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구 신드롬이 보여준 것 [하재근의 이슈분석]

데스크 2026. 4. 19.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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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포된 늑구 ⓒ연합뉴스

지난 8일 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한 늑대 ‘늑구’가 마침내 17일 오전 0시 44분쯤 마취총에 맞고 생포됐다. 무려 9일 만에 포획된 것인데 그 기간 동안 늑구의 안위는 거의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파장이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일이 커지자 외신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BBC는 ‘한국에서 9일간 도망치던 늑대가 마침내 잡혔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한 동물원에서 탈출해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던 두 살배기 늑대 늑구(Neukgu)가 9일간의 수색 끝에 마침내 잡혔다”며 늑구의 도주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늑구는 ‘결코 갇혀 있으려 하지 않는 늑대’이자 ‘자유의 상징(symbol of independence)’으로 불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로이터는 “늑구 탈출 사건이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며 “한국의 온라인 게시판은 늑구 포획 소식으로 떠들썩했으며, 일부 네티즌은 늑구를 ‘동물원의 명예 홍보대사’라고 부르며 동물원이 재개장하면 꼭 방문하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하고 늑구(Neukgu) 이름을 붙인 암호화폐 ‘밈코인’까지 생겼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CNN은 “늑구 생포 후 소셜미디어에는 ‘돌아온 걸 환영해’, ‘늑구야 밖은 위험해’ 등의 축하 게시물이 쏟아졌다”며 “동물원이 재개장하면 늑구는 엄청난 인기 스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외신까지 관심을 보일 정도로 이례적인 열기가 나타난 것이다. 늑구가 늑대라는 점에서 더욱 이례적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무해하고 귀엽다고 여기는 초식동물이나, 사람하고 가까운 동물에 대해선 큰 관심이 나타날 수 있다.

반면에 늑대는 사람하고 거리가 매우 먼 존재다. 몽골 유목민도 늑대 사육은 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야생성이 강한 종으로, 늑대라고 하면 보통은 무서움의 대상으로 여길 때가 많다. 그런 늑대를 걱정하고 응원하는 신드롬이 터졌으니 이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 늑대 탈출 소식을 전하는 방송의 논조는 대체로 공격성이 강한 육식 동물이 활보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강조하는 방향이었다. 그런데 뉴스를 본 시청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육식 동물로 인한 피해를 걱정하기보다 늑대의 안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 늑대의 나이가 2살이라고 알려졌는데 많은 이들은 이것을 어린 나이라고 받아들였다. 사실 늑대 기준으론 성체 초기에 해당하는 나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훨씬 어린 개체로 인식한 것이다.

거기다가 이름이 ‘늑구’라는 사실까지 알려졌다. 태어났을 때부터 사육사들이 인공포육으로 키웠는데 그때 사육사들이 늑대의 ‘늑’에 친근한 느낌의 ‘구’를 붙여 늑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어리다고 느끼는 2살 나이에, 늑구라는 귀여운 이름까지 겹쳐지자 ‘우리 불쌍한 늑구’의 안위를 걱정하는 여론이 더 강해졌다. 늑구가 전혀 사람을 위협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다니는 모습만 나왔기 때문에 더욱 늑구 동정론이 커졌다.

이런 이유들에 더해 늑구 신드롬에는 한국 사회의 달라진 문화가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바로 동물을 인간의 친구로 여기는 반려동물 문화다. 반려동물 문화가 성숙하지 않았던 과거엔 ‘애완견’이라는 표현이 보편적이었는데 요즘엔 반려동물이라고 한다.

유목 문화권인 서양은 개를 동료로 여기면서 반려동물 문화가 빨리 성장했는데, 우리에게 개는 동료가 아닌 단백질 공급원이었기 때문에 반려동물 문화가 늦었다. 우리 사회가 서구화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비로소 개에게서 단백질 공급원의 의미가 사라지고 반려견으로 자리 잡았다. 개가 반려견이 된 후 반려동물 문화가 다른 동물들로까지 확산돼 지금은 대반려동물 시대가 됐다.

요즘처럼 사회가 각박하면 사람은 친밀한 대상을 찾게 되는데, 사회적 관계가 파편화되고 대인 관계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친밀한 사회적 관계는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이 반려동물에 더욱 몰입하게 됐다.

이렇게 보면 대반려동물 시대의 도래엔 경제성장, 서구화, 사회 파편화 등이 모두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다. 반려동물이 각광받으면서 동물 자체에 대한 열광이 커져갔다. 그래서 인터넷에선 동물 관련 영상이 많은 조회수를 올린다. 이런 흐름이 늑구에 대한 폭발적 관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늑구는 야생성이 강한 육식동물 늑대이기 때문에, 동물 탈출 매뉴얼에 따르면 사살 대상이다. 하지만 많은 국민이 사살하지 않기를 바랐고 당국도 생포가 목적이었다. 매뉴얼을 어긴 셈인데 여기에 대해 아무도 비판하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생포하기까지 무려 9일에 걸친 대규모 작전이 펼쳐졌다. 상당한 자원을 소모하고, 사람이 상할 수 있는 위험부담까지 한 것이다. 이래도 아무런 비판이 없었던 것을 보면 동물에 대한 의식이 과거와 매우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다.

2018년 오월드 퓨마 ‘뽀롱이’ 탈출 사건 때는 4시간 30분 만에 사살했었다. 그때는 당국이 동물을 살리기 위한 대규모 작전을 펼 생각까지는 안 했던 것 같다. 물론 늑대보다 퓨마를 더 위험한 존재로 생각했을 수는 있는데, 어쨌든 과거의 한국사회는 인간세상을 활보하는 육식동물의 안위를 요즘처럼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외신까지 주목한 늑구 신드롬이, 동물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한국사회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 사건인 것이다. 이렇게 한 동물의 안위에 온 나라가 관심을 기울일 만큼 우리 사회가 경제문화적으로 여유로워졌다. 이러한 여유 속에서 여러 동물에 대한 관심은 계속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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