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건물주야" 당당하던 남자는 왜 사람을 죽였나

송주연 2026. 4. 1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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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39] tvN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 봅니다. 그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기자말>

[송주연 상담심리사·작가]

"오동기 괜찮겠지?"

tvN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이하 <건물주>)의 수종(하정우)은 카페 사장 동기(현봉식)에게 상해를 입히고 가둔 후 아내 선(임수정)에게 이렇게 묻는다. 둘은 진심으로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좀 다쳤겠지만" 괜찮을 거라고 위로한다.

<건물주> 드라마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 중 하나였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납치하고 감금하고 폭력을 행사했으면서 동시에 이를 걱정하는 모습이라니.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건물주>는 여느 범죄드라마와 다르다. '가족을 위해' 범죄의 굴레에 빠져드는 수종과 선은 자신들이 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무척 상냥하게 다가간다. 조곤조곤 설명하고 대화를 하면서 그리고 때로는 미안해하면서 너무나도 태연하게 폭력을 일삼는다.

개인적으로 이 모습이 기괴해 괴로웠다. 그러면서도 드라마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들의 모습에서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성이 발현되는 조건이 떠올라서다.

가장에게 부과된 책임감과 자존심
 tvN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스틸 컷.
ⓒ tvN
선과 수종은 청각장애를 지니고 있지만 똑똑하고 착한 딸 다래(박서경)와 평범한 가정을 꾸려간다. 선은 간호사로 일하다 딸 다래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엄마로서 살아왔다. 수종은 가정의 경제적인 면을 책임지고 있다. 기업 인사과에서 일하던 수종은 정리해고가 난무하는 직장보다 안정적으로 다래의 유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빚을 얻어 건물주가 된다. 하지만 월세 수입은 생각보다 잘 나지 않고 빚 독촉에 시달린다.

그러던 중 부잣집에 장가가 처가에서 무시당하며 사는 친구 활성(김준한)이 묘한 제안을 한다. 아내 이경(정수정)을 납치해 장모 양자(김근순)에게 목돈을 받아내겠다는 계획에 그를 끌어들인 것이다. 건물을 지키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수종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후 자신의 건물이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었다는 걸 알게 된 수종은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수종과 선은 이 과정에서 납치와 살인, 시체유기에 가담한다.

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는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 정신분석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폭력성은 죽음 본능 그러니까 '타나토스'에 의해 비롯된다. 폭력성이 인간의 본능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이 발달한 인간은 이를 아무 때나 표출하지 않는다. 여러 심리 사회적 요인들이 맞아떨어질 때야 발현된다.

<건물주>에서 수종의 폭력성을 발현시킨 첫 번째 요인은 바로 가부장제에서 남성에게 부과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자존심이었다. 드라마 1회 건물 빚 때문에 고민하던 수종은 아내 선이 "같이 해결해 보자"고 말하지만, "알아서 하겠다"며 선에게는 "다래만 신경써"라고 한다. 수종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가장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가족과 함께 나누는 걸 자존심 상해한다는 걸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가족의 경제적 부양을 홀로 책임져야 하고 이를 잘 해내지 못하는 걸 수치스러워하는 이런 모습은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수종이 딸 다래에게 "아빠 건물주야!"라고 강조하는 장면들도 그렇다.

가부장 문화에서 강요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자괴감 그리고 이를 밀어내려는 방어적인 마음, 여기에 경제적 위기 상황이 겹치면서 수종은 자신의 어두운 면을 마주한다.

'돈'이 전부인 세상
 tvN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스틸 컷.
ⓒ tvN
첫 번째 납치극을 벌여 목돈을 거머쥔 뒤에도 수종은 끊임없이 좌절을 경험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좌절'은 인간의 폭력성을 표출시키는 강력한 동기 중 하나다. 사람은 추구하던 목표가 방해받거나, 억울한 상황을 경험할 때 좌절감을 느낀다. 좌절한다고 반드시 폭력적이 되는 건 아니지만, 좌절은 강력한 공격성 발현 요소다. 여기에 '무시받는다'는 감정이 더해질 때 폭력성은 더욱 짙어진다.

드라마에서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돈'이다. '돈'이 모든 것을 앞서는 드라마 속 세상에서 활성은 돈 앞에서 망설이는 수종에게 "루저 새끼야"라고 비난한다(6회). 수종이 재개발 사업에 참여해 100억을 받기로 했다고 했을 때도 활성은 "300억을 받을 수 있다"며 '호구'라고 비아냥댄다. 수종은 경제적 능력을 기준으로 '루저' '호구'라는 인격적 모독을 당하며 계속해서 좌절감을 느낀다. 그리곤 선에게 "너도 나를 루저라고 생각해?" "나 한 번만 믿어줘"라고 말하며 범죄를 도모한다. 좌절감이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방법을 실행에 옮기게 한 셈이다.

활성도 마찬가지다. 활성은 부잣집에 장가를 가지만, '돈'만 밝히는 장모 양자에게 무시당하며 산다. 아내 이경이 유산을 했을 때조차 양자는 활성 탓을 하며 집에서 내쫓기까지 한다. 이에 활성은 장모에게 독립하기 위해 이 모든 사단의 시작이 된 이경의 납치극을 펼친다. 물질만능주의와 그로 인한 좌절감이 만들어 낸 기괴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폭력을 합리화하는 마음
 인간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포스터
ⓒ tvN
한 번 발현된 폭력성은 좀처럼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수종과 선은 첫 번째 납치극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른다. 그리고 점차 이들은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으며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한다. 이는 심리학자 반두라가 이야기한 '도덕이탈이론'을 떠올리게 했다. '도덕이탈이론'은 사람들은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기 위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이유를 만들어 낸다고 설명한다.

4회 수종은 선과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경을 납치한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니 일이 좀 꼬인 건 있는데 나쁜 의도는 전혀 아니었어. 어디 영화에서 보니까 '부의 재분배'라고 그러더라고. 이런 경우가."

이는 수종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후로도 수종과 선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다래만 생각하자'며 '아이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수시로 합리화한다. 이는 정당화를 통해 평범한 이들이 자신의 폭력성을 양심의 가책 없이 드러내게 된다는 '도덕이탈이론'이 잘 드러난 장면이다.

하지만 범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국 다래가 부모의 행위에 대해 알게 되고 만다(7회). '다래를 위한다'는 이들의 정당화는 그 힘을 잃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다래가 이경에게 납치되는 일까지 벌어지지만(9회) 그럼에도 수종은 활성을 납치해 재개발 사업에 이득을 취하려 한다. 그리고 결국 수종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건물은 화재가 나 잿더미가 된다(10회).

"멈출 자신 있는가? 포기하지 않는 것도 용기지만 때가 되면 멈출 줄 아는 것도 용기라네."

드라마의 6회 김 노인(남명렬)은 건물을 인수하러 온 수종에게 경고한다. 하지만 가부장 사회의 질서 안에서 자본주의적 욕망과 만나 발현된 인간의 폭력성은 쉽게 멈춰지지 않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건물주>는 과연 현실과 얼마나 다를까? 드라마에 담긴 기괴함과 납치, 살인이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이 있을까? 이 드라마의 기괴함의 원인인 가부장제와 물질만능주의는 우리 사회에도 깔려 있으니 말이다.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건 '멈출 줄 아는 용기'다. 개인이 용기를 내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제도, 정책 곳곳을 제대로 응시해야 한다. 그리고 '멈추는 용기'를 내려는 개인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게 무엇이든, 이 드라마를 통해 다시 살펴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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