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아래 '핫핑크' 차주전자, 봄의 절정을 마셨습니다
바쁜 일상 속, 차 한 잔으로 일상에 쉼표를 찍습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24절기와 동양화를 오가며 흐르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합니다. <기자말>
[노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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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우즈음에는 참으로 다양한 연둣빛이 산과 언덕을 빼곡하게 채운다. |
| ⓒ 노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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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작나무의 어린 잎사귀의 색깔이 참 오묘하게 반짝여서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
| ⓒ 노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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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의 봄이 우러나는 중... |
| ⓒ 노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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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에 직접 캐낸 쑥을 듬뿍 넣고 만들어 맛도 향도 진한 쑥떡. 너무 말랑말랑 쫀득쫀득 맛있어서 요즘 나의 최애 간식이다. |
| ⓒ 노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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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물이 맑았고 맛은 오묘하고 복잡한 쌉쌀한 맛 끝에 단맛이 있었다. |
| ⓒ 노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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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잎이 뜨거운 물을 만나 제 몸의 성분을 물에 내어주는 걸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
| ⓒ 노시은 |
봄의 신록을 닮은 연둣빛 찻물 속에 가라앉은 찻잎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문득 최고급 황산모봉을 감별할 때는 찻싹 곁에 붙은 작고 누르스름한 잎사귀, 이른바 황금편(黄金片)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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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씬하게 쭉 뻗은 황산모봉의 마른 찻잎을 보며 안휘성 황산의 안개를 떠올리게 된다. |
| ⓒ 노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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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어난 꽃들은 모두 탐스럽게 흐드러졌던 봄날. |
| ⓒ 노시은 |
'이런 날 방에 틀어박혀 있는 건 계절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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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에서 구한 청나라 시대(믿거나 말거나)의 핫핑크 차호에 대만의 귀비우롱을 우려 차 한 모금, 벚꽃 구경 한 번 하며 홀짝홀짝. |
| ⓒ 노시은 |
룰루랄라 나간 그날 벚꽃놀이의 다구 라인업은 제법 파격적이었습니다. 간편해 밖에서 차 마실 때마다 들고 나가는 휴대용 다구 대신, 싱가포르에서 발품 팔아 구했던 청나라(물건이라고 주인은 주장했던) 빈티지 '핫핑크' 차호를 챙겼거든요. 푸른 하늘과 흩날리는 연분홍 벚꽃 사이에서 소심하게 기 죽지 말라고 골랐죠. 여기에 어울릴 잔은 커다란 핑크빛 복숭아가 새겨진 유리잔에 공도배까지 세팅하고 나니 제법 근사한 찻자리가 될 것 같았습니다.
마시게 될 차는 대만의 귀비우롱(貴妃烏龍)이었습니다. 이 차로 말할 것 같으면, 소록엽선이라는 작은 벌레들이 찻잎을 갉아먹은 상처가 아물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달콤한 꿀과 꽃향기를 뿜어내는 아주 매력적인 녀석이죠. 화사하게 피어난 벚꽃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맛과 향기를 가졌기에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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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벚꽃그늘 아래서 향긋한 귀비우롱을 마셨다. |
| ⓒ 노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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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드나무는 막 깨어난 연둣빛으로 뒤덮였다. |
| ⓒ 노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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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노랑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
| ⓒ 노시은 |
그날의 감각을 떠올리며 방안의 찻잔을 다시 내려다봅니다. 찻잎 사이에서 황금편의 흔적은 끝내 찾지 못했지만, '핫핑크' 차호와 함께했던 찬란한 기억이 쑥떡의 짙은 향기를 타고 이 고요한 찻자리로 훅 밀려 들어 왔습니다. 물리적인 이파리 대신, 가장 화려했던 봄날의 쾌활한 추억이 현재의 적막한 찻자리 위에 다정하게 포개어지는 순간. 그것이 바로 지금 제가 마시는 황산모봉의 황금편이었던 셈이죠.
벚꽃 아래서 마셨던 귀비우롱이 통통 튀는 봄의 절정이었다면, 아픈 몸을 달래며 넘기는 황산모봉은 지나가는 화려한 봄을 차분히 정리하고 싱그러운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돕는 연둣빛 위안입니다. 약 기운에 취해 방안에만 갇혀 있다고 억울해했는데, 가만히 보니 저는 이 찻물과 떡 한 조각을 매개로 두 개의 완벽히 다른 봄을 아주 충만하게 겹쳐 누리고 있었네요.
곡우의 비가 정말 내리려는지 창밖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집니다. 꽃잎 불어가며 마셨던 향긋한 풍류도, 며칠째 몸을 무겁게 누르던 고단함도, 마지막 남은 맑은 차 한 모금과 함께 기분 좋게 삼켜봅니다. 봄은 그저 아쉽게 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찻잔 속에 가라앉은 나만의 황금편이 되어 제 안으로 아주 깊고 달콤하게 스며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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