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와 같다니”“현장 비하하나”…반도체 ‘뭉텅이 보상’ 논란

“지금 같은 획일적·일률적 보상 체계가 피나는 노력이나 전문성을 반영하나요? 평생 공부한 박사가 호황기 산업의 생산직 성과급의 10분의 1밖에 못 받는 상황입니다.”
19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한 대기업 직원의 하소연이다. 그는 “주어진 일만 하는 대체 가능한 인력까지 수억원 연봉을 받는 보상 체계는 이공계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가속페달이 될 것”이라며 “노력과 전문성에 따른 확실한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초호황 속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발 성과급 논란이 보상 체계의 공정성, 지속 가능성 논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특정 시기에, 특정 산업에 종사했는지 여부로 소득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는 것에 대해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고성과급 체계를 촉발한 SK하이닉스에서조차 내부 균열이 시작됐다. 이 회사 직원들 사이에선 “석·박사 출신 연구직과 생산직이 같은 성과급을 받는 것이 맞느냐” “현장 인력의 노고를 비하하는 것이냐”며 충돌을 빚고 있다.
삼성전자 내부에선 반도체(DS)부문과 다른 사업부문 간 노노 갈등 조짐이 커지고 있다. 현 노조의 요구대로 초과이익성과급(OPI) 상한선을 폐지할 경우 부문 간 성과급 격차가 더 벌어지기 때문이다. DS부문에서도 “개별 구성원의 성과를 반영하지 않은 일괄 보상은 불공정한 것 아니냐” “메모리·파운드리(위탁생산)·시스템LSI(설계) 등 사업부 간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반도체 성과급 논란을 계기로 국내 기업들의 보상 체계를 보다 정밀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부 환경에 좌우된 성과가 보상으로 연결되고, 이로 인한 격차가 심화할 경우 ‘노력→성과→보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흔들리고, 소속원의 동기부여 인센티브마저 흔들릴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산업 사이클 등 외부 요인의 결과를 개인 성과로 확대 해석하면 안 된다”며 “성과와 무관하게 보상이 결정되면 근로에 대한 몰입도와 성취를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과급이 경기 변동에 연동되는 구조에서는 업황이 나빠질 경우 보상이 급격히 줄어 근로의욕이 크게 훼손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성과급을 조직의 지속적인 동기부여 체계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개인이 만들어낸 고유한 가치와 성과에 기반한 구조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불공정 논란을 야기하는 ‘뭉텅이 보상’ 대신 개인 기여도 기반의 ‘핀셋 보상’ 설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모든 직원에 해당하는 기본 성과급에 더해 ▶최상위 성과 인센티브 ▶프로젝트 목표 달성 등 보다 세분화할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전 직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게 성과급 체계가 소속 직장인에겐 공정한 동기 부여인지, 기업에는 과연 미래 지향적인 보상 방안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금 보상이 아닌 중장기 목표와 연동된 보상 수단이 확대돼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지급을 확대하는 방법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RSU는 일정 기간(보통 3~5년) 이상 근무하거나 특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회사 주식을 무상 지급하는 제도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기업 입장에서 RSU를 활용할 경우 미래에 더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주가가 일정 가격 아래로 떨어지면 휴짓조각이 돼버리는 스톡옵션과 달리, RSU는 주가가 떨어져도 최소한의 주식 가치를 보존해 직원들에게 심리적 안전판을 제공한다. 직원이 회사에 오래 남아 기여할수록 손에 쥐는 주식이 누적되기 때문에 ‘오래 머물며 회사를 키우는 것이 내 자산을 극대화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셈이다.
경제학자 유리 그니지는 『인센티브 이코노미』에서 “단기 인센티브는 근시안적 결정을 유도해 기업 가치에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RSU와 장기적인 목표와 연동된 보상책으로 주주와 이해관계를 일치시켜야 기업의 장기 발전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미·김수민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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