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빚고, 머리 다듬고... '동네'에서 이어가는 삶의 자리
[유창재 기자]
|
|
| ▲ 봄비가 내리는 지난 10일 강원도 원주에 있는 동네방앗간을 찾았다. 이 장소는 원주시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을 위해 무상으로 임대해줬다. 이곳에서 어르신들의 삶의 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
| ⓒ 유창재 |
내 입안에선 "서두른다고 했는데..."라는 변명이 맴돌았지만 내뱉지 못했다. 이미 어르신들은 노인일자리 참여시각인 오전 7시 30분보다 훨씬 일찍 나와서 일을 시작했다. 방앗간 일 특성상 약속된 시간이 중요하기에, 떡을 만들기 전부터 준비할 것이 많은 이유에서다.
어르신들은 하루 네 시간씩 일한다. 누군가는 쌀을 씻고, 누군가는 쌀을 빻는다. 이어 시루에 쌀가루를 옮겨 담는다. 네모난 떡시루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다 익은 떡을 기계에 꾹꾹 눌러 넣으면 하얗고 기다란 가래떡이 나온다. 어르신들의 손놀림은 느리지만 익숙하다. 손발이 척척 맞아서인지 전체적인 속도는 빠르게 느껴진다.
|
|
| ▲ 공동체사업단 노인일자리인 '동네방앗간'에 참여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떡을 만들고 있다. 각자 역할을 나눠 쌀을 씻고 물에 담그기도 하고, 쌀을 빻기도 하고, 떡을 찌기도 하고, 떡을 뽑고 만들기도 한다. |
| ⓒ 유창재 |
동네방앗간은 원주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공동체사업단(시장형)이다. 14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노인일자리에 현재 25명의 어르신이 참여하고 있다.
이곳에선 다양한 떡이 만들어진다. 가래떡, 백설기, 인절미, 시루떡, 영양찰떡, 모찌까지 하루 평균 예닐곱 가지. 여기에 참기름과 들기름까지 더해진다. 여름철엔 고추가루도 빻는다. 바쁜 날에는 주문량이 넘쳐 오후에는 물량이 부족할 정도다. 완판되는 날이 많단다.
"봄에는 오후 되면 (떡이) 모자라요. 그래도 재고가 남으면 안 되잖아요. 딱 거기까지만 해요."
한 어르신의 말처럼, 이곳의 원칙은 '남기지 않는 것'이다. 어쩌다 떡이 남으면 나눠 먹거나 하나씩 들고 집으로 간다. 떡값은 시중보다 확연히 낮다. 가래떡 한 말에 6만 원, 소포장 떡은 2천 원에서 5천 원 수준이다. 이윤 극대화가 목적이 아니다. '노인일자리' 취지에 맞게, 가격도 조심스럽게 정했다고 한다.
|
|
| ▲ 정명순(72) 어르신은 원주 동네방앗간에서 12년째 일하고 있다. 일자리 참여 전부터 떡집일을 해왔던 터라 현재 이곳에서 팀장 역할을 하고 있다. |
| ⓒ 유창재 |
정명순(72)씨는 이곳에서 12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남편도 없고 혼자 (집에) 있으면 뭐해요, 예전에 떡집 할 때 했던 일이라 익숙하다"면서 "(떡집을) 혼자서는 못 했죠. 배달도 해야 하고 힘들잖아요"라고 했다. 그에게 이 일은 생계이면서도 '관계'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 버틸 수 있다. 유경험자이기에 교육도 맡고,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한다. 나머지 참여자들은 대부분 떡 만드는 일이 처음이다.
기름을 짜는 일을 맡은 한 남성 어르신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회사 다니다가 (동네방앗간 일자리에) 왔어요. 지금은 운동 삼아 하는 거죠. 용돈도 벌고"라는 그의 말에 돈보다 '움직임'과 '소속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
|
| ▲ 공동체사업단 노인일자리인 '동네방앗간'에 참여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들기름을 짜고 있다. |
| ⓒ 유창재 |
지금은 인근 방앗간과 관계도 좋다. 경쟁이 아닌 공존. 이 사업이 자리잡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설득과 조율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강원지역본부와 원주시니어클럽 분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성과다.
지난해 매출은 약 3억1400만 원. 하지만 이 수치는 단순한 성과로만 보긴 어렵다. 이 사업은 수익사업이면서 동시에 '복지사업'이다. 재료비, 시설보수 등에 사용하고, 남은 돈은 참여 어르신들에게 골고루 돌아간다.
송우열 강원본부 차장의 말이 이를 잘 설명한다. "국고 지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입니다. 민간으로 나가면 같은 조건으로 급여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즉, 이 시스템은 '완전한 시장 논리'가 아닌 '보조와 보호'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은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는 사실이다. 일반 떡집의 경우 가장 매출이 높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쉰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르신들의 건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효율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결정이다. 동시에 지역 주변 떡집(방앗간)과 상생하기 위함이다.
|
|
| ▲ 강원도 원주에 있는 동네미용실 2호점. 원주시니어클럽 공동체사업단(시장형) 사업 현장이다. |
| ⓒ 유창재 |
30년 경력의 미용사 박용자(79세)씨는 이곳에서 11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젊은 사람은 거의 안 와요. 어르신들이 주 손님이죠"라며 "그래도 하루 20~30만 원 매출 나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보조 역할을 맡은 이정숙(70세)씨는 원래 미용 일을 하던 사람이 아니다. 그 역시 처음엔 이 미용실의 손님이었다. "머리하러 왔다가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팔도 아프고, 근데 팀이 좋아서 계속하게 돼요"라는 그는 '일의 강도'보다 '사람'을 이유로 꼽았다.
|
|
| ▲ 공동체사업단 노인일자리인 '동네방앗간'에 참여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가래떡을 뽑아내고 있다. |
| ⓒ 유창재 |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은 "요즘 우리 나이에도 다 일해요. 요양보호사든 뭐든. 노는 사람이 없어요"라고 했다. 이 말은 단순한 체감이 아니다. 실제로 고령화된 우리 사회에서 신노년층의 경제활동 참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일자리가 모두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공공 기반의 일자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현장에서 본 원주의 방앗간과 미용실은 거창한 성공 사례라기보다 조용히 지속되는 실험에 가깝다. 시장과 복지의 경계에서, 이익과 존엄의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일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도움받는 대상이 아니라 '일하는 주체'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일자리는 이미 충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문명 붕괴' 언급한 트럼프, 그가 탐내는 AI '절대반지'
- "나한테 노인일자리요? 그냥 살아있다는 느낌이죠"
- '살목지 귀신 괴담' 마을 갔더니, 어느 주민이 "이리 오라"며 데려간 곳
- 금가락지 하나 없던 시어머니 유산, 텃밭에서 나왔다
- 한여름 평균 기온이 40도인데 매년 80만 명 넘게 오는 곳
- [단독] '내가 교육감 선거 참여단?' 100여명이 본인 삭제 요구
- 폭설 쏟아진 고요한 북한산에서 작가가 마주한 경이로운 찰나
- 이란 협상대표 "미국과 협상 일부 진전…최종 합의까진 멀어"
- 이곳은 말 그대로 '꽃대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 이 대통령 "4.19 정신 있었기에 내란의 밤 물리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