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우리를 깨우던 무해한 맛
[양형석 기자]
2010년대 중반까지 오전 7시반~10시의 시간대에 편성되던 아침 드라마가 크게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자녀들이 학교에 등교하고 배우자가 직장에 출근한 후 잠시 여유를 가진 전업주부들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아침 드라마는 은퇴 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노년층이나 방학 시즌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꽤 많은 인기를 얻었다. 특히 시청률이 잘 나오는 아침 드라마는 무려 200회 이상 방송되기도 했다.
하지만 각 지상파에서 방송되던 아침 드라마는 2019년 KBS를 시작으로 2020년 MBC, 2021년 SBS에서 차례로 폐지되면서 현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침 드라마는 시청층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주말 드라마는 물론 일일 드라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작비로 퀄리티 높은 작품을 만들기 힘들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시청률을 의식한 자극적인 내용을 반복했고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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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지붕 세가족>부터 이어진 MBC의 일요 아침드라마는 <단팥빵>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
| ⓒ <단팥빵> 홈페이지 |
1995년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로 데뷔한 최강희는 이듬 해 MBC 청소년 드라마 <나>에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로 떠올랐다. 그리고 1998년 공포 영화 <여고괴담>에서 9년 동안 이름을 바꿔서 학교에 다니는 귀신 윤재이 역을 맡아 그 유명한 '복도 점프컷'을 보여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여고괴담>에서 '최세연'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던 최강희는 다시 본명으로 돌아와 <학교1>과 <광끼>에 출연했다.
2002년 MBC 주말 드라마 <맹가네 전성시대>와 2003년 SBS 드라마 <술의 나라>에 출연한 최강희는 2004년 MBC 일요 아침 드라마 <단팥빵>을 통해 데뷔 첫 메인 주인공을 맡았다. 최강희는 <단팥빵>에서 또래들 사이에선 '쌈짱'으로 통하지만 성당 오빠를 짝사랑하는 소녀 감성을 가진 한가란 역을 맡았다. 최강희는 2005년에도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출연하며 주연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KBS 라디오에서 <최강희의 볼륨을 높여요>의 DJ를 맡아 '강짱'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은 최강희는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과 <내 사랑> 등 멜로물에서 꾸준히 강세를 보였다. 최강희는 2009년 영화 <애자>에서 고 김영애 배우와 애틋한 모녀 연기를 선보이며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 인기상을 수상했고 2011년에는 <쩨쩨한 로맨스>를 통해 다시 한 번 청룡 인기상을 수상했다.
최강희는 2011년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에서 지성과 연기 호흡을 맞추면서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과 최우수 연기상, 베스트 커플상(with 지성), 인기상을 휩쓸며 배우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같은 해 또 한 번 <볼륨을 높여요>를 진행하다가DJ 자리를 후배 연기자 유인나에게 물려준 최강희는 2013년 김하늘 주연의 동명 영화를 드라마로 제작한 <7급 공무원>에서 주원과 함께 출연했다.
최강희는 2010년대 중반 이후 활동이 다소 뜸해졌지만 두 시즌에 걸쳐 제작된 <추리의 여왕>에 출연했고 2020년에는 SBS 드라마 <굿캐스팅>에서 화려한 액션 연기를 선보이며 색다른 매력을 뽐냈다. 최강희는 2021년 <안녕?나야!>를 끝으로 5년 넘게 연기 활동을 하지 않고 있지만 2023년부터 CBS 라디오 <최강희의 영화음악>을 진행하고 있고 MBC 예능 <전지적 참견시점>에도 비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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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강희(왼쪽)와 박광현은 <단팥빵>에서 앙숙에서 연인이 되는 소꿉친구 연기를 유쾌하게 소화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
| ⓒ MBC 화면 캡처 |
<단팥빵>은 어린 시절 '단팥빵 사건'으로 인해 앙숙이 된 한가란(최강희 분)과 안남준(박광현 분)이 성인이 된 후 고향에서 다시 만나면서 '톰과 제리'처럼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진다는 스토리의 드라마다. 사실 이야기의 줄기는 다소 진부하지만 이숙진 작가는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잘 풀어냈고 배우들 역시 많지 않은 경험에도 캐릭터의 특징과 매력을 극대화한 연기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었다.
하지만 <단팥빵>은 좋은 평가와 시청률 대비 높은 화제성에도 1986년 <한 지붕 세 가족>부터 시작된 MBC 일요 아침 드라마의 맥을 끊은 마지막 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사실 MBC 일요 아침 드라마는 <짝> 이후 완만한 하락세를 그렸고 2003년 강동원 주연의 <1%의 어떤 것>과 <단팥빵> 정도가 간신히 인기를 이어갔다. <단팥빵> 종영 후에는 예능 프로그램 <해피타임>이 신설돼 10년 넘게 방송됐다.
지금이야 해외 관광객들도 필수로 찾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소가 됐지만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주는 지금처럼 크게 알려진 관광 도시는 아니었다. 하지만 전주와 익산이 <단팥빵>의 배경과 촬영지가 되면서 한옥 마을 등 관광지들이 자연스럽게 소개되면서 전주를 알리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이에 최강희와 박광현은 2004년 12월 전주시로부터 지역 경제 상승에 이바지한 공로로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네 멋대로 해라>와 <다모>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 드라마의 열성팬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해 친목을 쌓고 활동하는 것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단팥빵>의 열혈 시청자들 역시 '꿀 같은 일요일 늦잠을 포기했다'는 의미로 스스로를 '단팥빵 철인'이라 불렀다. 이들은 <단팥빵>의 OST와 DVD 출시를 이끌었고 연말에는 전주를 방문해 <단팥빵>의 배경이 된 초등학교에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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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인시대> 1부에서 김두한의 첫사랑으로 나왔던 정소영은 <단팥빵>에서도 안남준의 마음을 흔드는 첫사랑으로 출연했다. |
| ⓒ MBC 화면 캡처 |
액션 시대극이었던 <야인시대> 1부에서 홀로 멜로를 찍었던 청년 김두한(안재모 분)의 첫사랑 박인애를 연기했던 정소영은 <단팥빵>에서도 안남준의 첫사랑 홍혜잔 역을 맡았다. 남준과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혜잔은 파혼을 하고 가란이 있는 초등학교에 임시교사로 부임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다. 하지만 <단팥빵>은 '막장 요소'가 없는 드라마인 만큼 혜잔이 악녀로 돌변하는 일은 없었다.
작년 배급사 '류네'를 설립하고 장편영화 데뷔작 <고백하지마>를 선보였던 배우 겸 감독 겸 배급사 대표 류현경은 <단팥빵>에서 '단팥빵 사건'의 발단이 됐고 남준을 오랫동안 짝사랑한 김선희를 연기했다. 선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란의 절친이기 때문에 가란과 남준 사이를 방해하진 않았고 건설회사 비서실 차장 이기동(정경호 분)과 엮이는데 선희와 이차장의 러브 라인도 드라마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단팥빵>에서는 2014년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상, 2020년 일본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심은경이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시절 초등학생 한가란을 연기했다. 선희가 준 단팥빵을 남준에게 전달했다가 남준이 그 빵을 다시 혜잔에게 전해주는 것을 보고 분노해 남준에게 날아차기를 하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심은경의 발차기는 '헥토파스칼킥'이라는 이름이 붙으며 인터넷 밈으로 크게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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