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AI 시대, 일 시키는 법을 가르치자

2026. 4. 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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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AI에 ‘딸깍’하면 과제도, 보고서도, 발표문도 금방 나온다. 그러면 학교는 이제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요즘 많은 교사와 교수가 같은 고민을 한다. 학생들은 과제를 할 때 AI를 쓴다. 교사와 교수는 채점에 AI를 쓴다.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평가하는 사람도 AI에 기대고 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걱정이 앞선다. 학습 과정은 돌아가지만, 정작 배움은 남지 않기 때문이다. 과제와 발표·평가 모두 껍데기만 남고 실질은 사라지고 있다.

「 AI 의존 고치겠다고 안 쓸 순 없어
정답 도달하는 과정 갈수록 중요
AI에 속지 않고 쓰는 법 가르쳐야

김지윤 기자

그래서 어떤 이는 AI 사용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어린 학생일수록 AI에 과의존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할 염려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답이 되기 어렵다. AI를 교실 밖으로 밀어낸다고 우리 아이들이 AI 없는 미래를 살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AI 시대 교육의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지금까지 학교는 일 잘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근대의 공교육은 보편적인 무상 교육을 확장시켜 왔다. 이로써 아침에 제때 학교에 와서 주어진 숙제를 마치는 습관을 길러 왔다. 민주 시민을 기르는 역할도 했지만, 산업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AI는 이 영역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이제 시킨 일을 잘 따르는 것은 점차 AI가 더 잘해낼 수 있게 됐다.

그러니 교육의 목적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일하는 법’만이 아니라 ‘일 시키는 법’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조선시대 왕세자를 떠올려 보자. 그의 곁에는 수많은 신하가 있었다. 지시만 내리면 무슨 일이든 대신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교육이 필요 없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 일을 할 필요가 없더라도, 일을 제대로 시키는 법은 반드시 배워야 했다. 무슨 일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누구에게 무슨 일을 맡길지 정해야 하며, 올라온 보고가 맞는지 가려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세자 교육을 맡는 기관도 따로 있었다. 왕세자는 하루 종일 유교 경전을 읽고 시험을 보아야 했다. 율곡 이이가 젊은 선조에게 지어 올린 『성학집요』가 바로 임금을 위한 공부 교재였다. 율곡은 이 책에서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는 용현(用賢)을 강조했다. “임금의 직무는 현명한 사람을 알아보고 잘 맡기는 일을 급선무로 삼아야 한다”고 썼다. AI를 부리는 것도 비슷하다. 늘 충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간신 같은 AI’도 많다. 그럴듯한 말로 얼버무리고, 없는 사실을 지어내며, 성급하게 답을 내놓는다. 그러니 좋은 AI를 가려낼 줄 알아야 한다. 각 도구의 능력을 가려 그에 맞는 일을 맡길 줄 알아야 한다.

그다음에는 AI에 일을 잘 시키는 법도 배워야 한다. 작업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해 주는 법, 좋은 지시문을 작성하는 법, 나온 결과를 검증하는 법, 스스로 고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무엇보다 어떤 일은 AI에 맡기고 어떤 일은 스스로 해야 하는지 경계를 정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배우는 내용이 달라진다면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 결과물만 보고 점수를 매기면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AI의 답변을 평가하는 셈이 된다. 이제는 학생이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중간에 어떤 판단을 했는지, AI의 답에서 무엇을 고치고 버렸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래야 과제를 설계하고 답을 감별하는 학생을 길러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중등교육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아이들은 모르는 것이 생길 때마다 AI에 먼저 물을 것이다. 숙제를 내주면 곧바로 AI로 달려갈 것이다. 정답만 요구해서는 그 과정에서 배움이 남지 않는다. 과제의 정답을 얻는 것보다 답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좋은 신하가 되는 것보다 좋은 임금이 되는 것이 더 어렵다. AI 시대의 교육도 그렇다. 스스로 일하는 법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AI를 쓰되 그에 휘둘리지 않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빨리 내는 능력만이 아니다. AI와 함께 생각하되 마지막 판단은 스스로 내리는 사람으로 길러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에도 교육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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