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표절 주의 바란다'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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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기자]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문장이 지나치게 매끄럽게 흘러갈 때가 있다. 막히는 곳도 없고, 읽히는 데도 별 무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이 정도면 됐다'는 마음으로 퇴고를 마치곤 했다. 내 글에 자기표절의 기미가 보인다는 피드백을 받기 전까지는.
자기표절. 단어의 반복을 넘어, 문장의 익숙함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처음에는 멈칫했다. 하지만 곧 고개가 끄덕여졌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미 쓴 글을 한 발 떨어져 다시 읽고 냉정하게 다듬어야 하는데 얼마 전부터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일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요 며칠 등재된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대부분 노후를 주제로 한 글들이었다. 지금 다시 보아도 나름 잘 정리되어 있었다. 소득이 어떻게 줄어드는지, 완성된 줄 알았던 노후에 불쑥 끼어든 변수가 삶을 어떻게 흔드는지, 퇴직 이후 부부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겪고 있는 일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는 사건을 정리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끌어내는 데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설명에 익숙해질수록 그 안에서 살아가는 순간은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활 속 크고 작은 사건들은 계속 달라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문장으로 옮기는 내 방식은 비슷한 결을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다른 장면을 보면서도 같은 해설을 되풀이하는 느낌처럼.
다른 글쓰기 플랫폼에 연재할 때 마감에 쫓기듯 글을 썼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한 편을 완성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앞섰고, 스스로 정한 시한에 쫓기다 보니 문장도 자꾸 익숙한 길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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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고 후 글을 완성하고 난 현장 풍경(ai 스케치 변환) |
| ⓒ 이종범 |
그뿐이 아니다. 같은 일을 두고도 아내와 나는 전혀 다른 방향을 본다.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 아내는 지금 당장 필요한 오늘에 더 마음을 둔다. 그 차이 때문에 크고 작은 충돌이 생긴다. 글로 옮기면 몇 줄이면 끝날 이야기다.
하지만 그 몇 줄로는 다 담기지 않는 어색한 순간과 말하지 않은 마음이 있다. 노후를 산다는 것은 사실 그런 장면들 속에 더 진하게 배어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장면들을 살리기보다 하나의 설명으로 묶어버리고 있었다. 그 결과 글은 단정해졌을지 모르지만, 살아 있는 느낌은 옅어졌고 문장은 익숙한 길로만 흘러갔다.
노후 이야기가 시작되면 대화의 중심은 금세 숫자 쪽으로 기운다. 얼마로 버틸 수 있는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말들이 먼저 나온다. 그 사이에서 하루를 버티는 마음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린다.
노후에 관한 내 글도 그래서 자꾸 비슷해진 것은 아닐까 싶다. 소득과 지출, 건강과 돌봄은 분명 중요하다. 나 역시 그것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실제로 그 현실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다만 그런 현실을 설명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정작 하루를 버티게 하는 마음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오후, 별것 아닌 말 한 마디에 괜히 마음이 상하는 저녁, 이달의 수입과 지출을 확인하는 순간의 긴장 같은 것들 말이다. 노후의 무게는 어쩌면 그런 순간들에서 먼저 드러나는데, 나는 그 앞에서 너무 빨리 의미를 정리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새로운 일상이 펼쳐지고 있었는데도 나는 너무 자주 비슷한 소재를 같은 틀 안에서 다루고 있었다.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늘 해오던 흐름으로 글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 이미 손에 익은 결론으로 가는 길을 또다시 걷고 있었던 셈이다. 더 깊이 들어가기보다, 한번 길이 난 문장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번 피드백은 바로 그 지점을 찔렀다. 다르게 쓰라는 말이기도 했지만, 내게는 다르게 보라는 요구처럼 들렸다.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적어도 그 삶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반복이 아니라 새로움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자기표절. 아픈 지적이지만 고마운 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내가 놓치고 있던 반복의 기미를 먼저 알아차렸고, 그 덕분에 내 글을 돌아보게 됐으니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인데, 어느 순간 나는 삶보다 익숙한 문장에 더 기대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노후를 설명하는 글보다, 노후를 살아내는 순간이 먼저 보이게 써야 할 것 같다. 그것이야말로 '사는 이야기'에 더 가까운 글일 것이다. 사는 형편을 말하더라도 그 안에서 흔들리는 마음과 장면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잘 정리된 문장보다 조금 덜 매끈하더라도, 그날의 마음결이 살아 있는 문장을 붙잡아 써야겠다.
이제 다시 써야 한다.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바꿔볼 생각이다. 결론을 서두르기보다 장면 앞에 조금 더 오래 머물면서, 길들여진 문장보다 아직 다 말해지지 않은 삶의 표정을 천천히 따라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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