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 민주항쟁'의 위상 재정립은 시간문제일 뿐
[서부원 기자]
섣부르긴 해도, 부마 민주항쟁(부마 항쟁)과 5.18민주화운동(5.18)의 헌법 전문 수록이 머지않은 듯하다. 국회는 6월 3일에 치러질 지방 선거와 동시에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 투표를 실시한다는 것을 목표로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 2026년 4월, 우원식 국회의장과 187명의 여야 국회의원이 공동으로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헌법 전문에 부마 항쟁과 5.18 정신을 명시하는 내용과 함께 비상계엄에 대한 국회의 사후 승인권 강화 등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포함되었다. '12.3 윤석열 내란'과 같은 사태를 예방한다는 취지다. 반대 의견을 표명한 국민의힘 지도부 등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남아있긴 해도, 대세를 거스르긴 어려울 것이다.
따로 분리할 수 없는 '한 덩어리' 역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4.19의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고 규정한 헌법 정신에 부마 항쟁과 5.18의 역사적 의미를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면면히 이어져 온 민주화운동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고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개헌을 민주주의 정체성 확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여론의 지지도 높다.
버젓이 역사를 폄훼하고 왜곡하며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이들을 차단하고 단죄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이른바 '5.18 북한군 개입설' 등이 SNS에 사실인 양 떠도는 현실에서 헌법 전문 수록은 가장 확실한 '방화벽'이 될 것이다. 5.18의 정신을 폄훼하고 유족을 조롱하는 건, 곧 헌법을 부정하는 행태로 받아들여질 테다.
부마 항쟁이 5.18과 함께 수록되는 것도 그 의미가 작지 않다. 현재 4.19와 부마 항쟁, 5.18과 수십 년 군부 독재정권을 끝장낸 6월 민주항쟁은 '대한민국의 4대 민주화운동'으로 묶어 기리고 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와 국민 기본권 보장을 골자로 한 현행 헌법 개정의 직접적 계기였다.
4.19와 5.18, 6월 민주항쟁은 교과서에서 각각 하나의 단원으로 설정되어 있을 만큼 비중이 크지만, 부마 항쟁에 관련된 서술은 소략하기 짝이 없다. 유신 관련 단원의 맨 뒤나 5.18을 다룬 단원의 맨 앞에 한두 줄 설명하는 게 고작이다. 자타공인 역사 '덕후' 아이들조차 부마 항쟁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다.
유신 정권이 몰락한 뒤 5.18로 이어지는, 이른바 '9말 0초(1979년 말~1980년 초)'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변곡점이다. 'YH 무역 사건'과 김영삼 신민당 대표의 의원직 제명, 부마 항쟁, 10.26 사태, 12.12 군사 반란, 그리고 '서울의 봄'과 5.18까지. 채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이 엄청난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이태 전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동원한 것도, 영화가 모티프로 삼은 파란만장했던 '9말 0초'의 역사 덕이 크다. 교과서의 구성대로 유신의 몰락과 동시에 5.18이 '갑툭튀'한 걸로 알고 있던 아이들에게조차 5.18의 '전사(前史)'를 보여줌으로써 톡톡한 교육 효과를 냈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열 교과서 부럽잖은 법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도 부마 항쟁은 드러나 있지 않다. 사건으로만 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10.26 사태로부터 시작해 12.12 군사 반란에서 끝난다. 하지만 그 사건들이 5.18과 6월 민주항쟁의 전조였다는 건 관객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영화는 에필로그인 양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파노라마처럼 쇼츠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얼개처럼 10.26 사태와 12.12 군사 반란과 5.18은 따로 분리할 수 없는 '한 덩어리' 역사다. 마치 4.19가 대구의 2.28 민주운동과 창원(마산)의 3.15 의거 등과 분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부마 항쟁이 10.26 사태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일진대, 이 또한 5.18과 연속선상에서 평가되어야 하는 역사다.
4.19가 서울과 광주, 대구와 창원을 정서적으로 이어주는 구실을 했듯, 부마 항쟁과 5.18의 헌법 전문 동시 수록은 부산과 창원, 광주의 지역적 교류를 활성화하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각각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모래알처럼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부마의 역사가 곧 광주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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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마 민주항쟁 당시 교문 진출이 시작된 현장인 '시월광장(당시 운동장)'에서 연수에 참여한 교사들이 구호를 외쳤다. |
| ⓒ 서부원 |
부산과 울산 지역의 교사 35명이 봄에 부마 항쟁에 관하여 공부한 뒤 가을에 5.18 사적지를 답사하는 걸로 지역 교류의 문을 열었다. 1박 2일의 일정으로,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개괄하는 강의와 부마 항쟁 사적지 답사, 독재정권의 '금지곡'을 주제로 한 음악극, 수업 사례 발표 등 다양한 꼭지로 구성됐다. 광주의 교사인 필자도 강사로 초청받아 그들과 일정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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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설공학관(옛 중앙도서관) 앞에 세워진 발상지 표석 앞에서 교사들이 부마민주항쟁 해설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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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마민주항쟁 답사는 대개 항쟁탑에서 마무리된다. 항쟁탑 주위엔 부산대학교 출신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의 자취가 선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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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 항쟁이 헌법 전문에 수록되면 교과서에서의 서술 비중도 자연히 커지게 될 거라면서도, 이를 대비한 교사들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여느 민주화운동에 견줘 지금껏 간과된 이유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고, 박정희의 갑작스러운 피살과 적은 희생자 수, 무엇보다 항쟁 관련 기록의 부족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언론 기사가 온통 박정희의 사망 소식으로 도배되다시피 하면서, 정작 피살의 원인인 부마 항쟁이 덮여버렸다. 유신 독재정권에 철저히 주눅 든 기성 언론의 무능과 무책임이 부마 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훼손시켰다는 거다. 공식적 기록이 많지 않으니 말하기 조심스럽고, 언급을 꺼리다 보니 시나브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잊힌 셈이다.
박정희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과 부마 항쟁의 위상이 '반비례' 관계인 탓도 크다. 박정희를 추앙하는 목소리가 클수록 그를 죽음으로 내몬 부마 항쟁은 일순간 난처한 처지가 된다. 특히 요즘 같은 선거철 특정 지역의 후보자들이 '박정희 팔이'에 여념이 없는 경우, 부마 항쟁은 함부로 입 밖에 낼 수 없는 '금기어'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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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지역 프로젝트 그룹 '봄꽃'의 공연 모습.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전하는 부마 민주항쟁의 '미시사'에 교사들은 박수로 화답하며 울고 웃었다. 부마 민주항쟁에 관심 있는 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할 필수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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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젝트 그룹 봄꽃의 공연을 마치고, 공연팀과 교사들이 무대에 올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모두가 감동의 도가니였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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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수는 지역의 교사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부마 항쟁 알리기'에 의기투합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부마 항쟁의 위상을 되찾는 건 시간문제라는 확신이 든다. 6월 3일 국민 투표를 통한 개헌을 화룡점정이라고 표현한 한 교사는 연수를 매조지듯 이 질문을 던졌고, 모두가 이구동성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답했다. "(개헌안 통과의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과연 국민의힘 의원 중 10명이 돌아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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