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은 이거 먹지도 않나봐"... 선배가 오사카에 두고 간 것
도톤보리, 글리코상, 타코야키, 유니버설스튜디오, 우메다, 난바.... 오사카,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입니다. 오사카라는 지명 뒤에 무슨 말이 가장 어울릴지 AI에게 물었더니 '여행'이라고 답을 합니다. 여기, 오사카 여행이 아닌 오사카살이를 시작한 특이한 중년 남성이 있습니다. 마천루가 즐비하고 네온사인과 휘황찬란한 불빛을 자랑하는 오사카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두리에서 오사카 주민으로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독거 일기를 시작합니다. 반년간 펼쳐질 좌충우돌, 실수 만발 오사카 생존기를 시작합니다. <기자말>
[김용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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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기 오사카대학 4월 오사카대학 도요나카 캠퍼스의 모습. 왼쪽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기 위해 학생들이 줄을 서고 있다. |
| ⓒ 김용국 |
청춘이 부럽기 그지없지만, 50대 객원 연구원인 나는 그저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대학이 근거지이지만 섣불리 끼어들 수 없다. 민폐일지 모른다. 그들과는 이미 30년이라는 세대차가 있고, 내 머리는 빠졌고 생각마저 늙어버렸다. 마치 파릇파릇한 나무 사이에서 고목이 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사실, 벚꽃에 '환장'한 나라에 살면서 활짝 핀 벚꽃을 보고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벚꽃은 한잎 두잎 사라져간다. 어느덧 오사카 생활도 넉 달로 접어든다. 연구원 생활도 이제 겨우 두 달 남았다. 돌아갈 날이 다가온다. 그동안 뭘 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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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메다 스카이빌딩에서 바라본 오사카 오사카 우메다 스카이빌딩 공중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사카 전경. 가운데 쪽엔 요도강이 흐르고 있다. |
| ⓒ 김용국 |
30년을 향해 가는 직장 생활에 쉼표를 찍기 위해, 어렵사리 기회를 얻어서 오사카까지 왔건만 일본에서조차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곱씹어보니 몇 가지 짚이는 게 있었다.
일단, 몇 달이 지나자 그다지 새로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엔 신선한 자극도 받고 문제의식도 갖게 되었지만 어느샌가 오사카 생활에 적응하면서 살아가기 급급했다. '일본은 원래 그렇고 그런 나라지'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었다. 관광객도 현지인도 아닌,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어정쩡한 이방인이 나의 모습이었다. 물론 많은 일본인을 만나고, 대화를 하고, 술잔을 주고받았지만 그들에게 나는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다. 대다수 일본인들에게 나는 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그만인, 딱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나 역시 일본 문화에 적응이 된 건지, 새로운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에 매번 이런저런 이유로 '정중한 거절'을 반복하는 일본인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맘 편할지 모른다고 여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뿐 아니었다. 어느 결에 나는 다시 한국에서처럼 일상에 쫓기고 있었다. 강의 수강, 발표 수업 준비, 연구 과제 정리, 출장, 일본어 공부에 허덕이고 있었다.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빨리,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갈아 넣었던' 과거의 나를 보는 듯했다. 이러려고 오사카까지 온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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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의 오사카 도톤보리 주말 오사카 도톤보리에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
| ⓒ 김용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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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노오 폭포 오사카부 미노오시에 있는 미노오 폭포. 높이가 약 33m에 달하는 자연폭포이다. |
| ⓒ 김용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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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길은 어디일까 오사카부 이케다시 소재 슈보다이 전망대. |
| ⓒ 김용국 |
동갑내기 후배 역시 나에게 "여기 있을 때라도 뭐든 천천히 하고, 그리고 뭘 좀 잘 하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냥 웃어넘겼지만, 내 일상이 어떤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나의 여유 없는 표정에서 강박관념과 피로감, 조급함이 남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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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료들이 가져온 한국음식 오사카여행을 온 동료들이 가져온 한국음식. 배추김치, 갓김치, 파김치에 집에서 담근 고추장과 된장, 고춧가루, 찌개용 육수까지 공수해왔다. 조미김, 각종 찰떡파이와 추억의 건빵은 덤이었다. 사진에 없는 한국음식까지 포함하면 남은 생활동안 다 먹기도 힘들 정도의 분량이다. |
| ⓒ 김용국 |
공항으로 향하면서 선배는 "친절한 가이드 덕분에 잘 지내고 간다. 오사카에서 아예 가이드로 먹고 살아도 되겠다"라며 고마워했다. 하지만 정작 고마워할 사람은 나였다. 오사카에서 지치고 힘들 무렵 나타나 나를 위로해 주고 쉼표를 찍어준 두 사람이 나의 구원군이었다.
일행이 떠난 뒤 통장을 확인해 보니 정체 모를 돈이 들어와 있었다. 그 무렵 한국에 도착한 선배가 문자를 보내왔다. "가이드 잘해서 주는 팁이니 남은 두 달 잘 즐기다 와."
그날 저녁은 선배가 캐놓은 달래에 감자, 두부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반찬으론 갓김치에 파김치만 놓았는데도 진수성찬이다. 전부 일본 와서 처음 먹는 음식들이다. 한국 음식이 이렇게 훌륭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날 밤은 후배가 지금 나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던 영화를 보았다. <행복의 속도>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여느 때였더라면 시간 낭비라고 여겼을 테지만 그날은 잠자리에 누워서 노트북으로 느긋하게 감상했다.
영화는 보존지구로 지정돼 차가 다닐 수 없는 일본의 국립공원 내 산장으로 짐을 나르는 짐꾼(봇카)들의 이야기다. 10km의 거리를 80kg의 짐을 메고 오가는 만만찮은 직업이다. 봇카들은 걸음걸이와 짐을 지는 방법이 저마다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멀리서 뒷모습만 봐도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라고. 각자의 생존방식일 테다.
"자기의 페이스로 가면 괜찮구나"
영화엔 두 가지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이 아들과 함께 별을 보기 위해 밤길을 걸으면서 던지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10초만 눈을 감았다가 하늘을 봐, 그럼 별이 잘 보일 거야."
아들은 열을 세고 하늘을 바라본다. 아까와 달리, 마치 하늘에서 별이 쏟아질 듯하다. 살면서 해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차분히 숨을 고르고 한 번쯤 여유를 갖고 다시 바라보라는 충고로 들렸다.
또 하나는 산장에 짐을 날라 준 뒤 차를 마시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에게 일이 힘들지 않냐고 산장 주인이 질문을 던진 뒤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는다.
"천천히 가면 돼요. 누가 기다려서 서둘러 갈 땐 지치는데..."
"자기의 페이스로 가면 괜찮구나."
순간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동안 누구를, 무엇을 의식하고 살아온 걸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포장할 이유도 없는데. 그저 묵묵히 내 길을 가면 되는데. 나만의 호흡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빨리, 완벽하게만 가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좋아하는 길도 각자 다르다.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도착할 테고, 아주 틀린 방향만 아니라면 누군가와는 또 만나게 될 텐데 나는 왜 그다지도 조급해하고 초초해했던가.
동료들의 오사카 방문과 영화 감상을 통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빠르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행복이고, 그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남은 두 달 오사카 생활은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여정으로 여기며 이렇게 살려고 한다(물론 쉽지 않겠지만).
천천히, 서두르지 말 것, 주위를 신경 쓰거나 비교하지 말 것. 잘하려고 잘 보이려고 하지 말 것. 해야 할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우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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