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줄사표→업무 급증→퇴직 악순환…“檢에 ‘노약자’만 남아” [검찰 엑소더스]
검찰청의 공소청 전환을 앞두고 검사들이 줄줄이 옷을 벗는 ‘검찰 엑소더스’가 본격화했다. 과거 고검장·검사장 같은 간부급이 주로 퇴직하던 것과는 달리 최근엔 평검사들이 사직 대열에 합류했다.
4년 새 2배 불어난 검찰 이탈
19일 법무부와 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퇴직한 검사는 66명에 달한다. 지난해 역대 최다 규모인 175명이 사직했는데 올해 4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퇴직 검사가 지난해의 38% 수준에 달하면서 역대 최다 기록을 새롭게 쓸 것으로 전망된다. 퇴직 검사 수는 2020년(94명), 2021년(79명) 규모였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4년 새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사표는 또 다른 사표를 부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검사 줄사표로 1인당 업무량이 증가하면서 가중된 업무 부담이 퇴직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2월 기준 전국 검찰청 미제 건수는 12만1563건으로, 2024년 말(6만4546건)의 1.9배를 기록했다. 전국의 검사 1인당 평균 미제 건수는 2024년 말 73.4건에서 지난해 11월 135.7건으로, 1년여 새 1.8배 늘었다.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지난달 1인당 미제 건수가 512.3건까지 불어났다.
줄사표→업무량 증가→퇴직 결심
미제가 가장 많은 검찰청 중 하나로 꼽히는 천안지청에서 최근 퇴직한 초임 검사 2명은 사직 이유로 과도한 업무량을 꼽았다고 한다.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반복해도 미제는 줄지 않고, 검찰청을 떠나는 검사가 생길 때마다 남은 사람들의 업무 부담은 커지는 구조다.

지난해 휴직한 검사도 총 132명에 달한다. 육아휴직 109명, 질병휴직 19명으로 최근 10년 새 휴직자 수를 비교했을 때 가장 많다. 여기에 3대 특검(내란·김건희·해병) 공소유지 인력으로만 54명, 2차 종합특검에 13명을 파견하면서 핵심 인력이 대거 자리를 비웠다. 검찰 내에선 “수사 경험이 많아 복잡한 사건을 처리해줘야 할 검사들은 퇴직하거나 휴직하거나 파견 가거나 셋 중 하나다. 일선 검찰청엔 노약자(간부와 초임검사)만 남았다”(수도권 차장검사)는 자조가 나온다.
대책 내놓지만 근본 원인 그대로
법무부와 대검은 검사 수 부족으로 폭증한 업무량을 막기 위해 법무부 소속 검사와 대검 연구관마저 일선 검찰청으로 파견했다. 또 상대적으로 사건 수가 적은 지방 검찰청에서 수도권으로 인사 발령도 냈다. 경력검사 임용 절차도 예정보다 3개월 앞당겨 진행한다. 그러나 “중간 연차의 검사 부족을 해소하기 어렵고 검사 이탈을 막기 위한 근본적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재경지검 부장검사)는 분석이 나온다.
애초 검찰은 민간 대비 낮은 보수에 반대로 많은 업무량을 소화해왔다. 그 대신 공적인 역할과 권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사회적 인정 등을 바탕으로 이어져 온 구조다. 조직 내에서 노력과 역량을 인정받아 주요 보직을 거치면 퇴직 이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검사라고 직업 밝히는 것마저 꺼려져”
지금의 검찰은 조직을 유지해온 ‘정서적 인센티브’가 사라진 게 엑소더스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사직 행렬이 당연한 수순이라는 뜻이다. 올해 퇴직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검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마저 꺼려졌다”며 “일이 매우 힘들더라도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한다는 책임감으로 버티던 후배들이 더는 그 동력을 찾지 못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장동 항소 포기, 국회의 국정조사 등 외풍에 더해 당장 검찰청 폐지와 보완수사 축소까지 앞두고 있다. 이를 이유로 이미 퇴직하거나 퇴직을 고려하는 검사도 상당수다. 앞선 항소 포기 사태는 검찰 조직의 내홍으로 불거졌고, 결국 실망감이 커진 검사들의 이탈로도 이어졌다. 검사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여기에 중수청 전환으로 검사의 역할이 대거 줄어들 것이라는 점은 남은 변수다. 1차 수사권 폐지는 이미 결정됐고, 정부는 보완수사권도 지금보다 축소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권한과 책임이 모두 사라지면서 검사 대거 이탈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6일 국조특위 청문회에 나온 이원석 전 검찰총장은 “로스쿨에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이 검찰이나 공소청에 지원하겠다고 하면 저는 이제 자신 있게 공직을 권하는 말을 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정진호·정진우·석경민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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