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껴안은 자세로 키스에 열중하는 로봇이라니

박홍순 2026. 4. 1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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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만나는 인문학] 인간과 기계 ① 인간의 기계화 열망

[박홍순 기자]

 페르낭 레제 <기계공> 1920년
ⓒ 퍼블릭 도메인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밝히고자 할 때 기계가 동물만큼이나 비교 대상으로 자주 등장한다. 과학기술 혁명이 일어난 근대와 현대에 접어들어 기계는 주요 관심 사항이었다. 처음에는 공장의 생산과정이나 기차와 같은 공공 교통 시설로 사용되었다. 나아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점차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을 통해 개인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현재는 혁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더 획기적인 변화가 진행되는 중이다. 최근에 인공지능 발달로 정신 영역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되었다. 인간의 동작은 물론이고 정신활동에 의존하는 직업까지 대규모로 대체될 상황에 놓여 있다. 기계가 육체적·정신적 활동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인간과 좁혀진 경계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다.

기계의 인간화, 인간의 기계화에 대한 찬사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1881~1955)는 기계의 인간화, 인간의 기계화 현상에 적극적이다. <기계공>은 생뚱맞은 이미지를 툭 던져 놓는다. 한 건장한 남성으로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막 미술을 배우기 시작한 중고생이 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순하고 경직된 모습이다. 어디 한구석에서도 감정을 읽기 어려울 정도로 표정이 없다.

배경으로는 몇 가지 단순한 도형이 아무렇게나 나열된 느낌이다. 스쳐 지나가듯 본다면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회화적 표현 시도로 여기며 넘어가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인물이든 배경이든 꼼꼼하게 관찰하면 화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여러 장치를 발견할 수 있다.

얼굴이나 몸은 마치 매끄러운 표면을 지닌 함석 조각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붙인 기분이 든다. 머리와 이마, 뺨을 보면 매끈한 금속성 물체의 둥그런 표면에서 접하는 독특한 명암과 차가운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팔이나 손, 심지어 각각의 손가락조차 독립적인 쇠파이프와 쇳조각을 제작하여 조립해 놓은 듯하다.

반복적으로 떼었다 붙였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싶다. 손가락에 끼운 두 개의 반지, 손가락 사이의 담배가 기계의 일부 부품 같다.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조차 금속성이다. 심지어 팔뚝에 문신으로 박아놓은 닻 그림이 제품에 인쇄해 놓은 상표로 보인다.

인물의 배경도 추상적인 무늬는 아니다. 몬드리안 그림에서 흔히 접하는 추상적인 선과 면의 조합과 다르다. '기계공'이라는 제목이 아니어도 두어 군데 기계 장치로 보이는 모습이 있다. 공장의 생산 공정에 사용되는 대형 기계일 수 있다. 아니면 어디 큰 건물의 기관실, 혹은 팔뚝의 닻 문신을 고려할 때 큰 배 기관실의 각종 기계 장치와 파이프일 수도 있다.

기계와 인간이 상당히 친근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물의 느낌은 물론이고 구성에서 색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힘찬 분위기임을 고려할 때, 기계화된 인간을 향한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풍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아예 사라진 상태는 아니다. 화가가 의도적으로 구분한 인상을 받는다.

배경의 기계는 전반적으로 평면 구성에 치중한 데 비해, 인물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입체 묘사로 구별한다. 색도 둘을 가르는 수단이다. 뒤편의 기계에는 생경해 보일 만큼 선명한 원색을 배치하여 인간과 거리를 만든다. 기계와 인간이 동일한 존재는 아니다. 둘 사이의 조화 관계 정도라고 봐야 한다.

기계의 차가운 표면처럼 감정 전달과 거리를 둔 점은 레제의 말을 고려할 때 지극히 의도적이다. "표정은 나에게 있어 항상 너무 감상적이었다. 나는 인간의 얼굴을 단지 물체로 느낄 뿐만 아니라 기계를 좋은 조형적 대상으로 생각했기에, 얼굴에도 같은 조형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표정을 제거하고 대신 기계로 표현 가능한 동작을 통해 전달한다.

인간의 감정도 기계적 작용으로 묘사

레제는 단순히 인간의 외적인 생김새나 동작을 기계적으로 표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인간의 민감한 감정까지도 기계적인 작용으로 연결한다. 심지어 타인과의 교감이라는 지극히 섬세한 감정에도 적용한다. 비슷한 시기에 그린 <남자와 여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심코 보면 사람이 있기는 한가 싶다. 제목이 아니었으면 선과 도형 그리고 색으로 이루어진 추상화로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중앙의 오른쪽이 남자, 왼쪽이 여자다. 남자는 굵은 파이프 모양인 데다 무채색으로 묘사해서 강인한 인상을 준다. 이와 달리 여자는 긴 머리에 가녀린 느낌이고, 원색에 가까운 색상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페르낭 레제 <남자와 여자> 1921년
ⓒ 퍼블릭 도메인
금속성의 파이프와 철판으로 만든 로봇 모습이다. 배경도 기계 장치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일 년 전에 그린 <기계공>보다 인간의 기계화가 더 진행된 상태다. 얼굴·손·팔조차 금속 원통이다. 이제 인간을 둘러싼 세상, 일상적인 삶, 나아가 감정과 정신도 기계와 구분되지 않는다. 누구나 얻기를 바라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밝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인간과 기계의 결합에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서로의 허리를 껴안은 자세로 키스에 열중한다. 인간에게 사랑만큼 내밀하고 섬세한 감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이 감정을 둘러싸고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충족감을 느낀다. 나아가서는 기대와 실망, 달콤함과 씁쓸함, 열정과 차가움, 신뢰와 배신 등 온갖 감정을 경험한다. 그런데 레제는 이를 기계적인 작용과 섞어버리고 있다.

레제는 직업적 배경 자체가 쇠나 기계와 긴밀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레제가 건축 기사가 되기를 원했다. 제도법과 청사진 기술을 익혔고, 건축 사무소의 설계사로 일했다. 파리 에펠탑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철근은 이미 건축 재료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중이었다. 또한 철근 골조와 콘크리트 작업을 위해 기계가 사용되었다. 사회 전체로도 기차와 자동차를 비롯하여 기계를 이용한 도구들이 일상에 빠르게 보급되던 시기였다.

인간과 기계를 친숙하고 능동적인 관계로 묘사한 데는 사회적 조건이나 직업적 배경 말고도 또 다른 요인이 작용했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 경험이다. 그는 프랑스-독일 전쟁에 징집되어 2년간 공병과 일반 병사로 복무했다. 20세기 초반의 급격한 과학기술·기계 발달과 제1차 세계대전 경험은 예술 분야에 상반된 반응을 만들어냈다.

그중 하나가 레제와 같은 '기계주의' 경향이다. "나는 대포를 통해 기계의 다이내미즘을 발견했다. 그리고 금속의 살갗에 접촉하고, 나의 눈은 기하학적인 절단면 속을 왕래했다. 한낮에 번쩍거리는 대포의 아름다움은 세계 어느 미술관보다도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 나는 그런 환경에 완전히 순종했고, 스스로 이해하는 대로 회화적으로 번역했다."

그에게 전쟁은 참담한 살육 현장보다는 생사를 초월한 사나이들의 용기, 무엇보다도 기계 문명이 만들어낸 가공할 무기의 힘과 기능적인 우월성으로 다가왔다. 무기를 통해 드러난 기계의 위력은 인간의 강한 힘을 증명하고 미래의 희망을 반영하는 증거였다. 기계가 위력적일수록 더 큰 아름다움으로 느껴졌다. 기계화된 무기에 매료된 레제는 전쟁 이후 기계 이미지를 통해 현대사회에 적합한 조형적 대안을 마련하고자 했다.

인간의 기계화를 예술운동으로 추구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담은 레제의 미술 경향을 '다이내믹 입체파'라 부른다. 레제에 앞서 20세기 초반에 유럽에서 유행한, 인간과 기계의 결합에 더 파격적인 태도를 지녔던 '미래주의' 흐름에서 일정한 영향을 받았다. 미래주의의 선구자인 이탈리아 시인 마리네티는 <새로운 종교, 속력의 도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퀴와 철로의 신성함과 속도감을 기원하기 위해 철로 위에 무릎 꿇을 필요가 있다. 회전 나침반이 돌아가는 속도 앞에 무릎을 꿇을 필요가 있다. 1분에 2만 번 회전, 인간이 기계로 성취한 최고 속력이다. (…) 자동차의 속도에 취하는 것은 유일한 신성과 섞였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기쁨이다."

기계 문명이 만들어내는 역동적 운동성과 속도를 찬미한다. 미래주의는 일차적으로 기계 문명에 대한 능동적 태도를 예술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기계가 지닌 차가운 아름다움을 조형 예술의 주제로 삼았다. 기존의 예술을 '과거주의'라며 반대하고 현대의 물질문명에 어울리는 새롭고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레제는 미래주의에 속한 화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계에 대한 찬미와 기계를 통한 인간의 표현에 적극적인 경향을 거듭 강조했고, 또한 이를 자신의 작품에 직접 반영했다는 점에서 미래주의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기계의 견고한 구조와 위력적인 작용을 인간의 역동성에 연결하고, 여기에 입체주의 미술 경향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독특한 자기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기계 문명의 역동성과 명확성에 이끌렸다. 기계 이미지를 곧바로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전달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인간과 기계의 친근한 결합이 필요했다. "밝음과 굳센 힘을 찾아서 다른 사람들이 곧잘 나체와 정물을 소재로 쓰듯이 나는 기계를 이용한다." 기계를 통해 인간이 자신의 무한한 능력을 발휘하길 기대했고, 인간과 기계의 일치를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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