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망진 중년] 금가락지 하나 없던 시어머니 유산, 텃밭에서 나왔다

이인자 2026. 4. 1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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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어도 머위는 매년 퍼질 것"이라 하시더니... 기특한 머위를 보며 하는 다짐들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4월엔 '나를 살게 하는 것'에 대해 씁니다. <편집자말>

[이인자 기자]

요즘 나는 지독한 글태기에 빠졌다. 이 글도 며칠째 제자리 걸음이다. 글태기에 빠진 원인은 명확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일, 직장에서 정기 인사 발령이 있었다. 규모가 큰 도서관인 만큼 업무도 많을 뿐 아니라, 민원도 많은 곳이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 신발 끈 대신 양손에 손목 보호대를 단단히 동여매며 전의를 다졌다. 퇴근 후에는 침대로 그대로 직행했다. 버스정류장 노상에서 주인을 기다리다 시들어버린 봄나물처럼 육체도 마음도 시들어갔다.
▲ 손목보호대와 장갑 도서관 노동자의 필수품, 장갑과 손목보호대
ⓒ 이인자
입맛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밥 때가 되면 먹었다. 소진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간식까지 챙겨 먹었더니 외려 몸무게는 더 늘어났다. 붓고 푸석푸석한 얼굴, 돌덩이같이 뭉친 어깨 근육. 정말이지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이 와중에 원고 마감일은 다가왔다. 틈틈이 토막 난 시간을 끌어다 글을 썼다. 그런데 다 쓰고 나면 분량만 채웠지 문장과 문단 사이가 생선 토막처럼 뚝뚝 끊겨 있었다. 사람의 영혼까지 비릿하게 만드는 이 글태기를 이겨낼 방도가 없어 보였다.

새 흙을 뚫고 기어이 올라온 머위 잎사귀

모처럼 쉬는 날이었다. 발목에 모래주머니라도 단 듯, 무거운 걸음으로 남편과 함께 집 앞 텃밭을 서성거렸다. 남편은 최근 150평쯤 되는 텃밭에 새 흙을 대대적으로 받았다. 돌아가신 시부모님이 전업 농부였다면, 남편은 그 땅을 겨우 지켜가는 부업 농부였다.

올해는 특히 새 흙도 받아 가며, 적극적으로 무엇을 심을지 구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새 흙을 너무 많이 받은 것이다. 매년 머위와 참나물이 자라던 일부 밭 자락까지 두꺼운 흙더미가 덮어버렸다. 아쉽지만 새 흙이 덮인 자리에는 봄나물을 못 보겠구나 싶었다.

그때였다. 새 흙바닥 군데군데에서 초록 잎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여보, 이거 머위 아냐?"
"와, 못 올라올 줄 알았는데. 결국 올라왔네."
▲ 머위 잎사귀 새 흙을 뚫고 나온 머위 잎사귀
ⓒ 이인자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넓적한 머위 잎이 해사한 얼굴로 고개를 빼곡히 내밀고 있었다. 분명 내가 신규 도서관에 발령받기 전까지만 해도 머위는커녕 잡풀 하나 보이지 않았었다. 그 옆에 오밀조밀 붙어 있는 참나물도 제법 자리를 잡고 있었다. 땅의 주인인 우리는 녀석들이 새 흙을 뚫지 못할 거라 지레 포기했었는데, 그 녀석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실, 머위와 참나물의 진짜 주인은 시어머니였다. 우리 부부는 시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17년을 한 집에 살았다. 늦둥이 아들이었던 남편과 함께 살고 싶어 했던 시부모님의 마음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시집살이가 내게 불리한 조건만은 아니었다. 둘째 딸을 낳기 전까지, 나는 시어머니가 차려준 따뜻한 아침 밥상을 받아 먹으며 귀한 대접을 받았다.

도시에서 자라 콩나물과 시금치밖에 모르던 내가 머위, 돌나물, 씀바귀, 방풍나물 같은 쌉쌀한 제철 나물을 먹게 된 건 시어머니의 밥상 덕분이었다. 하지만 철없던 젊은 며느리는 마트에서 사 온 소시지나 제육볶음을 더 좋아했다. 시어머니는 입맛을 돋우는 쌉쌀한 맛이라고 하셨지만, 내 혀끝은 그 나물의 맛을 그저 쓴맛이라 규정했다.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 흔히 말하는 '시' 자 들어가는 스트레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밥, 된밥을 함께 지어먹으며 쌓은 정은 생각보다 깊고 질겼다. 밭에 나간 시어머니가 밥 때가 지나도 오시지 않으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시원한 냉수 한 사발을 들고 밭으로 달려가면, 목이 마른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인생의 구원자처럼 맞아주셨다. 냉수를 단숨에 들이켜는 그 모습은 배고픈 딸이 젖병을 빨던 모습처럼 간절하고 애틋했다.

우리는 나물 뿌리보다 질긴 정을 나누며 그렇게 17년을 살았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롱 속 유품을 정리하던 날, 내심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금가락지는커녕 은가락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실 물려줄 만큼 귀한 물건도 없었다. 쓸 만한 물건이라고는 포장도 뜯지 않은 내복 몇 벌과 낡은 반짇고리에 담긴 실과 바늘이 전부였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남긴 유산

그런데 시어머니가 안 계신 첫봄, 4월 이맘때쯤 뜻밖의 유산을 발견했다. 씨를 뿌리지도, 모종을 심지도 않았는데 텃밭 지천에 봄나물들이 돋아나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심은 것들이었다. 언젠가 머위 대를 다듬으며 시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당신이 세상에 없더라도 이 머위는 매년 퍼질 테니, 때를 놓치지 말라는 당부였다. 그때는 그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위 잎보다 시어머니 기세가 더 거셌던 시절이었다. 시어머니가 없는 봄 같은 건 영영 오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 예언은 사실이 되었다. 비가 와 흙에 쓸려도, 잡풀에 파묻혀도 머위는 기어이 살아 남았다. 어느새 비탈 위아래로 뿌리를 뻗어가며 더 넓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결국엔 두꺼운 흙더미도 뚫고서 다시 돋아난 것이다.

텃밭을 좀 더 둘러보다 봄나물을 좀 더 심어보는 건 어떠냐고 남편에게 제안했다. 매년 다시 심어야 하는 작물 말고, 당장은 수확이 힘들더라도 한 번 심어두면 스스로 번지는 것들 말이다. 얼핏 생각난 것은 달래나 부추, 명이나물이었다.
▲ 아직 덜 자란 머위 시어머니가 말한 때가 되지 않은 머위
ⓒ 이인자
남편은 조금 더 생각해 보자고 했다. 시아버지께 물려받은 땅에 처음으로 새 흙을 올린 터라, 꽤 신중한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 머위만 있으면 된다. 머위 잎에 손가락을 대보니 새끼손가락 크기쯤 될까 싶었다. 아직 시어머니가 말한 때는 오지 않았다.

이날 새 흙을 뚫고 돋아난 머위를 보니 한결 기운이 솟는다. 머위도 뚫은 새 흙을, 나라고 못 뚫을까. 흙 밑에서 단단히 버티고 있었을 머위의 시간을 생각한다. 새로운 직장에서 더 단단히 버텨야 할 내 육체와 마음을 응원하기로 한다. 조급함도 내려놓기로 했다. 글이 써지지 않는 이 시간 또한, 내가 땅 밑에서 줄기를 뻗고 있는 과정이라 믿기로 했다. 나는 생각보다 강인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자신을 다독여 본다.

한 동료가 내게 건네준 액상형 비타민을 마시고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여전히 문장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오늘은 세 줄, 내일은 네 줄, 모레 점심시간에는 다시 두 줄을 보탤 것이다. 머위 줄기처럼 끈질기게 이어 나가다 보면 이 힘든 글태기도 끝나겠지. 나는 시어머니가 남긴 머위 같은 사람이니까. 어둑한 마음속에서도 기어이 나만의 문장을 틔워낼 것이니까.

《 group 》 요망진 중년 : https://omn.kr/group/2026_midlife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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