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아이유가 변우석에 메시지 보낼 때 그 장면... 모순된 두 단어

김종성 2026. 4. 1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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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21세기 대군부인>와 입헌군주제

[김종성 기자]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스틸
ⓒ MBC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속의 왕실은 정치권력이 없다. 그렇지만 국민적 존경과 정치권의 지지를 받으며 권위를 누린다. 입헌군주제라는 제도적 기반이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캐슬그룹 임원 성희주(이지은 분)는 그런 왕실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그는 어린 임금을 대신해 섭정 역할을 하는 이안대군(변우석 분)에게 청혼할 목적으로 대군과의 면담을 신청한다.

성희주는 목적 달성을 위해 거듭거듭 신청을 넣지만, 번번이 돌아오는 것은 "신청하신 알현이 거절되었습니다"라는 온라인 메시지다. 이것이 그의 오기를 발동시킨다. 그는 계속해서 신청 버튼을 누른다. 결국 "알현 신청이 승인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그의 노트북 화면에 뜬다.

제1회 방영분 끝부분에서 묘사된 이 장면은 입헌군주제 왕실의 처지를 잘 반영한다. 노트북 화면 우상단에 뜬 "대한민국 왕실"이라는 발신자 명의가 그것이다. 이 왕실은 '대한왕국' 혹은 '대한공화국'이나 '대한국'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군림하고 있다. 국민의 나라인 민국에 왕실이 존재하는 모순된 현실을 반영하는 장면이다.

힘 잃은 왕실은 어떻게 목숨을 유지했나

전통적인 왕실들은 군대와 관료기구를 통해 대중을 지배하는 한편, 이 지배에 대한 반감을 해소하고 권력을 안정시키고자 왕권신수설을 활용했다. 왕실들은 자신들이 신으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았다는 관념을 유포하고 대중 앞에서 각종 제사를 주재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고대의 제사장들 중에는 자신들이 태양신의 후광을 입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귀금속으로 몸을 치장하거나 햇빛 반사용 청동거울 등을 사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정치권력 그 자체이거나 아니면 그것의 지원을 받는 그들이 그런 이유로 귀금속을 필요로 했던 것은 귀금속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한 가지 원인이 됐다.

왕조시대 군주들도 고대 제사장들처럼 스스로를 포장했다. 국가적 제례를 통해 자신과 하늘의 소통을 연출하고, 금관 같은 귀금속으로 자기 몸을 장식했다.

종교에 대한 대중의 의존도가 컸던 시절이었기에 이런 방식은 별 문제 없이 통용됐다. 그런데 그 시절에도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많았다. "선생님께서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지 않았다"라는 <논어> 술이 편을 근거로 유학자들은 인간의 오감으로 이해되지 않는 귀신 현상을 부정했다. 그러나 신을 믿지 않는 유학자들도 '군주는 하늘이 낸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입에 담았다. 왕권신수설을 무너트릴 정치적 에너지가 형성되지 않았던 시절의 광경이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과 종교의 쇠퇴가 현저해지고 세계 각지에서 상공인들의 경제력이 급상승함에 따라, 프랑스 혁명 이후로 지구 곳곳에서 왕정체제가 약해졌다. 그 흐름이 지금의 민주주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왕정체제의 힘은 여전히 살아 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행사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 군주인 술탄이 지배하는 브루나이 같은 국가들은 고전적 의미의 전제군주제 국가다. 이란전쟁을 계기로 교황 레오 14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맞짱을 뜨는 바티칸시국도 종교적 성격을 가진 왕정국가다. 전통적 의미의 왕국이 12개국이나 되고, 입헌군주제를 표방하는 국가들이 16개국이나 된다는 사실은 이 시대가 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끝자락임을 보여준다.

영국 왕실은 탄탄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이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것도 이 나라의 정치체제의 변화를 가로막은 요인이다. 영국 왕실은 자선사업을 통해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누그러트리며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

같지만 다른 '왕실'

일본의 경우에는, 소련과의 대결을 위해서라도 일본의 현상변경을 억제해야 했던 미국의 이해관계와 더불어, 일본 재벌들의 기득권 형성 과정이 패망 후에도 왕정체제를 유지하는 배경이 됐다. 일본 재벌들이 지금의 기반을 굳힌 계기는 일왕과의 정치적 제휴하에 전개된 강제징용이다. 이를 통한 강제노동은 일본 재벌들이 인건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세계적 성장을 가능케 만들었다.

일본 경제학자 이시이 간지(石井寛治)의 <일본 경제사>는 "군수생산을 크게 담당하면서 급팽창을 이루었던 것은 재벌계 자본"이었다며, 일본 전체의 기업자본에서 14개 재벌의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1937년에 22.6%였다가 미군정 시점에 42.6%가 됐다고 설명한다. 1940년대 전반기에 특히 왕성했던 강제노동이 일본 재벌을 크게 도약시켰던 것이다.

그런 기업들이 지금도 일본 경제를 주도한다는 점은 미쓰비시그룹의 존재가 잘 보여준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미쓰비시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전범기업"이라며 "나가사키에 있는 미쓰비시 조선소와 군함도의 하시마 탄광이 속해 있는 다카시마 탄광이 미쓰비시를 발전시킨 핵심적인 시설"이라고 한 뒤 "일본이 침략전쟁을 벌이는 동안, 군함 82척과 어뢰 약 1만 7000개가 이곳에서 생산됐다"고 기술한다.

왕실과의 유착 및 전쟁범죄를 통해 기업을 키운 일본 재벌들의 입장에서는 왕실이 살아남아야 자신들의 입지도 지킬 수 있다. 일본 왕실이 패망 뒤에도 계속 군림하는 데는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으로 인해 전제군주제의 왕실과 입헌군주제의 왕실 모두 입지가 좁아지고 있지만, 후자의 처지는 상대적으로 더 궁색하다. '왕국' 안에서 '궁궐'을 유지하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민국' 안에서 '궁궐'을 지키고 있다. 세상 분위기에 맞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입헌군주제 왕실들의 자기 옹호 논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의 권력은 신에게서 나온다'며 오랫동안 대중을 지배했던 왕실의 후예들이 지금은 자신들의 지위가 대중에게서 나온다는 논리를 퍼트리고 있다.

1946년 11월 3일 공포된 현행 일본국헌법 제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지닌 일본 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고 선언한다. 스페인 헌법 제56조는 국왕의 위상과 관련해 "스페인의 최고의 대표자이며 헌법 및 법률이 부여하는 권한을 행사한다"고 선언한다. 국민들의 의지가 반영된 헌법과 법률에 의해 왕실이 유지되고 있다는 선언이다.

사우디나 브루나이 같은 전제군주제에 비해 일본이나 스페인처럼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입헌군주제가 더 안정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군주제의 존재의의를 끌어내는 입헌군주제의 논리는 그리 단단하지 않다.

입헌군주제 왕실들은 '신의 위임'을 표방하던 과거 방식을 변용해 '국민의 권한 부여'라는 외형을 만들어냈다. 국민들을 새로운 신으로 떠받드는 셈이다. 그런데 그 신이 원하는 것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신에게 군주제 유지를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입헌군주제 왕실들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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