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굴 등 'K-수산물' 위기... 세계 시장에서 설 자리 잃을 수도
'계절노동자 제도'는 한국 농어번기의 고질적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단기 외국인 고용 제도입니다. 하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 브로커의 불법 개입과 부당이득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계절노동자들이 인권침해와 임금체불 등으로 고통받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계절노동자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기획은 계절노동자 제도의 문제점을 열 편에 걸쳐 심도 있게 다루면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고기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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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절노동자 브로커 처벌 및 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 지난 3월 19일 정부청사 앞에서 계절노동자제도 전면개선 대책위가 기자회견하고 있다. |
| ⓒ 계절노동자제도 전면개선 대책위 |
고흥군 굴까기 작업장 임금 착취 논란 이후, 국내 수산물 수출업체들은 그 여파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4월 2일,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이 신안 태평염전에서 수출한 천일염에 대해 강제노동 지표인 '취약성 악용, 이동 통제, 신분증 압류, 임금체불' 등을 확인했다고 밝히며, '수입보류조치(WRO)'를 내린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보름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불공정 무역 대응 등, 미국 해산물 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러한 조치는 한국 수산물 수출업체들을 긴장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태평염전 사례에서 보듯, 공급망(Supply Chain)에서 강제노동 흔적이 발견되면 해당 품목 전체의 미국 시장 접근은 차단된다. 계절노동자 임금 착취, 이동 통제 등 강제노동 지표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최근 고흥 사례는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하다.
미국 당국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을 조사·규제하는 이유를 미국 기업들이 공정한 경쟁을 보장 받게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미국 밖에서 강제노동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시장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므로, 불공정 경쟁을 유발하여 미국 기업에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법규를 준수하지 않는 비공식 공급망에서 발생하기 쉬운 '강제노동'은 지난해 11월 발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서도 언급되었다.
"한국과 미국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노동권을 강력히 보호하기 위해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 한국과 미국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 수입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에 맞서 협력한다."
이러한 문구는 외교적 수사로 볼 수 있지만, 미국이 강제노동과 인신매매 같은 인권 문제를 자국 이익의 잣대로 사용해 왔다는 점에서 다분히 의도적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지난 3월 12일, 한국을 포함한 60개국을 대상으로 강제노동 관련 무역 관행 조사를 개시했다. 이는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차단하고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조치로, 한국 수산물 수출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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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다양한 조미김 상품이 진열돼 있다. 2026.1.15 |
| ⓒ 연합뉴스 |
미 국무부 인신매매보고서 작성팀은 매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인신매매 행태를 조사하여 의회에 보고한다. 이들은 현재 2026년(해당년도 보고기간: 2025년 4월 1일부터 2026년 3월 31일) 보고서 작성을 위해 강제노동으로 인한 인신매매 피해 당사자, 각국 정부의 대응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으로, 한국 내 계절노동자 피해 사례를 모니터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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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에서 한국의 강제노동의 언급된 사례 미국이 국내 강제노동을 언급하는 사례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
| ⓒ 고기복 |
대한민국 인공위성 발사기지인 나로우주센터가 위치한 고흥은 김, 굴 등 수산 양식이 발달한 지역이다. 그중 3년 연속 전국 생산량 1위로, 국내 김 생산량의 약 78%를 차지하고 있는 물김은 2026년산 기준 2000억 원의 위판액 (최종 증가 예상)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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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요 수산물 수출 통계 김 수출은 2024년, 10억 달러에서 2025년 11.3억 달러로 13.7% 증가했다. |
| ⓒ 고기복 |
한미 공동 팩트시트는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에 공동 대응"을 약속하며, 한국 내 강제노동 의혹이 한미 공동의 무역·안보 이슈로 설정되었다. 만약 미국이 한국의 계절노동자 제도와 관련된 사례를 강제노동으로 규정한다면, 한국은 스스로의 제도에 대해 '공동 대응' 명분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출 상품과의 연결 고리, 11.3억 달러 '김' 수출 산업이 한순간에 철퇴를 당하고, K-수산물 수출 전반이 표적이 될 수 있다. 계절노동자는 농업·어업 등 1차 산업에 집중되어 있고, 이 부문은 농산물·수산물, 가공식품, 원재료 형태로 미국 시장에 직접 또는 간접 수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CBP가 고흥에서 생산한 김, 굴 등 특정 품목에 대해 '강제노동 의심'을 이유로 수입보류조치(WRO)를 발동하면, 한국 기업과 지방정부는 개별 사건을 넘어 '한국 농업·어업 전반의 인권 리스크'를 해소하라는 구조적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나아가 미국은 공급망에서의 강제노동·인권 기준 준수 협력을 빌미로 관세 인하·철폐 등 통상 압력까지 가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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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요 국가별 수산물 수출 통계 전체 33.3억 달러 수출액 중, 한국은 일본, 중국, 미국 순으로 수출하고 있다. |
| ⓒ 고기복 |
현재 외국인 계절노동자 제도는 법무부가 주도하고 있지만, 실상은 브로커들의 이익을 위한 무대가 되고 있다. 브로커들은 보증인 혹은 보증금 등을 설정하여 계절노동자 이동을 통제하고, 고액의 송출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임금을 갈취한다. 반면, 법무부는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피해자가 발생해야 실태조사를 하는 등 사후 대응에 급급하다. 고흥 지역은 수년 전부터 브로커가 활동한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올해 대대적인 언론 보도 이후에야 실태조사에 들어간 것도 뒷북 행정의 전형적인 사례다.
고흥에서 인신매매 피해 계절노동자가 민간단체에 의해 구조된 후, 계절노동자를 송출한 필리핀의 지자체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해당 지자체가 필리핀 이주노동자부(DMW)에 제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미 귀국한 105명의 계절노동자들로부터 받은 집단 진술서 내용이다.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조건에 따라 임금을 전액 지체 없이 수령했음을 확인한다. 고용 기간 동안 모든 초과 근무에 대해 고용 계약서 및 관련 기준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받았음을 확인한다. 임금계산, 지급 방법 및 지급 일정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받았으며, 모든 임금 및 초과근무 수당이 지급되었음을 인정한다. 진술서 작성일 현재, 누구도 임금, 초과 근무 수당 또는 기타 관련 고용 조건에 어떠한 불만, 이의 또는 분쟁도 없다."
이에 대해, 지난달 20일 성평등가족부로 중앙인신매매등피해자권익보호기관 사례판정위에서 '인신매매 피해자 확인'을 받은 피해자는 이러한 진술에 대해 사실과 다름을 분명히 했다. 피해자의 동료 조이(가명)도 그 사실을 확인하며 이렇게 말했다.
"문제가 없었다면 굳이 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진술서다. 개인도 아니고, 단체 진술서라는 게 말이 되느냐. 지자체가 현지에서 계절노동자 선발, 훈련 등, 국내 입국 후 계절노동자 일상생활 관리, 급여 관리 등을 주요 임무로 명시한 코디네이터 임명장을 발행했다고 들었다. 실제로 브로커가 우리를 면접하고 선발했다. 급여 계산 등과 관련하여 어떠한 정보도 제공 받은 적도 없다."
인권은 선택이 아닌 필수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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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금 공제 및 제3자 지급 요청 |
| ⓒ 제보 |
"본인은 위 채무 상환을 위하여, 현재 근무 중인 사업장의 임금 중 일부를 공제하여 아래 제3자에게 지급하는 것을 본인의 자발적인 의사로 요청 및 동의합니다."
위의 지급 요청서는 근로기준법 제43조 임금 지급 원칙을 어기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임금은 통화로 직접 노동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직접 지급해야 하며, 제3자에게 지급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또한,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전액 지급해야 하며, 4대 보험료와 같은 법령 공제나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일부 공제가 가능하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은 노동자의 경제적 안정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브로커들이 근로기준법 등 관계법령을 지키지 않는 가운데, 주무 부처인 법무부의 대응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입법예고된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비영리단체, 비영리법인을 '계절근로 전문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해서, 민간 브로커의 진입을 사실상 합법화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브로커 합법화가 아니라, '공공성'과 '투명성' 확보다. 민간 브로커 진입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제도 운영 주체를 정부와 공공기관으로 한정해야 한다. 더불어 인신매매방지법 내 처벌 조항을 신설하고 강제노동을 실질적으로 단죄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더불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법무부의 계절노동자제도 운영지침도 문제다. 계절노동자 이탈률에 따른 제재 기준 등은 불법을 부추기며 인권침해의 원인이 되고 있다. ▲ 20% 이상 이탈 시 해당 외국 지자체는 1년간 비자(계절노동, E-8) 발급 제한 ▲ 50% 이상 이탈 시 해당 국가 모든 지자체는 1년간 비자 발급 제한 ▲ 70% 이상 이탈 시 해당 국가 모든 지자체는 3년간 비자 발급 제한 등 계절노동자 이탈률에 따라 외국 지자체를 제재하고 있다. 이러한 제재는 계절노동자 이탈 방지가 아닌, 인권침해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계절노동자 브로커들은 노동자 이탈을 막기 위해 여권·통장 압수, 보증금·담보·보증인 설정, 임금 착취, 협박과 이동통제 등의 수법을 주로 사용한다. 이러한 행위는 인신매매·강제노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계절노동자제도에서의 강제노동, 인신매매 피해 예방을 위해서는 이탈률에 초점을 맞춘 운영지침을 인권침해, 임금착취 등을 유발한 가해자나 고용주를 향한 제재로 바꿔야 한다.
한국 수산물 수출의 미래는 더 이상 맛과 품질에만 있지 않다. 인권과 노동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강제노동, '인신매매' 딱지가 붙은 김, 굴 등의 K-수산물은 세계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계절노동자 제도의 전면적인 인권 실태 조사와 근본적인 제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인권은 선택이 아닌 필수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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