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은 내란 아니다'는 장영수, 진실화해위 자격 있나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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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12월 5일 자 <아주경제[>에 실린 "[장영수 칼럼] 尹대통령 비상계엄선포 내란죄 성립되나" |
| ⓒ 아주경제 |
그는 2025년 1월 21일 자 <시사저널> 제1839호에 실린 '내란죄 철회, 내란 증거 없거나 논리에 구멍 생긴 것'이라는 기고문에서 "12·3 비상계엄도 충격적이었지만, 그것이 내란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졌다"고 썼다. '12·3 내란'이라는 말이 나올 당시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는 12·3 이틀 뒤에 나온 2024년 12월 5일 자 <아주경제> '장영수 칼럼'에서 확인된다.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내란죄 성립되나'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글에서 그는 "형법 제87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란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는 전제를 설정했다. 그런 다음, 2개의 작은따옴표 부분을 각각 설명했다.
그는 "전자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영토를 점령하고 그 지역에서 정상적인 국가권력이 작동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라며 "예컨대, 도시나 마을 등을 장악하고 그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태여야 한다"고 한 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고 소결론을 내렸다. 윤석열 계엄군이 어느 한 지역을 확실히 장악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성공한 내란이든 실패한 내란이든 다 똑같은 내란
그런 다음, 두 번째 작은따옴표 부분을 설명했다. 그는 12·3이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소결론을 내렸다. 거기에 해당하려면 국회 같은 헌법상의 국가기관을 강압적으로 전복하거나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12·3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판단의 근거를 그는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계엄 선포 후 2시간 반이나 경과한 즈음에 국회에서 계엄해제요구안이 통과되었고, 이후 계엄군이 국회에서 철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계엄을 해제하였다. 이를 국회의 무력화로 보기는 어렵다."
두 개의 소결론을 낸 뒤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를 즉각적으로 수용하였던 점, 그 결과 계엄선포 후 불과 6시간 반이 지난 시점에서 계엄이 해제되었던 점, 그 과정에서 - 1979년 당시의 비상계엄과는 달리 - 인명의 살상이나 과도한 기물 파손 등의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를 구성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1979년 당시의 비상계엄"이라는 표현은 "1979년 당시의 쿠데타"로 수정돼야 한다. 전두환이 계엄을 선포하면서 12·12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아니다. 계엄은 박정희가 죽은 10·26 사태 다음날인 27일 오전 4시부터 시행됐다.
법학자인 장영수 후보자가 '12·3은 내란이 아니다'라며 전개한 논리 구조에는 문제점이 들어 있다. 얼핏 보면 법학자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형법 제87조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다음 각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라면서 우두머리, 모의 참여자, 지휘자, 중요임무 종사자, 부화수행자(부화뇌동자), 단순 폭동 관여자 등에 대한 형벌을 차별화했다.
제87조는 이러이러한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면 내란죄로 처벌한다고 했지, 폭동을 일으켜 이러이러한 목적을 달성해야 내란죄로 처벌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장영수 후보자는 윤석열이 폭동 개시 뒤에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는 점을 근거로 내란죄 불성립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그는 '윤석열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았으니 내란죄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논증을 하지 않았다. '윤석열이 폭동을 일으켰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으니 내란죄가 아니다'라는 식의 논리 전개를 구사했다. 잘못된 논증 방식을 12·3 내란 이틀 뒤부터 언론에 공개했던 것이다.
그의 주장은 '12·3은 실패한 내란이므로 내란으로 볼 수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성공한 내란이든 실패한 내란이든 다 똑같은 내란이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역사서에 숱하게 등장하는 역모사건들은 거의 다 실패한 내란들이다. 윤석열보다 훨씬 엉성하게 일을 벌인 사람들도 역모죄로 처벌됐다. 실패한 내란은 내란이 아니라는 식의 논리는 인류의 오랜 역사와도 상충한다.
내란죄 처벌에 관대한 입장 가진 사람들
김영삼 민자당 정권이 전두환을 처벌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기 전인 1995년 7월 18일, 검찰은 '성공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천명했다. 그러면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다음날 언론보도들에 실린 검찰 발표문 요지에 따르면, 검찰은 12·12 쿠데타-5·17 쿠데타-5·18 광주학살 이후의 상황 전개를 근거로 이런 주장을 폈다.
"이 사건의 경우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80년 8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돼 대통령에 취임한 뒤 같은 해 9월 국회와 정당을 해산하고 국보위로 하여금 국회 기능을 대행토록 하는 내용의 제5공화국 헌법안을 공고, 국민투표에 의해 헌법을 개정했고 개정헌법에 따라 선거인단의 선거를 거쳐 다음해 3월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비록 간접선거이나 국민의 심판을 거쳐 새 정권을 창출했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피의자들이 정권 창출 과정에서 취한 일련의 행위에 대해서는 사법심사가 배제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함."
당시 검찰은 성공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전두환의 폭동에 대해 면죄부를 부여했다. 장영수 후보자는 윤석열의 시도가 실패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며 그의 폭동을 내란죄 범주에서 배제했다.
그때의 검찰은 내란의 목적이 달성됐다는 이유로 내란죄 처벌을 배제했다. 장영수 후보자는 그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란죄 적용의 배제를 주장했다. 둘의 공통점은 의도됐든 안 됐든 내란 주역들에게 관대하다는 점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1조는 "이 법은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함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의 희생자 및 피해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등 과거와의 화해를 통하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과 민주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문은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반민주·반인권 행위의 피해자 및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 등이 진실화해위원회의 지향점임을 보여준다.
성공한 내란이든 실패한 내란이든 내란이 발생하면 반민주·반인권 행위가 무방비로 자행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 내란이 집권세력에 의해 발생한 경우에는 위험성이 훨씬 배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화해위원회에 몸담는 사람들은 반민주·반인권 세력의 내란죄에 대해 특히 엄정하고 단호해야 한다. 내란죄 처벌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 진실화해위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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