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허세, 뒤에선 공포… 트럼프의 속사정?
‘지옥’ ‘알라 찬양’ ‘문명 파괴’ 등
잇단 도발 게시물, 모두 증흥 발언
협상 유도용… “반응 어때” 묻기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전쟁을 두고 공개적으로 허세를 부리면서도 이면에서는 스스로의 두려움과 씨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란 전쟁 과정에서는 참모진이 트럼프의 조급함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그를 실시간 브리핑에서 배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협 열지 않으면 지옥에 살 것” “알라를 찬양하라” “이란 문명 파괴하겠다” 같은 도발과 위협은 모두 참모진과 협의 없이 내놓은 발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몇 시간 동안 보좌진에 고함을 질렀다고 WSJ는 전했다. 이란에서 미군 전투기가 격추돼 공군 조종사 두 명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직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은 아무 도움도 안 된다”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의 최대 외교 정책 실패 사례로 꼽히는 1979년 이란 인질 사건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사건은 이란 혁명 후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이 점거당해 미국 외교관 52명이 억류된 상황에서 인질 구출 작전이 실패한 사건이다. 당시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는 재선에 실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측근들에게 “지미 카터 때를 보면 헬리콥터랑 인질 문제로 선거를 날려버리지 않았느냐”며 “완전 엉망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에 실종 조종사들을 구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인질 사태 이후 이란 본토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험한 지형에 어떻게 진입하고 이란 군을 어떻게 피할지부터 계산해야 했다.
보좌진은 트럼프 대통령의 조급함이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해 실시간 상황 브리핑에서 그를 배제했다고 고위 행정부 관계자가 WSJ에 말했다. 중요한 시점에만 업데이트 내용을 전달했다고 한다.
조종사 한 명은 비교적 빨리 구조됐다. 두 번째 조종사가 위험한 구조 작전을 통해 구출됐다는 소식은 지난 4일 늦은 밤에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WSJ는 “자칫 두 번의 임기 중 최악의 순간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상황은 피했다”며 “새벽 2시가 넘어서야 트럼프도 잠자리에 들었다”고 전했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라는 새로운 상황에서 더 강도 높은 비정통적·극단적 접근법을 펼치고 있다”며 “강경과 회유 사이를 오가며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에 대해 물밑에서 씨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때로 집중력을 잃고 백악관 연회장 설계 세부사항이나 중간선거 모금 행사에 시간을 쓰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주제로 전환하고 싶다고 보좌진에게 말하기도 한다고 WSJ는 전했다.
신문은 “사안에 정통한 인사들에 따르면 트럼프는 일부 병력이 다치거나 돌아오지 못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군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쟁을 치른 다른 대통령들처럼 개인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원유 수출량의 90%가 출발하는 하르그섬 점령을 위해 미군을 투입하는 방안에 대해 반대해왔다고 한다. ‘성공 가능성이 높고 섬 장악 시 해협 접근권도 확보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승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측 사상자가 늘어날 것을 우려했다. 그는 “그들은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표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로는 국가안보팀 의견을 듣지 않고 위험한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이란 문명을 파괴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이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당시 “해외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약했다. 정작 이란 전쟁에 나선 상황에서 휴전은 불확실하고 핵심 무역로는 몇 주째 막혀 있다. 이란 정권은 급진적인 새 지도부로 교체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6주면 끝난다”고 여러 차례 말한 작전은 이미 기한을 넘겼다.
미국기업연구소(AEI) 코리 샤키 선임연구원은 WSJ에 “우리는 놀라운 군사적 성과를 보고 있지만 그것이 승리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전적으로 대통령과 그의 업무 수행 방식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후 게시물에 대해 묻는 보좌관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알라’ 아이디어는 자신이 직접 떠올렸다고 답했다. 최대한 불안정하고 모욕적으로 보이길 원했고, 그게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이해할 언어”라고 말했다.
동시에 후폭풍도 걱정했다. “반응이 어때?”라고 보좌진에게 물었다고 한다.
지난 7일에는 이란이 12시간 안에 합의하지 않으면 문명 전체가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WSJ는 이를 ‘재임 중 가장 극적인 최후통첩’이라고 표현했다.

행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역시 즉흥 발언이었다. 국가안보 전략 차원에서 계획된 행동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WSJ는 “미국과 전 세계 사람들은 대통령이 뭘 하려는지 몰라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며 “하지만 내부에서는 대통령이 끝내고 싶어 하는 전쟁에서 협상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조치를 봤다”고 전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비공식적으로, 이런 표현이 실제로 이란을 협상으로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보좌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진짜로 원한 것은 이란을 겁주고 갈등을 끝내는 것이었다고 WSJ는 설명했다. 시한 90분을 남기고 트럼프 대통령은 2주 휴전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백악관 상황실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브리핑을 받은 뒤 입장을 바꿨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백악관 외부 측근들과 대화를 반복한 그는 “군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에서 반미 성향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에 성공한 사례에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좌진에 “베네수엘라에서 얼마나 빨리 이겼는지 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란에서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고위 인사들을 제거하며 전쟁을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일 아침 이란 전역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폭발 영상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폭탄 규모에 감탄하며 군의 능력에 경외심을 드러냈다고 보좌진은 WSJ에 전했다.
신문은 “하지만 트럼프는 전쟁의 필요성을 미국 국민에게 설득하는 데는 거의 노력하지 않았다”며 “행정부가 충분한 외부 찬사를 얻지 못하자 곧 불만을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백악관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은 ‘불공정한 언론 보도 탓’이라고 불평했다.
보좌진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11월 중간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보여주며 전쟁이 공화당 후보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자신은 재선에 나설 필요가 없었다. 또 이란에 대한 승리가 세계 질서를 재편할 기회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작전 초기 “이걸 제대로 해내면 우리는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 인사가 WSJ에 전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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