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패천하 아래 다시 선 출발선 [서윤복의 길 위에서①]
제2회 서윤복 마라톤 앞둔 숭문고등학교, 학생 30여명 출사표

한국 마라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이다. 손기정은 당시 마라톤에서 우승했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속에서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경기에 나서야 했다. 시상대에서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렸던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한국 스포츠사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 한을 푼 것은 손기정의 제자 서윤복이었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그는 당당히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2시간25분39초의 세계 신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해방된 대한민국이 거둔 첫 번째 세계 제패였다. 이 우승은 단순한 스포츠 성과를 넘어 ‘KOREA’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 소식에 감격한 김구는 서윤복에게 ‘족패천하(足覇天下)’라는 글을 건넸다. ‘두 발로 천하를 제패했다’는 의미를 담은 이 글은 오늘날까지도 그의 업적을 상징하는 말로 남아 있다. 그리고 2026년, 그 상징은 한 고등학교 교정에서 다시 현재와 이어지고 있다.
숭문고등학교 정문 옆에는 족패천하 기념탑이 서 있다. 학생들이 매일 오가며 마주하는 공간이지만 그 의미를 인식하는 순간은 저마다 다르다. ‘족패천하’의 원본은 한국전쟁 당시 유실됐다. 다만 탁본이 남아 있어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비석은 1955년 당시 교장이던 서기원이 다시 글을 써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대역과 대흥역 사이 언덕길은 서울 마포구의 명예 도로인 ‘서윤복길’로도 지정돼 있다.

이번 서윤복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이선우 학생은 “중학교 때는 그냥 동상인 줄 알았다”며 “최근에야 뜻을 알게 됐는데 좋은 말이라고 느껴졌다”고 돌아봤다. 임예찬 학생 역시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작년에 대회에 나가면서 의미를 알게 됐다”며 “지금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오는 19일 열리는 ‘제2회 마포 서윤복 마라톤대회’를 앞두고 숭문고 학생 30여명이 선배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한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있다. 이번 대회는 하프, 10km, 5km 코스로 구성돼 7000여명의 건각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로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동문회의 지원을 받아 이번 대회에 참가한다.
이선우 학생은 “원래 러닝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러닝화를 사게 됐다”며 “마라톤 대회도 처음이라 완주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임예찬 학생은 “평소 운동을 좋아해서 작년에도 참가했다”며 “이번에는 5km 기록을 더 끌어올리고 싶다”는 목표를 내비쳤다.
영화 ‘1947 보스턴’을 보고 서윤복을 알게 됐다는 임예찬 학생은 “해방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태극기를 달고 우승했다는 게 놀라웠다”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감탄했다. 이선우 학생 역시 “존경스럽다는 마음이 컸다”고 했다.
같은 학교 선배라는 점에 대해서 이선우 학생은 “손흥민 같은 선수가 우리 학교 선배라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질 것 같다”며 “그런데 그보다 더 대단한 분이 선배라는 걸 생각하면 기쁘다”고 말했다. 임예찬 학생은 “아침마다 운동장을 뛰면서 예전에 이곳에서 훈련했던 선배를 떠올리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대회를 지원하는 숭문고 동문회 측은 이번 참가가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학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이선우 학생은 “친구들이 ‘거기 나가냐’며 의아해하면서도 부러워하는 반응이 있었다”고 전했다. 임예찬 학생은 “운동하는 친구끼리는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한 임예찬 학생은 “5km 기록을 최대한 끌어올리면 22분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고 내다봤고 이선우 학생은 “처음 나가는 만큼 완주에 의미를 두고 있다”며 “저도 5km를 뛰었을 때 힘들었는데 서윤복 선생님은 이런 것들을 이겨내서 세계를 제패하셨다. 더 동기부여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들에게 이번 경험은 학교생활 속에서도 오래 남을 기억으로 자리할 전망이다. 이선우 학생은 “학교에 대한 애교심이 더 생길 것 같다”고 했고 임예찬 학생은 “작년에도 마라톤과 축제가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 올해도 인상적인 경험이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송한석 기자 gkstjr1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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