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의 귀향, 마이산에서 받은 뜻밖의 선물

이완우 2026. 4. 1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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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사에서 은수사, 산 정상까지... 호주 동포 부부와의 마이산 동행길

[이완우 기자]

 진안 마이산 벚꽃 터널의 풍경
ⓒ 이완우
지난 15일 진안 마이산 벚꽃 축제 기간, 한가로이 마이산(687m)을 찾았다. 마이산 남부 진입로인 2.5km에 걸쳐 펼쳐진 벚꽃 터널은 '(일명) 십리벚꽃길'로 장관이었다.

마이산 주차장에는 바람에 날리는 벚꽃 잎이 꽃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다. 벚꽃 축제를 맞아 마이산을 찾은 많은 인파의 물결 속에서 40년 만에 고국을 찾은 호주 동포 부부가 전북 진안 마이산을 처음 올랐다. 암마이봉 등산을 목적으로 한 기자는 이 부부와 함께 금당사를 지나 탑사로 향하는 벚꽃 터널을 걸었다. 그들이 마주한 것은 벚꽃 터널만이 아니었다.

마이산을 함께 오르다
 진안 마이산 십리벚꽃길 풍경
ⓒ 이완우
 진안 마이산 탑사
ⓒ 이완우
이곳은 전국에서 가장 늦게 꽃을 피우는 '최후의 벚꽃길'로 알려져 있다. 진안군에 따르면, 마이산은 매년 4월 말 벚꽃 시즌을 전후해 약 7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전국적인 벚꽃 명소다.

마이산은 수령이 오래된 재래종 산벚꽃 수천 그루 군락은 꽃 색깔이 더 진하고 깨끗하다고 한다. 산벚꽃은 왕벚꽃과 달리 붉은빛이 감도는 꽃과 구리색의 어린 잎이 동시에 피어나서 더 화려하고 진한 핑크빛 봄의 색채를 띤다.

마이산 탑사는 문화재 관리 구역으로 입장료가 있는데, 70세가 넘으면 무료입장이었다. 이 부부는 푸른색 여권을 꺼냈다. 이들은 40년 전인 30대 초반에 이민 가서 호주에 뿌리를 내린 호주 국적의 재외동포였다. 40년 동안 케빈과 그레이스가 이들의 이름이었다. 영문 이름이 적힌 여권은 그들의 낯선 땅 오랜 세월의 증명서였지만, 산사의 작은 매표소는 고국을 찾은 동포를 환대 하며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마이산 탑사의 타포니는 1억 년 전의 백악기에 호수에 퇴적되어 형성된 역암 표면의 풍화로 만들어진 독특한 지형이다. 거대한 역암이 솟아올라 형성한 부부봉(숫마이봉과 암마이봉)의 독특한 형상은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태극(太極)의 두 축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우뚝 솟은 숫마이봉(陽)과 포용하듯 자리한 암마이봉(陰)은 음양의 역동적인 순환을 보여준다. 이갑룡 처사가 쌓았다는 탑사의 돌탑들 중에 천지탑(天地塔)은 균형 잡힌 음양으로 무너지지 않는 우주의 질서를 상징한다.
 진안 마이산 타포니 지형
ⓒ 이완우
 진안 마이산 탑사 천지탑
ⓒ 이완우
마이산 은수사의 태극전에서 이성계가 마이산 산신으로부터 금척(金尺)을 받고 있는 몽금척수수도(夢金尺授受圖)를 보았다. 태극전의 벽면 탱화는 일월오궁도(日月五宮圖)로 장식되었다. 은수사의 가람 마당에는 수령 670년이 되었다는 청실배나무의 하얀 꽃이 만개하였다. 은수사는 마이산 숫마이봉의 솟구치는 힘찬 기상이 바로 느껴지는 장소다.
 진안 마이산 은수사
ⓒ 이완우
은수사에서 계단을 올라, 천왕문(天王門)에 도착하였다. 천왕문은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마주하는 고개라 할 수 있는데, 두 봉우리가 큰 문의 기둥인 셈이다. 마이산은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금남호남정맥의 마루금으로 금강과 섬진강 수계의 분수령이다. 진안군에 전승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성계가 고려 말에 남원에서 황산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개선하면서 신비스러운 마이산에 들렀다 한다.

천왕문 안내판에는 "이성계는 마이산에서 돌탑을 쌓아 비보(裨補)를 만들고 꿈속에서 나라를 다스릴 권한인 금척을 받았으며, 이곳에서 왕이 하늘로 오른다는 뜻으로 천왕문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암마이봉으로 오르는 등산을 시작하였다. 등산 안내판에는 450m의 길지 않은 등산로지만, 체감 거리는 약 1km 이상으로 느껴지는 가파른 역암 지형을 올라가야 한다. 암마이봉 오르는 길은 숫마이봉의 웅장한 자태를 몇 번이고 마주하게 된다.

숫마이봉이 잘 보이는 곳이면 멈추어 서서 한참씩 바라보았다. 한곳에서는 나무데크 바닥에 두 발을 뻗고 앉아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숫마이봉은 어찌 보면 진안 고원의 매가 하늘로 솟구치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눈빛은 영락없이 고향을 찾은 소년과 소녀의 표정이었다. 여행 길 위에서, 그들은 40년 동안 마음속으로 그려온 고국 자연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는 듯하였다.

암마이봉 남쪽은 역암이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수직 단애(斷崖)인 지형인데, 북쪽 사면은 역암 위에 흙이 덮여 있어 나무가 자라고 있다.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진달래가 한창이었다. 암마이봉 오르는 길과 암마이봉 정상에도 개나리가 줄지어 피었다.

그들에게 들려준 한 사진작가의 이야기
 진안 마이산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정상
ⓒ 이완우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탁 트였다. 북쪽으로 진안읍 시가지 너머 부귀산(806m)이 보였다. 부귀산 전망대(778m)에서 동남쪽으로 직선거리 6.5km 거리에 있는 마이산을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의 풍경은 일품이다.

기자는 작년 8월 중순에 부귀산 전망대에서 야영하면서 마이산에서 일출과 일몰의 장면을 지켜보았다. 이 자리에는 40여 년간 마이산의 풍경을 기록해 온 진안의 정길웅 사진 작가와 함께하였다 (관련 기사: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다는 세계 유일 봉우리, 공들여 담은 이 장면).

이들 부부는 마이산 정상인 암마이봉 마루에서 십리벚꽃길, 탑사의 돌탑, 타포니 지형, 은수사의 이성계 설화, 그리고 숫마이봉의 힘찬 기상을 언급하며 감탄하였다. 기자는 이들에게 마이산이 보이는 산속에 움막을 짓고, 40년 동안 한결같이 마이산 사진을 담아온 한 사진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이산 은수사
ⓒ 이완우
마이산을 오르는 동안은 숨이 찼지만, 내려오는 길은 한결 느긋한 산책이었다. 케빈과 그레이스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시드니에서 세계적인 명소 블루마운틴은 지하철로 약 2시간이면 간다고 했다. 블루마운틴의 그 웅장한 대자연과 깎아서 조각한 듯한 자매봉은 그들에게 일상의 풍경이었다고 한다. 마이산은 40년 동안 이국 생활에서 가슴 속 깊이 묻어두고 가보고 싶어하던 고국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케빈은 마이산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이라며 말하였다.

"멀리서는 신비하게 솟아오른 두 봉우리, 가까이 다가서니 섬세하면서도 장대하고 고즈넉해요. 산사 사이에 기이한 돌탑 등 전설 속 환상의 세계에 들어온 듯했어요."

이들은 고국에서 한 달 살기 계획으로 고향 마을에 거처를 마련했다. 초등학교 동창회도 처음으로 참가해 보았다. 어린 시절 추억이 어린 고향 산천을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이제 친척과 지인이 사는 바닷가와 도시 지역을 두어 곳 돌아보고 호주로 돌아갈 예정이다.

마이산 계곡의 십리벚꽃길을 따라 내려왔다. 산벚꽃나무의 낙화가 흩날려 여울의 맑은 물 위로 내려앉았다. 벚꽃잎들이 분홍색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맑은 여울 한편에 잔잔한 소용돌이가 생겨, 고운 꽃잎들이 한데 모여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봄날의 우아한 정취를 물씬 풍기면서 덧없는 세월이 느껴졌다.

벚꽃 축제 마당의 식당을 찾아 햇볕이 밝은 자리에 앉았다. 진안 고원의 산나물로 마련한 산채비빔밥이 한 상 차려졌다. 케빈과 그레이스는 다시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할 것이다. 시드니로 돌아가면 몇 년 후 노년의 여생을 고국에서 보낼까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레이스는 숟가락에 내려 앉은 벚꽃 한 잎을 한동안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 진안 마이산 십리벚꽃길 계곡의 벚꽃잎 낙화 여울물ⓒ 이완우

기자가 정길웅 사진 작가에게 전화하였다. 예상대로 그는 마이산 탑사로 산길이 통하는 너도산 움막에서 마이산을 지키고 있었다. 시드니에 사는 케빈과 그레이스 부부가 처음으로 마이산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마이산을 평생 사진 찍고 있다는 정길웅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작가의 마이산 풍경 사진을 보고 싶어한다는 이들 부부의 마음을 작가에게 전했다.

정길웅 작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산 사진을 보내겠다고 했다. 마이산을 처음 찾은 이들 부부에게 "호주로 돌아가서도 마이산을 늘 곁에 두라"는 마음의 선물이었다.

"마이산을 처음으로 오르며 그 품에 안긴 마음이 얼마나 깊을지 짐작해 봅니다. 이 사진들이 머나먼 이국에서 고향으로 안내하는 작은 창문이 된다면, 제가 도리어 고맙겠습니다."

마이산이 보이는 산속, 원시적인 움막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네 장의 사진이 빠르게 전송되었다. 마이산의 춘하추동이 고스란히 담긴 풍경이었다. 봄 풍경은 산 벚꽃 뒤로 마이산이 화사하게 피어난 지난 14일의 사진이었다. 이어서 운무의 여름, 단풍의 가을과 설경의 겨울이 사계절의 순환을 이루었다.
 진안 마이산 봄 (2026년 4월14일 촬영)
ⓒ 정길웅마이산사진작가
 진안 마이산 여름 (2025년 6월22일 촬영)
ⓒ 정길웅마이산사진작가
"마이산이 곁에 있을 것 같아요"

이들 부부가 호주로 이민을 떠난 때가 40년 전이었다. 정길웅 작가가 마이산 사진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은 지가 40년이 되었다. 어쩌면 이 사진 네 장은 고국과 고향의 산천을 마음에 담고 사는 수많은 해외 동포에게 보내는 정길웅 작가의 마음일 것이다. 사진을 받아 든 케빈과 그레이스 부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레이스는 40년 만에 마주한 고향의 사계절을 보고 또 살펴보았다. 케빈과 그레이스 부부가 입을 모아 말했다.

"정말 뜻밖이에요. 고향의 선물, 잊지 못할 거예요. 이제 호주에 돌아가서도 마이산이 곁에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의 귀향의 염원이 꿈으로만 남을지라도, 고국에서 걸었던 십리벚꽃길의 화사한 벚꽃 터널과 마이산의 풍경과 함께할 것이다. 이들은 시드니에서 지하철로 2시간이면 닿은 블루마운틴에 올라서도 마이산 사진에 담긴 춘하추동의 풍경을 떠올릴 것이다.
 진안 마이산 가을 (2025년 11월22일 촬영)
ⓒ 정길웅마이산사진작가
 진안 마이산 겨울 (2026년 1월6일 촬영)
ⓒ 정길웅마이산사진작가
누군가는 40년을 기다려 사진을 받았고, 누군가는 40년을 바쳐 그 풍경을 지켜왔다. 마이산의 사계절은 그렇게 이민자의 긴 여정 속으로, 비로소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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