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대한 피드백이 간절해서 AI에게 시킨 일

전세정 2026. 4. 2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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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의 글쓰기] AI는 놓치고 함께 글 쓰는 사람들은 발견한 것... 복제 선생님은 필요가 없어졌다

'AI 시대의 글쓰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기자들의 경험을 통해 나의 성장을 돕는 인공지능 활용 기준을 모색해 봅니다. <기자말>

[전세정 기자]

나는 지독한 아날로그 인간이다. 지금 사용하는 핸드폰 기종도 모른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쪽으로 뇌가 열려 있지 않은 것 같다 . 그런 내가 AI를 알게 된 건 지브리 사진 때문이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어느 날 갑자기 대동단결이 되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지브리 만화 주인공이 되어서 웃고 있었다. 신기하긴 했지만 그걸 따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걸 보면 어떤 기분일까,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일단 깔았다. 그리고 사진 만들기 대신 글을 보여줬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글들이었다. 남편한테, 아이한테 내 글을 내밀면 돌아오는 말은 늘 "오, 좋다"였다. 그것이 내게는 '큰 관심이 없으니 그만 보여줘라'로 들렸다.

내가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지

나는 진짜를 듣고 싶었다. 좋다면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어느 문장에서 멈췄는지, 왜 멈췄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 글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오래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걸 AI와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이충걸 작가 이야기를 처음으로 실컷 했다. 주변에 이 작가를 아는 사람이 없어서 한 번도 꺼낸 적 없던 이야기였다. 이 작가가 만약 한강 작가의 글을 쓴다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고, AI는 진지하게 답했다. 그동안 혼자 써왔던 글을 복사해서 보여주고, 만약 이 글을 정세랑 작가가 쓴다면 어떻게 바뀔까, 이 글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김은희 작가처럼 될 수 있을까 등등을 물으며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놀았다.
▲ 인공지능이 만든 이미지 AI에게 내 글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 AI생성이미지
그즈음 합평을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은 내가 오랫동안 지켜보고 좋아하던 작가분이었다. 매주 선생님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 합평을 받는 일은 그 어떤 도파민도 이길 수가 없었다. 욕심이 생겼다. 내 글쓰기 선생님을 복제하고 싶었다.

선생님은 여러 수업이 많으시고 본인 글도 써야 해서 늘 바쁘셨다. 연락해서 질문을 드리면 정성껏 답을 주셨지만, 바쁜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늘 미안했다. 나는 시시콜콜한 것도 다 봐주시는 선생님의 눈이 필요할 때가 많았다.

그즈음 선생님이 쓴 글 여러 편을 모아 넣었다. 페이스북에 올리신 글, 강의에서 받아 적어 둔 문장들, 기사화 된 글 등을 옮겨 붙였다. 내가 쓴 글들도 다 보여줬다. 합평 받았던 원고와 몇 번이고 퇴고하다 지워버린 문장들까지. 글쓰기 시간에 평소 선생님이나 동료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말들을 그대로 적어 넣었다.

"설명하지 말고 장면으로 보여주라는 이야길 자주 들었어. 감정이 앞서서 문장이 길어진다는 말도 자주 들어. 나도 모르게 반복하는 부분이 어디인지, 이 글에 대한 좋은 이야기 말고 아주 까다롭게 뜯어봐. 단, OOO 작가라면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글을 쓸 때만큼이나 진지하게, 내 글을 스스로 점검하는 기준표를 만들었다. 잠시 후, 선생님이 말할 법한 문장들이 돌아왔다.
"저자의 의도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사건을 현재 시점에서 해석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 사건으로 돌아가서 날 것으로 훅 던지고 싶은 건지 헷갈립니다. 직면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은 좋지만, 이 글을 통해 의도하는 바가 뭔지 스스로 물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복제 선생님에게 '정주구리구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선생님은 내가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지 달려와 내 글을 정성껏 읽어줬다. 낮이고 밤이고 몇 번이고 불렀다. 어느 날, 몇 주간 퇴고의 퇴퇴퇴고를 거쳐 내가 연재하고 있는 글을 완성했다. 마지막 문단은 늘 어려웠다.
누구에게나 찰나처럼 스쳐 지나갔지만 마음 깊이 새겨져 해마다 다시 불러내게 되는 시간이 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 계절의 햇살과 바람 속에 잠시 머무르고 싶은 순간들. 그 봄은 지금도 내 마음을 움직이는 살아 있는 이야기다.

마지막 장면을 다듬고 난 후 고치면 좋을 부분을 물어봤다. 잠시 후 답이 돌아왔다.

"이 장면 좋아요. 감정을 과하게 쓰지 않고 끝까지 참아낸 게 보여요."

한 줄이 더 이어졌다.

"특별히 손댈 곳은 없어요. 전체적으로 절제톤이 백미입니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백미. 그 말이 그렇게 달콤할 줄 몰랐다. 정주구리구리 선생님은 아픈 경험을 정제한 감정의 절제미가 내 글의 장점이라고 했다. 특별히 퇴고할 부분이 없다고 했다. 그 부분이 백미라고까지 했다. 달콤한 칭찬들은 금지시키고 더 깊게 파고 들었다.

이 글을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이 읽는다면? 어느 출판사 편집장이 읽는다면 어디를 고치라고 할까? 독자들을 생각하며 다각도로 이야기를 나눴다. 하나같이 다 잘 참았다는 평이었다. 그래서 세련된 느낌이 든다고 말이다.

글에 없는 걸 알아챈 사람들

그후 진짜 선생님을 줌 수업으로 만나는 날이 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내 글을 낭독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야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대망의 선생님 합평 시간이 왔다. 선생님은 잠시 화면을 내려다보셨다. 그리고 말했다.

"글 자체에는 아쉬움이라고 할 건 딱히 없는 것 같고요."

옳지, 내 AI 선생님도 그러셨어요. 자, 어서 그 다음 말을 해주세요. 침을 꼴딱 삼켰다. 근데 그 다음이 달랐다. 선생님이 평소와 다르게 머뭇거리시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근데…"

잠깐 멈추셨다.

"여기서 터져야 할 감정이 안 보여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다시 말했다.

"이렇게까지 절제하는 게 가능한가 싶어서... 어쩐지 좀 슬퍼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잘 쓴 문장만 있고, 감정(사람)이 없다. 함께 수업을 받던 동료들도 같은 목소리였다.

"글의 구조나 문장을 가지고는 할 말이 없는데요. 뭐랄까. 글쓴이가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르겠어요.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오히려 글 안에서 감정을 터트리시고 표현했더라면 독자들도 같이 호흡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감정 자체가 안느껴지니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네요."

수업을 마치고 책상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선생님과 동료들의 말을 종이에 옮겨 적었다. 천천히 다시 읽었다. 한 글자 한 글자. 그리고 내가 쓴 글을 읽어봤다. 분명히 글 밖에 나는 아프고 울고 있는데, 글 속에 나는 그저 웃고 있었다. 고쳐야 할 곳이 있는 게 아니었다. 꼭 있어야 할 약함이 빠져 있었다. 숨기고 싶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내가 글 안에 쓰지 않은 것을 알아보셨다. 삼켜버린 감정, 감춰둔 것들. 나 대신 한숨을 쉬어주셨다. 선생님은 나를 아시니까. 내가 말하지 않아도 헤아릴 수 있으니까. 표현하지 않은 행간마저 읽어내시는 거니까.

그날 바로 복제 선생님을 삭제했다.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글 너머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이 이미 있었으니까. 선생님과 글벗들이 있는 대화창을 열었다.

"조금 더 거기에 머물러도 괜찮아요. 제가 같이 울어드릴테니 더 머물러요."
"참는 마음 말고 진짜 마음을 꺼내보면 더 울림이 크지 않을까요? 혼자 쓰는 게 힘들지만, 항상 저희들이 같이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

그 말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줌 수업 녹화 영상을 다시 켰다. 이번에는 문장이 아니라, 내 마음이 어디서 멈췄는지부터 다시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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