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한승헌 전 감사원장 4주기 추모…“인권과 양심 지킨 산민정신 기려”

김요섭 2026. 4. 2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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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전북대서 추모식…전북인권협의회, ‘제2회 산민상’ 수상

고(故) 한승헌 전 감사원장을 기리는 4주기 추모식과 제2회 산민상 시상식이 20일 전북대학교 진수당 77주년 기념홀에서 열렸다. 

한승헌의 아호(雅號)를 산민(山民)을 따서 이름을 붙인  (사)산민 한승헌 기념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는 전북특별자치도와 전북대학교, 진안군애향본부의 후원으로 유가족과 지역 인사, 법조계·시민사회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삶과 정신을 기렸다.이날 행사는 1부 추모식과 2부 산민상 시상식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윤석정 기념회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고인의 ‘고향 사랑’을 강조했다. 윤 이사장은 “한승헌 선생은 국가적 현안으로 분주한 와중에도 고향 진안 안천면의 행사라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참석하던 분이었다”며 “안천면민의 날에‘우국여가(憂國如家, 나라를 내 집처럼 걱정하라)’라 쓴 친필 제작 현판을 기증하고, 모교인 안천초등학교에는 다수의 도서를 전달하는 등 늘 지역과 호흡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향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소통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던, 진정한 의미의 ‘진안인’이었다”고 회고했다.


양오봉 전북대학교 총장은 고인을 전북대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평가했다. 양 총장은 “한승헌 변호사는 전북대 53학번으로, 개교 이후 가장 빛나는 동문 가운데 한 분으로 꼽는 데 이견이 없다”며 “법조인으로서의 업적뿐 아니라 시대의 양심으로서 보여준 행보가 후학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는 10월 교내에 ‘한승헌 역사관’을 개관해 그 정신과 업적을 후대에 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추모사에는 고인의 생애를 다각도로 조명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은 “한승헌 선생은 군사정권의 억압 속에서도 학생과 재야인사, 억울한 피해자들을 변호하며 인권을 지켜낸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식과 유머, 따뜻한 인품을 두루 갖춘 분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신뢰를 받았으며, 감사원장 재임 시절에도 청렴성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공직을 수행했다”고 덧붙였다.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회 이사장은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했다. 송 이사장은 “한승헌 선생은 ‘가족이 끼니를 굶지 않았고 자식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있었다’는 점을 늘 감사하게 여긴 분”이라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평정과 감사의 태도를 잃지 않았던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회고했다.

또한 “어색하거나 긴장된 자리에서도 꼭 필요한 말을 적시에 건네 분위기를 풀어내는 지혜와 유머를 지닌 분이었다”고 덧붙였다.

박용일 변호사는 법조인으로서의 역사적 의미를 짚었다. 박 변호사는 “1970년대 우리 사회에 ‘인권변호사’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한승헌 선생은 그 길을 처음 연 1세대 인권 변호사였다”며 “후배들이 스스로를 2세대라 부르는 이유도 바로 그 출발점에 선생이 서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군사정권 시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에 기여하며 인권 변호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고, 독일 사례를 참고해 헌법재판소 제도 도입을 제안하는 등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곽영길 재경전북특별자치도민회장은 고인을 ‘도덕적 기준’으로 표현했다. 곽 회장은 “한승헌 선생은 인권과 청렴을 상징하는 인물로, 후배들에게는 정신적 스승과 같은 존재”라며 “자강·자율·자립의 가치를 실천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과 중심을 잃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교류하며 느낀 지성과 품격은 지역사회 후배들이 반드시 이어가야 할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경영 진안군수 권한대행은 지역을 대표해 추모의 뜻을 전했다. 이 권한대행은 “한승헌 선생은 평생 인권과 정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며,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남긴 분”이라며 “특히 개인보다 국가와 공동체를 먼저 생각했던 삶의 자세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가치”라고 했다. 

이어 “산민상의 취지 역시 이러한 정신을 계승하는 데 있으며, 인권과 정의의 가치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식에서는 문화 프로그램도 이어졌다. 조명순 시낭송가는 고인의 유고 시 <역사의 길섶>을 낭송해 참석자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고, 음악가 장사익은 고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와 함께<봄날은 간다> 등을 불러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어 진행된 2부 시상식에서는 제2회 산민상이 ‘전북인권협의회’에 수여됐다. 산민상이 단체에 수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석정 이사장은 시상식에서 상패와 함께 상금 1천만원을 전달했다. 수상 단체는 인권 보호와 사회적 약자 권익 증진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산민 한승헌이 걸어온 길 

산민(山民) 한승헌 선생은 1934년 전북 진안군 안천면에서 태어나 안천초등학교,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전북대학교 정치학과(53학번)를 졸업했다. 1957년 제8회 행정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법조계에 입문한 그는 법무부 검찰국과 부산지검, 서울지검 등에서 검사로 재직했다. 그러나 1965년 변호사로 개업하며 공직을 떠났다. 이후 평생을 인권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변호의 길에 헌신했다.

특히 군사정권 시기에는 동백림 사건, 민청학련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 사건 등 주요 시국 사건을 맡아 양심수와 민주화 인사들을 변론하며 ‘제1세대 인권변호사’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우리 사회에 인권변호 개념조차 희박했던 상황에서 그는 사실상 그 출발점을 연 인물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두 차례 구속돼 총 292일간 수감 생활을 했고, 8년 5개월 동안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는 등 개인적 희생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른 변론을 이어가며 한국 인권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했다.

한 선생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 과정에도 참여해 인권변호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으며, 독일의 헌법재판 제도를 참고해 헌법재판소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 제도적 민주주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문학인으로서의 이력도 뚜렷하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시집을 펴내는 등 창작 활동을 이어갔고, 그의 시 세계는 전통 서정성과 현대적 감각을 아우르면서도 특정 유파에 얽매이지 않는 독창성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에는 서울 ‘그림마당 민’에서 열린 작가회의 관련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공직에서도 그의 소신은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인 1998년 제12대 감사원장에 임명돼 공직사회 개혁과 청렴성 확립에 힘썼다. 이후에도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변호인단으로 참여하는 등 주요 헌정 사안에 목소리를 냈다.

한승헌 선생은 평생을 통해 인권, 정의,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실천한 법조인이자 문학인이었다. 고향 진안에 대한 애정 또한 각별해 지역 행사 참여와 기부활동을 이어오며, ‘우국여가(憂國如家, 나라를 내 집처럼 걱정하라)’의 삶을 몸소 실천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김요섭 기자 kimyosub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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