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의는 “적정 치료”, 환자통지문은 “입원 불필요”…보험사 의료자문 조작 의혹
“의료자문 의견 위·변조 과정 문제의식”

보험금 지급 여부를 가르는 핵심 절차인 ‘의료자문’ 과정에서 자문의사가 작성한 원본 의견과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전달한 내용이 다르게 나타난 정황이 확인됐다. 단순한 분쟁을 넘어 보험금 지급 판단 구조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한정맥학회는 20일 한국소비자연맹에서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보험사의 의료자문 결과가 원문과 다르게 환자에게 전달된 정황을 공개하며 금융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태식 정맥학회 이사장과 안상현 서울의대 외과 교수, 피해 소비자가 참석해 직접 증언에 나섰다.
이날 현장 증언에 나선 50대 여성 피해 소비자는 하지정맥류 수술 전 보험사에 보장 여부를 확인한 뒤 치료를 받았지만, 이후 치료의 적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했다. 그는 재심을 요청한 뒤 별도 의료기관에서 적정 치료라는 판단을 받아 최종적으로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하지만 보험금을 받기까지 한 달 이상 큰 고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보험금을 뒤늦게 받은 건 의료자문서가 뒤바뀌며 처음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번 문제는 자문을 수행한 의사가 해당 통지문을 확인하면서 드러났다. 지난 2월 자문의였던 A교수는 본인이 작성한 의료자문 의견과 환자에게 전달된 결과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이후 이 사실을 정맥학회에 알렸고, 학회는 유사 사례가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사안을 공론화했다.
학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자문의의 원문 자료에는 “하지정맥류 치료 지침과 수술 특성상 1일 입원 치료는 적정하며, 치료 목적과 합병증 예방 측면에서도 타당하다”는 취지의 판단이 담겨 있었다. 반면 환자에게 전달된 통지문에는 “외래 기반 단기 시술로 입원 필요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치료 필요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단순한 의료적 견해 차이가 아니라, 자문의사가 작성한 원본 의견이 보험사 전달 과정에서 변경·축소되거나 다른 취지로 재구성됐다는 점이다. 의료적 판단이 보험금 지급 여부를 가르는 핵심 근거로 활용되는 만큼, 이 과정이 왜곡됐다면 보험사의 내부 판단 구조가 의료 판단 위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 이사장은 “보험사는 통상 자문의 의견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데, 이번 사례는 그 중간 과정에서 내용이 변형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많은 국민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구조적 문제인 만큼 철저한 규명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도 유사한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그는 “의료자문 과정에서 적절한 치료라고 판단한 의견을 보냈지만, 환자에게 전달된 통지문은 완전히 반대 의미로 작성돼 있었다”며 “과거 다른 사례에서 사용한 표현이 환자에게 불리하게 그대로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중개업체 또는 보험사에서 수정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의료자문서 변경 주체가 보험사인지, 중개업체인지는 명확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안 교수는 “의료자문 의견이 위·변조되는 과정에 문제의식을 느꼈고,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증언에 나서게 됐다”고 전했다.
소비자 측은 이번 사안을 보험금 지급 공정성과 신뢰를 흔드는 문제로 보고 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겸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 공동대표는 “보험금 지급의 공정성과 신뢰 제고를 위해 의료자문 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져 왔는데도 이런 사례가 나온 것은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보험금 지급 거절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소비자 불신을 더 키우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소비자의 정당한 이익과 권리를 침해하는 사례가 얼마나 더 있을지 우려된다”면서 “의료자문 이후 보험금 부지급 사례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권용진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 집행위원장(서울의대 교수)은 현재 손해보험협회와 의료 관련 학회가 협력해 자문위원단을 구성·운영하고 있지만, 보험사들이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고 별도 자문체계를 운영하는 점을 문제로 지목했다.
권 위원장은 “향후 금융감독원에 현장조사와 고발을 요청할 계획”이라며 “자문의견이 수정되지 않도록 원천 차단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환자가 자문 주체를 확인할 수 있는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금융당국을 향해 △보험업법 및 금융소비자보호법 등 관련 법령 개정 △의료자문 내부통제 기준의 법제화 △보험금 부지급 사례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 및 결과 공개 등을 요구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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