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벚꽃 사진 아냐? 이 감성 어떻게 찍었냐면요

이재필 2026. 4. 1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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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물조차 구하기 힘든 유물... 니콘F50과 함께한 안동 출사

사진가이자 작가로 활동하며 전통시장과 주변의 일상을 기록해왔다.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통해 사라져 가는 풍경과 기억, 기록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기자말>

[이재필 기자]

▲ A7촬영 아남니콘의 마지막 모델 F50과 28-85니코르렌즈
ⓒ 이재필
촬칵 찌이이잉. 셔터 소리보다 먼저 귓가를 때리는 것은 육중한 모터 드라이브의 구동음이다. 오늘 내 손에 들린 카메라는 사진가들 사이에서 '최악의 니콘'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얻기도 했던 니콘 F50이다.

1990년대 중반, 각진 금속 바디의 시대를 지나 '미래지향적'이라는 미명 아래 온몸을 둥글둥글한 플라스틱으로 감싸고 나타난 이 카메라는, 사실 매물조차 구하기 힘든 유물이다. 비슷한 가격대에 F60이나 F70 같은 훨씬 친절한 후속 기종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악명 높은' 녀석을 들고 벚꽃 길을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지독한 레트로 감성, 니콘F50
▲ Sony A7촬영 8비트 레트로 게임기를 떠올리게 하는 LCD 상태창. 그 빛은 오래된 컴퓨터 단말기의 화면처럼, 느린 시간의 결을 품고 있다.
ⓒ 이재필
처음 이 카메라를 마주하면 누구나 당혹감에 빠진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익숙한 디지털카메라는 물론이고, 웬만한 필름 카메라에도 당연히 있어야 할 '모드 다이얼'이나 수치를 조절하는 '휠'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대신 상단에는 거대한 LCD 창과 함께 8비트 컴퓨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투박한 버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스마트폰의 직관적인 터치에 익숙한 MZ세대에게 F50의 인터페이스는 마치 전원을 켜자마자 영문 명령어(DOS)를 타이핑해야 했던 옛날 컴퓨터를 마주한 아찔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투박한 액정 속에 박히는 각진 문자들은, 역설적으로 그 시대를 통과해온 이들에게는 지독한 레트로 감성을, 처음 보는 이들에게는 낯선 신선함을 안겨준다.
▲ NIKON F50촬영 벚꽃은 매년 피지만,이날의 공기와 이 거리의 온도는 다시는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 이재필
F50이 '최악'이라 불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복잡한 조작 체계에 있다. 보통 사진의 밝기를 조절할 때 우리는 조리개를 열거나 셔터 속도를 바꾼다. 보통 그럴 때 다이얼을 통해 직관적으로 조작한다.

그런데 이 카메라는 그 과정이 흡사 컴퓨터 폴더를 하나씩 클릭해 들어가는 과정과 닮아 있다. 먼저 '메뉴' 버튼을 눌러 조리개 우선(A)인지 셔터 우선(S)인지를 선택하고, 그다음 하위 메뉴로 진입해 수치를 변경해야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조리개 값을 바꿀 때와 셔터 속도를 바꿀 때 사용하는 버튼이 각각 다르게 할당되어 있다는 점이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그리고 프로그래머가 서로 한 마디도 섞지 않고 각자 만든 기능을 이어 붙인 것 같은 이 '대환장 파티'는 사용자에게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있다면, 이 과정은 '어려움'보다는 '귀찮음'에 가깝다. 조리개(렌즈에서 빛의 양을 조절하는 기능)는 우리 눈의 수정체처럼 빛의 양과 배경 흐림을 조절하고, 셔터 속도는 찰나의 시간을 얼마나 길게 혹은 짧게 기록할지를 결정한다.

이 구조를 머릿속에 그린 채 버튼을 꾹꾹 누르다 보면, 어느덧 기계와의 기싸움에서 승리하는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벚꽃 잎이 날리는 긴박한 순간에도 이 느릿한 조작법은 오히려 산책자의 호흡을 가다듬게 만든다. 빠르게 찍고 넘기는 디지털의 속도전에서 벗어나, 한 장의 노출을 맞추기 위해 정성스럽게 버튼을 누르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 되는 셈이다.
▲ NIKON F50촬영 한 그루 나무 아래, 서 있는 사람과 지나가는 사람이 서로의 시간이 된다. 꽃은 그저 배경인데, 이상하게도 모든 장면이 기억처럼 남는다.
ⓒ 이재필
까다로운 완벽주의와 시원한 파인더

F50은 의외로 깐깐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니콘의 축복이라 불리는 수많은 수동 렌즈나 최신형 렌즈들 중에서도 CPU(전자 접점)가 없는 렌즈를 끼우면 자동 초점(AF)은커녕 조리개 수치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즉, 이 카메라가 태어난 시절의 '방식'을 고집스럽게 요구하는 셈이다.

나는 오늘 이 까다로운 녀석에게 90년대 표준 줌 렌즈를 마운트했다. 뷰파인더 안으로 들어오는 세상은 의외로 시원하고 맑다. 하단에 작게 빛나는 녹색 정보창(인디케이터)은 투박하지만 정직하게 셔터 속도와 조리개 수치를 띄워준다. 최신 미러리스 카메라의 화려한 정보창에 비하면 초라할지 몰라도, 딱 필요한 정보만을 전달하는 그 정갈함이 오히려 사진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초보자들에게 이 제약은 불편함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카메라에 맞는 렌즈를 사용해"라는 명확한 가이드는 오히려 장비 선택의 고민을 줄여주기도 하며 지갑의 가벼움도 책임져 준다. 벚꽃 나무 아래에서 파인더를 들여다보면, 8비트 감성의 녹색 글자들과 눈앞의 화사한 꽃잎들이 묘하게 대비되며 2026년의 안동을 1994년의 어느 날로 되돌려 놓는다.

기능이 제한적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복잡한 메뉴 설정 대신, 나는 오직 꽃잎에 닿는 빛의 방향과 구도에만 전념하며 셔터 버튼에 손을 올린다.
▲ NIKON F50촬영 그리고 다리 위,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서로의 봄이 겹쳐진다.
ⓒ 이재필
하만 피닉스가 그린 노란 봄, 벚꽃 팝콘 아래에서

오늘 F50의 뱃속을 채운 필름은 하만 피닉스(Harman Phoenix) 200이다. 영국 하만 사에서 내놓은 이 필름은 20년 전 코닥 필름을 연상케 하는 강렬하고 샛노란 발색이 특징이다. 올해 안동의 봄은 변덕스러운 날씨를 뚫고 드디어 제 타이밍에 맞춰 벚꽃을 피워냈다.

거리마다 팝콘처럼 터진 하얀 꽃송이들이 사람들을 반기는데, 피닉스 필름의 따스한 색감은 이 화사한 풍경에 빈티지한 온기를 덧입혀줄 것이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벚꽃 길은 주말을 앞둔 설렘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을 들고 셀카를 남기느라 분주했고, 그들의 얼굴은 꽃잎처럼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F50의 조리개를 f/4 정도로 맞추고, 흩날리는 꽃비 속의 사람들을 담았다. 피닉스 필름 특유의 노란 기운은 벚꽃의 화이트 톤을 더욱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축제장의 들뜬 공기와 사람들의 높은 텐션은 8비트 LCD 화면 위에서 숫자로 치환되어 기록된다.

비록 조작은 번거롭고 바디는 플라스틱의 가벼운 딱딱 소리를 내지만, 그 안에서 돌아가는 필름 한 칸은 분명 가장 찬란한 봄의 조각을 물리적으로 새기고 있었다. 기다림 끝에 얻어지는 필름 한 롤의 가치는, 터치 한 번으로 만들어지는 수백 장의 사진보다 무겁게 다가온다.
▲ NIKON F50촬영 갈림길을 알리는 표지판 위에도 잠시 머물다 가는 계절이 내려앉고, 그 아래를 걷는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봄을 통과한다.
ⓒ 이재필
실패의 가능성, 필름 사진이 주는 최고의 묘미

오늘 하루, 내 손과 어깨에는 '최악'이라 불리던 F50이 머물렀다.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나는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디지털카메라였다면 이미 수차례 확인하고 지웠을 사진들이지만, 이 카메라는 그 모든 순간을 철저하게 암흑 속에 가두어둔다.

마치 10년의 고독을 견디고 책을 내놓은 친구처럼, 내가 오늘 기록한 안동의 풍경들도 현상소의 독한 약품 냄새를 통과하고 스캐너의 붉은 광선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그 속살을 드러낼 것이다. 어쩌면 초점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혹은 조작 실수로 너무 어둡게 찍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실패의 가능성'이야말로 필름 사진이 주는 최고의 묘미다.
▲ NIKON F50촬영 안동의 봄은, 길 위에서 먼저 피어난다. 벚꽃은 나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발걸음 사이로 흘러간다.
ⓒ 이재필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방 속에는 한 롤의 필름이 묵직하게 들어있다. 벚꽃의 화려함도,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그리고 F50의 그 고집불통 같은 버튼 조작법도 이제는 하나의 추억으로 인화될 준비를 마쳤다.

서두르지 않고,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며, 다가올 미래를 기쁘게 고대하는 법. F50은 나에게 '최악의 기능' 대신 '최고의 기다림'을 가르쳐주었다. 며칠 뒤 현상소에서 전송될 사진 속에서, 나는 오늘의 나를 다시 한번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의 풍경은 또 어떤 노란 빛깔로 나를 반겨줄까. 촬칵, 찌이이잉. 마지막 셔터를 누르며, 나의 산책은 비로소 완성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https://brunch.co.kr/brunchbook/mycamera4th)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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