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아이들을 풀어놓았더니 시인이 되었네요
2011년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학교가 아닌 다양한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이정현 기자]
학교에서 마음 아픈 아이들을 많이 만나왔다. 해가 갈수록, 수업 시간에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아이,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 하루종일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바닥만 보는 아이들이 자꾸 늘어만 갔다.
그 원인을 찾다가 '만약 아이들이 병들었다면 그것은 아이들이 마음껏 놀지 못한 것에 대한 복수'라는 에리히 프롬의 글귀를 보고 공감이 되었다. 학교 운동장에서도 제대로 뛰어놀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이들이 마음껏 놀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 질문 끝에 '자연에서의 수업'을 진행해보기로 했다. 자연은 내 삶에서 큰 스승이자, 학교였고, 언제든 나를 안아주었던 품이었기 때문에, 자연에서 아이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노는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마침 봄이 아름다운 계절이라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봄 탐험대 모집'이라는 제목으로 아이들을 모았다. 3학년인 내 첫째아이를 포함하여 1~4학년까지 8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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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벚나무 아래에서 출발 |
| ⓒ 이정현 |
"봄은 왜 봄일까요?"
내가 눈을 크게 뜨고서 아이들을 바라보자 아이들이 둥지 속 아기 새들처럼 일제히 입을 벌려 대답했다.
"보니까요!"
"맞아요. 오늘 우리는 새롭게 보게 된 것, 숲 속에서 들리는 소리 등을 이 노트에 기록해볼게요. 이 노트로 여러 단어들을 채집해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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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 속 개나리 터널을 지나 |
| ⓒ 이정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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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과 아이들 |
| ⓒ 이정현 |
그러다가 마치 꽃에 앉은 나비처럼 가만히 몸을 낮춰 앉아 작은 꽃이나 이끼를 바라보거나,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들으며 '단어 채집장'에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오, 이건 뭐지?", "이것 좀 봐!"라며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봄비 내린 뒤 계곡물 소리처럼 깨끗하고 경쾌했다.
얼마 뒤 숲속에는 "똑똑 또르르르~"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딱따구리였다! 아이들은 얼음땡 놀이이라도 한 것처럼 움직임과 말을 멈추고 신비로운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푸르르" 새가 비에 젖은 깃털을 털며 나무에서 날아오르는 소리도 들렸다.
아이들은 단어 채집장을 열어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그 순간들을 기록하고선 이내 다시 흩어졌다. 곤충을 좋아해서 확대경 등 여러 관찰 도구를 가져온 자림이는 줄지어 가는 개미들과 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거미들을 유심히 들여다봤고, 연제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버섯들을 찾고서는 기뻐했다.
한참 동안 목을 뒤로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던 시경이는 내가 다가가자 "선생님, 여기서 나무를 바라보면 더 아름답지 않나요?"라며 배시시 웃었다. 시경이의 옆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니 연둣빛 새순이 난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워 나도 덩달아 감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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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가 된 아이 |
| ⓒ 이정현 |
채집한 단어를 이으니 시가 되고 글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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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학년 은수의 글과 그림 |
| ⓒ 이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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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학년 시경이의 글 |
| ⓒ 김시경 |
말과 글로 배우고 머리로 외우며 정답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향기를 맡고, 소리를 듣고, 피부로 느끼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수업에서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집중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 속 가상 현실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자연 속에서 주의 깊게 관찰을 하고, 기록하고 표현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업에서 그 희망을 잘 키워나가고 싶다. 자연이라는 학교에서의 배움을 잘 담고, 또 나누다보면 더 많은 아이들을 품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와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숲 속에서의 수업은 한 달에 2번씩 연재할 예정입니다. 뒷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은 '구독'을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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