생명을 길어 올리는 그 청정한 생명력 앞에서 고작 백 년을 채 못 살고 명멸하는 인간의 시간은 찰나의 눈 깜빡임에 불과하지 않은가.

최근 읽은 리처드 파워스의 소설 『오버스토리』 역시 인간의 삶을 순간으로, 나무의 생을 영원에 가까운 호흡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작가는 인간 중심의 협소한 서사에서 탈피해 나무의 관점에서 세상을 투시한다. 인간의 눈에 나무는 붙박인 채 정지한 존재 같지만, 사실 나무들은 수백 년에 걸쳐 서서히 움직이며 대지를 점유하고 하늘의 영역을 나누며 생태계의 법을 집행하는 능동적인 주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환경 보호를 외치는 차원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연결 고리를 심오하고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다. 700쪽이 넘는 묵직한 ‘벽돌 책’이라 다 읽는 데 꽤 여러 날이 걸렸지만 소설 전반에 흐르는 문장들은 시적이며, 식물학적 디테일이 살아있어 마치 고요한 숲속을 걷는 듯한 환각에 빠져들 수 있었다.

가장 가슴을 울렸던 대목은 숲을 지키기 위해 고목 위로 올라간 인물들이 나무가 건네는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나무의 언어는 명료했다. 분(分) 단위의 조급한 시간관념을 버리고 나무의 시간으로 귀의하라는 초대였다. 눈앞의 이익과 속도에 매몰된 인간과 달리, 나무는 수백 수천 년을 한자리에 머물며 우주의 박동에 몸을 맡긴다.

또한 그들은 나무 위에서 생활하며 나무가 고립된 개체가 아님을 목격한다. 뿌리와 균사체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온 숲이 정보를 주고받고, 상처 입은 이웃에게 치유의 에너지를 송출하며 공생하는 풍경. 나무는 그 연대의 몸짓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개인이라는 환상에서 걸어 나와,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 속에 놓인 네 자리를 확인하라.” 결국 이 소설은 나무를 배경이 아닌 ‘의지와 지성을 가진 주체’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셈이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먹먹한 여운이 가시지 않은 것은 그 문장들이 내 안의 나무를 흔들어 깨웠기 때문이다. 700쪽의 서사가 도달한 결론은 소박하고도 엄중했다. 잠시 멈추어 서서, 발밑의 흙과 머리 위의 하늘이 주고받는 내밀한 대화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이제 나는 시를 쓸 때 서두르지 않기로 한다. 나무가 제 그늘 한 뼘을 넓히기 위해 온 계절을 인내하며 기다리듯, 나 또한 분 단위의 조급증을 내려놓고 나무의 호흡으로 문장을 고르고자 한다. 나무의 사제가 아닌 신도로서 내가 할 일은 자명하다. 나무가 뿌리로 전하는 연대의 소식에 귀를 열고, 매일 아침 새롭게 피어나는 저 연둣빛 희망의 문장들을 정성껏 받아 적는 일이다.

고진하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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