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 여의도 전도대회 열기, 지역에서 먼저 불붙었다

박윤서 2026. 4. 20. 03:0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73년 6월 3일 서울 여의도광장.

이들 지역의 전도대회 누적 인원은 118만명 이상,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겠다며 결신에 나선 사람의 숫자는 1만6000명 이상이다.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상임대표인 김철영 목사는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방대회로부터 쌓인 영적 열기가 서울 여의도 본대회로 이어져 연인원 325만명 운집이란 부흥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빌리그레함 전집’ 속 부흥의 기록
빌리그래함 지방대회 참가자들이 1973년 5월 대구 경북체육관에서 설교를 청취하고 있다. 전집 캡처


1973년 6월 3일 서울 여의도광장.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1918~2018) 목사가 이끄는 집회에 115만명이 운집했다. 한국교회 단일 예배에 100만명 이상이 모인 건 경이적인 기록이다. 전도대회 닷새간 연인원 325만명 이상이 여의도에 모였다.

이 장면을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2주 전부터 서울을 제외한 전국 9개 도시에서 다져진 열기가 있었다.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대전 춘천 그리고 인천 수원 제주. 이들 지역의 전도대회 누적 인원은 118만명 이상,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겠다며 결신에 나선 사람의 숫자는 1만6000명 이상이다. 서울 여의도 본대회 기록과는 별개로 지역의 사전 전도대회 참석 인원과 도시별 결신자 수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 달 17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53년 만에 빌리그래함전도대회가 다시 열리지만, 지방에서부터 쌓아 올린 부흥의 열기는 그동안 교계의 시야 밖에 머물던 것이 현실이다.


국민일보는 한국기독교선교협의회가 빌리그래함전도대회 직후인 그해 7월 10일 소규모 한정판으로 발행한 ‘빌리그레함 전집-한국 전도대회특집’(신경사·표지) 책자를 입수했다. 당시 한국교회 측이 편집한 1차 기록물인데 반세기 동안 교계와 학계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지방대회는 73년 5월 16일 대전 충무체육관을 시작으로 차례로 개막했다. 18일 대구 경북체육관, 20일 춘천 강원체육관과 전주 신흥중고 교정, 광주 사직공원광장, 부산 공설야구장 등지에서 각각 일주일간 이어졌다. 인천 수원 제주에서도 소규모 집회가 열렸다. 6개 주요 도시에는 빌리그래함전도협회(BGEA)의 동역 전도자가 한 명씩 배치됐다. BGEA 최초의 흑인 협력전도사인 하워드 존스 목사부터 그레이엄 목사의 영적 동반자인 그래디 윌슨 목사까지 BGEA의 핵심 인사들이 등장한다.

전집에 기록된 지방 9개 대회의 누적 참가자는 118만1500명이다. 도시별 결신자 수가 눈길을 끈다. 부산 대회에서 예수를 믿겠다 서원한 인원은 5233명으로 9개 도시 가운데 가장 많았다. 전체 지방 결신자의 31%가 한 도시에서 나왔다. 전주 3452명 광주 3082명으로 호남 두 도시 합계 6534명은 전체 결신자의 39%에 달한다. 대전 1178명, 대구 1161명, 춘천 1339명 등이다.

특히 제주의 결신자 현황이 주목할 만하다. 1970년대 제주는 혈연과 씨족 중심의 괸당문화가 지배해 전도 자체가 쉽지 않았다. 제주에서 열린 전도대회는 참석자 4000명으로 9개 도시 중 가장 적은 인원이 참석했지만 결신율로는 10%를 기록해 1~2%에 머무르는 다른 지역을 압도했다.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상임대표인 김철영 목사는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방대회로부터 쌓인 영적 열기가 서울 여의도 본대회로 이어져 연인원 325만명 운집이란 부흥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김 목사는 “서울 지하철이 개통되기 전이고 도시 간 이동이 쉽지 않았던 시대였다”며 “지역교회 성도 중심의 부흥이 전국으로 확산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