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노인일자리요? 그냥 살아있다는 느낌이죠"

유창재 2026. 4. 1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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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노인일자리④] 태백산국립공원서 일하는 어르신들... 인구소멸 도시서 찾은 노년의 활력

[유창재 기자]

 지난 9일 찾은 태백산국립공원 당골탐방지원센터에 있는 '창의점빵'. 이곳은 태백시니어클럽의 공동체사업단(시장형) 노인일자리 현장으로, 탐방객 안내와 기념품 판매, 시설 관리 등의 일을 어르신들이 참여하고 있다.
ⓒ 유창재
강원도 남부 깊숙한 곳, 석탄의 도시였던 태백시는 지금 '사라질지도 모르는 도시'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한때는 '태백에선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석탄 산업이 활기를 띠었던 곳이다. 이제는 국내 대표적인 도시소멸 위기지역이 됐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태백시 인구는 3만7088명. 이 가운데 60세 이상은 1만5550명(65세 이상만 1만2135명)이다. 고령화율은 32.7%로, 숫자만 봐도 '초고령 사회'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그런데 10명 중 4명이 고령층인 이곳 도시의 산속에서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일하는 노인들'이다. 단순한 일손이 아니라, 태백의 관광·환경·서비스를 떠받치는 주역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봄비가 흩날리는 지난 9일 태백산국립공원 당골탐방지원센터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노인일자리의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밖으로 나오는 것"
 지난 9일 찾은 태백산국립공원 당골탐방지원센터에 있는 '창의점빵'. 태백시니어클럽의 공동체사업단(시장형) 노인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어르신들. 오른쪽이 권성진 어르신이다.
ⓒ 유창재
우선 찾은 곳은 탐방지원센터에 있는 '창의점빵'이라는 작은 매장이다. 이곳은 태백시니어클럽의 공동체사업단(시장형) 노인일자리 현장이다. 12명의 어르신이 6개 조로 나뉘어 한 달 5일, 하루 5시간씩 일한다.

이들의 업무는 단순하다. 탐방객 안내와 기념품 판매, 시설 관리. 하지만 구조는 단순하지 않다. 일자리 참여자들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월 약 26만 원을 받는다. 여기에 굿즈(기념상품) 판매 수익이 더해져 성과급이 붙는다. 많을 때는 월 70만 원대까지 오른다.

2024년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권성진(71세)씨는 "처음엔 일자리 참여 계기는 용돈이죠.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라며 "내가 번 돈으로 손주 용돈 주는 게 기분이 좋잖아요. 집에만 있으면 점점 안 움직이게 되는데, 여기 나오니까 사람이 밝아져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이곳에서 만난 어르신들 중 일하는 이유를 '돈'이라고 말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대신 반복되는 말이 있었다. "밖에 나와서 좋다", "사람을 만나서 좋다", "내가 쓸모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

이 사업의 핵심은 '공익형'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준호 태백시니어클럽 관장에 따르면 공동체사업단 일자리는 공공 재정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수익을 만든다.

국립공원공단이 만든 '수익형 노인일자리'
 유민 국립공원공단 태백산국립공원사무소 자원보전과장. 이곳 노인일자리 사업은 그의 제안에 의해서 시작됐다. 벽면에 걸린 조감도에는 당골탐방지원센터을 중심으로 한 시설을 볼 수 있다.
ⓒ 유창재
당골탐방지원센터 건물을 지어 놓고도 운영할 사람이 부족했다. 국립공원공단은 그때 시니어클럽과 연결됐다. 유민 태백산국립공원사무소 자원보전과장이 이 사업을 구상했고, 실행에 옮겼다.
"저희는 수익을 내는 기관이 아니다. 대신 어르신들이 서비스 빈틈을 채워주고,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라는 그의 말에 이 사업의 본질이 담겼다. 노인일자리가 '복지'가 아니라 '협력'이라는 점이다.
 캠핑세탁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이상준(70세, 시진 왼쪽)씨와 박귀순(72세)씨. 이들은 부부는 보기 드물게 같은 일자리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 유창재
자리를 캠핑카가 있는 야영장으로 옮겼다. 이곳에서는 침구 세탁과 대여 서비스가 운영된다. 어르신들이 세탁과 건조, 진공포장까지 맡는다. 이 '캠핑세탁' 사업은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필요'에서 시작됐다.

유 과장은 "(어르신들이 세탁·포장한) 이불을 딱 뜯으면 새 것 같은 느낌이 나요"라며 "(캠핑장) 탐방객 만족도가 확 올라가죠. 저희는 서비스가 좋아지고, 어르신들은 수익을 가져가고, 서로 조건이 맞은 거죠"라고 재차 강조했다.

오는 16일 카라반 캠핑장 개장을 앞두고, 부부 참여자가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보기 드문 경우다. 주인공은 남편 이상준(70세)씨와 부인 박귀순(72세)씨다. 박씨는 "집에만 있지 않고 같이 나와 일하니까 훨씬 좋아요"라고 말한다. 이 일자리의 매력은 의외로 단순하다. 일하는 기분이 든다는 것.

산을 지키는 또 다른 손... 스마트 자생식물증식장의 일손
 태백산국립공원에 있는 자생식물증식장. 일종의 산림형 스마트팜으로, 온실 안에서 태백산에 심어질 묘목들을 키우고 있다.
ⓒ 유창재
당골탐방지원센터를 벗어나 조금 더 산 위로 올라가면 또 다른 현장이 나온다. 해발 900미터 고지에 있는 자생식물증식장, 일종의 산림형 스마트팜이다. 이곳에서는 신갈나무, 떡갈나무 같은 참나무류 묘목을 키운다. 탄소흡수 숲 조성을 위한 기반이다.

여기서도 어르신 세 명이 일한다. 하루 3시간(오전 9시~낮 12시), 주 5일, 월 60시간 탄력 근무하는 형태다. 공공시설지원 노인역량활용사업으로 증식장 관리 및 식물 모종 관리를 지원하는 역할이다.

참여자 최관식(71세)씨는 "평생 운전만 했어요"라면서 "근데 여기 와서 흙 만지고, 새싹 올라오는 거 보면 기분이 달라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이곳의 일은 단순 노동이 아니었다. '숲을 만드는 일'이다.

물론 이 일자리가 장밋빛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험도,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하다. 겨울이면 차가 올라오지 못해 걸어서 출근해야 하고, 여름이면 폭우로 길이 끊기기도 한다는 것. 이찬재(71세)씨는 "(눈비에) 차를 밑에 세워놓고 30분 걸어 올라와야 할 때도 있다"고 하소연한다.

사라지는 도시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 "일자리이면서 삶"
 오는 4월 16일 개장을 앞둔 태백산국립공원 당골탐방지원센터 인근에 있는 카라반 캠핑장. 노인일자리가 없었다면, 운영하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 유창재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태백산에는 연간 60만 명 가까운 탐방객이 온다. 이곳 당골탐방지원센터를 거쳐 하늘길(전망대)로 가는 이들만해도 10만 명이다. 특히 겨울, 눈꽃 시즌에 40%가 몰린다. 이 거대한 흐름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어르신들의 손길이 곳곳에 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립공원 시설 관리, 안내, 세탁, 판매, 묘목 생산까지. 이들은 단순한 노인일자리 참여자가 아니다. 지역 관광과 공공서비스의 일부다.

도시의 인구는 줄고, 늙어간다. 하지만 태백산에서는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일하는 노인들.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 그리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삶. 이곳에서 노인일자리는 복지가 아니다. 지역을 살리는 하나의 방식을 현장에서 볼 수 있었다.

한 어르신의 말이 오래 남는다.

"나한테 노인일자리요? 그냥, 뭐… 살아 있다는 느낌이죠."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그 산을 지키는 사람들도 여전히 일하고 있다.
 캠핑세탁 시설. 캠핑카를 이용한 탐방객들이 사용한 이불을 세탁한 후 진공포장을 하는 일자리다. 세탁한 이불은 1인용 이불은 1만원, 2인용은 1만5천원에 대여하고 있다.
ⓒ 유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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