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지 마세요, 로봇 지나갑니다"…한림대성심병원의 특별한 풍경[내일의 닥터]

김효경 2026. 4.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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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성심병원, 로봇 투입으로 안내·이송·교육 등 활용
3년 반 만에 78대·누적 8만건…로봇 활용 ‘압도적’
“의료진 업무 피로도 감소…로봇과 함께 사는 문화·제도 필요”

‘내일의 닥터’는 의료산업의 혁신 흐름을 읽습니다. AI·로봇·데이터가 바꾸는 병원 생태계,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끄는 기술·정책·시장 트렌드를 심층 분석합니다.

활동을 마치고 충전을 위해 로봇스테이션으로 이동하는 로봇 '약제나르미'.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놀라지 마세요! 로봇과 마주칠 수 있어요!”

경기 안양시에 위치한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처방전을 들고 이동하는 환자들과 휠체어를 탄 환자들 사이로 눈웃음을 짓는 안내 로봇 ‘성심이’가 “길 안내가 필요하신가요?”라는 멘트와 함께 등장했다.

몇몇 환자들은 익숙한 듯 로봇 화면을 터치해 병원 약도를 확인했고, 길을 찾기 위해 ‘척추센터’를 입력하자 성심이는 방향을 틀어 앞장서기 시작했다.

복도 바닥 곳곳에는 “놀라지 마세요! 로봇과 마주칠 수 있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람과 로봇이 같은 동선을 공유하는 병원 환경에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다.

(맨 위) 엘리베이터 내부 화면을 통해 “로봇이 먼저 내릴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는 메시지를 송출하고 있다. (아래) 복도 바닥 곳곳에는 “놀라지 마세요! 로봇과 마주칠 수 있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이동 중에는 약제 수송 로봇 ‘약제나르미’도 눈에 띄었다. ‘약제나르미2’와 ‘약제나르미4’는 환자에게 전달할 약품과 의료 소모품이 담긴 트레이를 싣고 병동을 오가고 있었다. 의료진이 일일이 물품을 전달하던 과거와 달리, 로봇이 반복 업무를 맡으면서 간호사들은 환자 상태를 살피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병원 관계자는 “예전에는 물품 전달이나 검체 이송 때문에 병동을 계속 오갔지만, 약제나르미 도입 이후 환자 케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며 “의료진의 업무 피로도가 확실히 줄었다”고 말했다.

병동 누비는 로봇…일상이 된 ‘스마트 병원’

약제를 싣고 이동하는 한림대성심병원 '약제나르미', 한 노인환자가 탈 때까지 안에서 기다려주고 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한림대성심병원의 로봇 도입은 2022년 8월 시작됐다. 이후 약 3년 반 동안 12종 78대의 로봇이 병원 업무에 투입됐다. 활용 시나리오는 30개 안팎으로 확대됐고, 현재도 10여 개 이상이 운영 중이다. 로봇 사용 건수 역시 2022년 약 3000건에서 2만건, 3만건 수준으로 빠르게 증가하며 올해 1월 기준 누적 8만건을 넘어섰다. 국내 의료기관 전체를 놓고 봐도 이례적인 규모다.

병원은 기술 도입에 그치지 않고 구성원 인식 개선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엘리베이터 내부 화면을 통해 로봇 역할을 안내하고, “로봇이 먼저 내릴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송출하고 있다.

약제나르미와 함께 7층에서 지하 1층까지 이동하는 동안, 한 노인 환자가 로봇이 탑승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는 모습도 보였다. 병원 관계자는 “초기에는 낯설어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약제나르미는 엘리베이터와 연동돼 목적 층과 이동 경로를 스스로 인지하고 운행한다.

간호사가 이송 로봇을 통해 배달된 약제를 꺼내고 있다. ⓒ한림대의료원

병동 안에서는 ‘만능이’라는 이름의 로봇이 눈에 들어왔다. 업무를 마친 뒤 충전 중이던 이 로봇은 환자들에게 필요한 안내사항을 영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단순 안내를 넘어 환자 교육까지 담당하는 셈이다.

이 같은 로봇 도입의 배경에는 의료 인력 부담 증가가 있다. 고령화로 환자 수는 늘고 있지만, 의료진의 업무 강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반복적이고 비의료적인 업무를 줄이는 것이 병원 운영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이유다.

한림대의료원은 로봇을 단순 자동화 장비가 아닌 ‘의료 보조 인력’으로 정의한다. 효과 역시 인건비 절감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특정 인력을 대체하기보다 여러 직원이 나눠 수행하던 비효율적 업무를 대신하면서 전체 업무의 질을 끌어올렸다는 설명이다.

이미연 한림대의료원 커맨드센터장(한림대성심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은 “코로나19 당시 간호사들이 단순 업무로 병동을 계속 오가는 모습을 보며 물리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로봇을 빼면 현장에서 불편이 클 정도로 효용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돌봄에 집중, 환자는 ‘덜 기다리고 덜 헤매고’

한림대성심병원 내부에서 만난 이동 로봇.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로봇을 ‘도입’하는 병원은 많지만, 한림대성심병원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었다. 한림대의료원은 현대자동차, 블루로빈 등과 함께 병원 환경에 최적화된 로봇 기술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실증 단계에 머물던 로봇을 실제 병원에 적용해 기술을 검증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로봇 운영을 전담할 인력 양성에도 나섰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산하 경기남부직업능력개발원과 협력해 ‘병원 로봇 통합 관제사’ 교육과정을 신설하고, 이를 통해 양성된 인력을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로봇 에러 대응과 운영을 맡을 중간 관리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다.

한림대성심병원은 병원 로봇의 지향점이 화려한 자동화가 아닌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고 봤다. 환자는 덜 기다리고 덜 헤매며, 의료진은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 본연의 돌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병원은 고령자, 어린이, 물류, 안내, 안전 등 다양한 요소가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 공간”이라며 “이곳에서 안전성과 효과성이 검증된 로봇은 다른 산업과 일상으로도 충분히 확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기술뿐 아니라 문화와 제도까지 포함해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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