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구장 관중 '69명'...그때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어디 있었을까

김은식 2026. 4. 20.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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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의 야구팬의 탄생] 야구팬들은 암흑기를 어떻게 버티는가

그들은 누구인가. 어떻게 야구팬이 되었고, 무엇을 견디며 남았으며, 무엇 때문에 떠났는가. 이 연재는 한국야구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 야구팬들의 역사를 탐구하려는 시도다. 승패의 기록이 아니라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 구단과 선수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을 응원하던 사람들의 감정을 따라간다. 이 연재는 분석이나 비판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우리는"이라는 1인칭 복수의 시점으로, 야구팬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편지다. <기자말>

[김은식 기자]

 1999년 10월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롯데의 승리가 확정되자 흥분한 롯데 응원단이 1루측 철망 위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며 환호하고있다.
ⓒ 연합뉴스
1999년,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빛난 팀은 한화 이글스였다. 하지만 가장 뜨겁게 불탄 팀은 롯데 자이언츠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가장 깊은 골짜기를 지나던 그해, 지역 내 최대기업 삼성 자동차가 부도 위기에 몰리며 연쇄적 타격이 밀려오던 부산에서 사람들이 마음 기댈 곳은 야구밖에 없었다. 97년과 98년 내내 꼴찌로 바닥을 기던 자이언츠가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나 선두권을 질주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는 호칭을 주고 싶을 때마다 비교 대상이 될 펠릭스 호세를 비롯해 마해영, 문동환, 박석진, 박정태, 주형광까지, 롯데를 상징하는 선수들 대부분이 각자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그해에 맞이했다. 야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팬들의 모든 희망적인 '만약'이 한꺼번에 현실이 된 시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롯데는 나름 사연으로 얽힌 숙적 삼성 라이온즈를 만났고, '기적'이나 '혈전' 같은 말로는 도저히 다 담아낼 수 없는 전설을 남기며 승리했다. 투수전과 타격전을 넘어 포격전, 끝내는 관중들까지 참전한 '오물투척전'으로까지 번져버린 그 시리즈에서 롯데는 모든 것을 하얗게 불태웠다. 그 여파로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탈진해 버렸지만, 팬들의 가슴에서 1999는 1984와 1992에 나란히 놓일 또 하나의 숫자가 되었다.

추락,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문제는 그 이듬해부터였다. 모든 '만약'이 이루어진 1999년이 지나자, 이번에는 모든 '설마'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호세는 떠났고, 그 대체자는 한 달도 채 버티지 못했다. 그 와중에 전력의 핵심 마해영과 박정태, 문동환은 선수협의회 결성 논의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훈련에서 배제된 후유증을 시즌 내내 회복하지 못했다. 팀을 이기게 하는 일보다, 구단에 도전한 선수를 제압하는 일이 앞섰다. 십여 년 전 최동원 때 이미 한 번 겪었던 일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4월 18일, 2루 베이스 위에 서 있던 임수혁이 쓰러졌고 이듬해에는 김명성 감독이 과로와 스트레스에 짓눌린 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마해영이 트레이드됐고 90년대 내내 마운드를 지켜온 염종석과 주형광이 차례로 수술대에 올랐다. 몇 차례 감독대행과 신임감독이 오가는 사이, 유망주였던 이대호와 최준석은 무리한 체중 감량 과정에서 부상을 입어 오히려 체중이 폭증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성적 추락은 당연한 결과였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롯데는 4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특히 2002년은 상징적이었다. 승률 3할도 넘기지 못한 채 시즌 100패의 문턱까지 갔고, '꼴찌에서 2등'이었던 한화와도 무려 26경기 차가 나는 압도적인 꼴찌였다. 시즌 마지막 홈경기에는 단 69장의 입장권만이 팔렸다. 구단 식구들보다도 적은 관중이었다.

부산에서 야구는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야구를 보지 않았고, 아무도 야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것에 대해 말하거나 물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야구는 금지어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그 많던 팬들은 어디로 갔을까.

롯데 대신, 임수혁을 안고 버티다
▲ 임수혁의 회복을 기원하던 응원현수막 임수혁은 자이언츠의 비극을 상징하는 동시에 회복을 위한 출발점을 상징했다.
ⓒ SBS 스포츠 캡쳐 화면
그 시절, 사직야구장보다 더 북적이던 곳이 있었다. 병상에 누워있던 임수혁을 돕기 위한 모금 행사장이었다. 시즌이 끝난 초겨울, 선수들이 직접 술과 안주를 나르던 일일호프, 동료 선수들의 소장품 경매.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비로소 웃었고, 웃다가 함께 울었다. 선수들은 그곳에서야 고개를 들었고,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

황금기를 대표했으나 이제는 암흑기를 상징하게 된 이름, 임수혁. 팀을 사랑하지만 도저히 마주할 수 없었던 팬들에게 그는 비로소 마음을 풀고 껴안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래서 그 이름을 사이에 두고 모여 앉은 선수와 팬들은, 서로가 여전히 끊어질 수 없음을 확인했다. 어차피 그렇다면 별수 없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까지도. 그들은 경기를 보지 않았지만 행동했다. 그리고 행동의 기억은 관람의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암흑기라는 말은 확신을 준다. 기간이란 무한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이 아무리 길고 깊어도 결국은 끝난다는 확신이다. 리그가 계속되는 한, 한 팀의 시간이 영원히 바닥에 머물 수는 없다. 그래서 역설이 생긴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 '이제는 올라갈 차례'라는 희망으로 바뀐다.

웃음이 끊어지고 응원할 의지마저 지워졌던 그 시간 동안에도 팬들은 떠나지 않았다. 외면하면서도 지켜보았고, 실망하면서도 기다렸다. 그리고 이대호와 손민한, 강민호 같은 이름들이 쌓여가자 그 희망은 조금씩 만져졌고, 몇 해 뒤 그들이 팀을 다시 일으켰을 때 사직야구장은 매일 밤 광란의 무대가 되었다. 그들은 돌아왔지만, 애초에 떠난 적도 없었다.

21세기의 첫 몇 해 동안 롯데 팬들은 쓰러진 선수의 이름 하나를 붙잡고 버텼다. 그리고 그렇게 버틴 시간 속에서 함께 움직였다. 말하자면 자이언츠 팬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이들은 승리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끊어진 시간을 견디며, 그 안에서 행동했던 사람들이다.
▲ 암흑기에 입단해 부흥기를 이끌었던 이대호 암흑기에 자이언츠에 입단해 부상을 당하며 힘든 시기를 겪었던 이대호의 2007년 4월 모습. 그가 아내를 만난 것도 신인 시절 임수혁 돕기 행사에서였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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