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자’ 롯데가 꺼내든 승부수
재계 ‘부동산 부자’로 불리는 롯데그룹이 결국 부동산 개발 카드를 꺼내들었다. 롯데그룹이 보유한 유휴용지를 아파트, 복합쇼핑몰로 개발해 그룹 현금 흐름을 개선하겠다는 복안이다. 롯데케미칼, 롯데건설 등 주요 계열사 재무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부동산 개발 카드가 유동성 위기 돌파 효과를 낼지 재계 이목이 쏠린다.

양평동 토지·건물 2800억에 매입
롯데물산은 최근 롯데칠성음료가 보유한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5가 일대 토지, 건물을 2800억원에 매입했다고 공시했다. 공시에는 부동산 매수 목적을 ‘부동산 개발 사업 추진’이라고 명시했다.
총 2만1120㎡(약 6400평·도로용지 제외) 규모의 이 부지는 당초 물류센터와 차량정비센터로 쓰여왔다. 롯데물산은 이 부지에 아파트를 비롯한 주거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롯데물산은 2016년 당시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롯데월드몰을 개발했는데, 10년여 만에 또다시 부동산 개발에 나선다.
입지는 괜찮다는 평가다. 서울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에서 도보 5분 거리인 데다 선유도공원, 한강과 가까워 아파트 개발 사업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적률은 200%, 건폐율은 60%다. 층고를 20층 수준으로 올릴 수 있어 한강 조망도 가능하다. 이 부지에선 롯데건설이 2021년 당시 소형 청년임대주택 1400여가구를 지으려고 추진했지만, 주민 반대 등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롯데칠성음료가 부지 매각에 나선 것은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목적도 크다. 지난해 롯데칠성음료 매출은 3조9711억원으로 전년 대비 1.3% 감소해 4조원 선이 무너졌다. 영업이익도 1672억원으로 같은 기간 9.6% 줄었다.
하희지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롯데칠성음료는 4분기에만 120억원 적자를 내 시장 컨센서스에 못 미쳤다”며 “국내 음료, 주류 시장의 구조적인 소비 둔화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실적 둔화에 따른 위기감이 고조되자 롯데칠성은 지난해 11월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조직 통폐합과 공장·물류 재정비를 추진하며 비용 절감, 효율화 작업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롯데칠성은 부채비율을 지난해 168%에서 2030년까지 100% 이하로 낮추고, 차입금도 1조5872억원에서 8000억원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재무 건전성 제고와 미래 성장 재원 확보를 위해 양평동 부지 매각을 결정했다”며 “유동성 확보와 경영 효율화를 통해 본업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부지를 매입한 롯데물산 측은 “아직 개발 계획이 확정된 것은 아니고, 다방면으로 검토 중”이란 입장이다.
이뿐 아니다. 올 하반기에는 롯데칠성의 서울 서초구 서초동 물류센터 용지에 오피스텔, 쇼핑시설 등을 짓는 약 4조원대 대형 프로젝트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지는 총 4만2312㎡ 규모로 땅값만 2조원이 넘는다. 롯데그룹은 서초동 용지를 오피스텔, 사무실, 쇼핑몰 등으로 복합개발할 계획이다. 롯데그룹 측은 조만간 서울시와 협의를 거쳐 세부 개발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롯데쇼핑이 보유한 서울 마포구 상암 롯데몰도 내년 착공을 앞뒀다. 2013년 당시 지하철 6호선·공항철도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 인근 ‘노른자’ 부지를 사들인 롯데쇼핑은 무려 14년 만에 첫 삽을 뜨게 됐다. 롯데몰 상암점 부지는 총 2만644㎡에 달한다. 롯데쇼핑은 이곳에 영업면적 2만㎡에 달하는 복합쇼핑몰을 지을 예정이다.
롯데몰 상암점 개발 계획은 오랜 기간 난항을 겪어왔다. 롯데쇼핑은 2013년 서울시로부터 1972억원에 상암 롯데몰 부지를 매입했다. 앞서 2011년 서울시가 복합문화상업시설 조성 계획을 밝히며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당시만 해도 ‘서울 서부권 최대 쇼핑몰’이 들어설 것이란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인허가권자인 서울시가 인근 전통시장과의 상생을 내세워 인허가를 허가하지 않으며 사업이 표류했다. 2017년에는 전통시장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롯데쇼핑이 제시한 상생협력 방안을 서울시가 반려해 갈등이 극에 달했다.
결국 롯데쇼핑은 서울시를 상대로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감사원이 “서울시가 심의 절차를 부당하게 지연했다”며 롯데 손을 들어줬지만 착공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쇼핑몰 판매시설 비율을 80%에서 30%로 낮추는 등 설계 변경이 불가피했다.
오랜 기간 표류하던 롯데몰 상암점 개발 계획은 지난해 11월 급물살을 탔다. 마포구의 상암 롯데몰 개발 사업 세부개발계획 변경(안)이 서울시 DMC 관리자문단 자문회의를 통과했고, 결국 내년 첫 삽을 뜨게 됐다.
롯데웰푸드의 영등포 공장(1만1926㎡), 양평동 본사(7024㎡) 등도 순차적으로 개발될 전망이다. 롯데건설 역시 50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 본사 사옥 용지 매각 대신 자체 개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롯데건설 측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지난해부터 계열사가 보유한 수도권 유휴 부지와 공장, 물류시설 등의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타당성을 검토한 것으로 안다”며 “양평동 부지를 필두로 올해부터 본격적인 개발 사업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귀띔했다.


유동성 불 끄고 현금 창출 능력 높인다
롯데그룹이 부동산 개발에 속도를 내는 것은 유동성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롯데그룹 지주사 롯데지주 부채비율은 2019년 100.3%에서 지난해 144.87%까지 높아졌다. 1년 내 상환해야 하는 부채인 단기 차입금도 2024년 8062억원에서 지난해 1조5681억원으로 치솟았다. 핵심 계열사 롯데케미칼 부채 규모는 13조원, 롯데건설은 6조원에 달한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 이후 매년 영업손실을 냈다. 2022년 한 해에만 7626억원 손실을 기록했고, 2023년 3477억원, 2024년 8940억원 적자를 냈다. 지난해에도 9435억원 영업손실을 내 흑자전환은커녕 오히려 적자 규모가 더 불어났다.
롯데그룹 전체 매출 중 30%를 화학군이 차지할 정도로 롯데케미칼은 핵심 계열사로 손꼽힌다. 2021년까지만 해도 1조5356억원 영업이익을 거두던 그룹 캐시카우였지만 더 이상 호시절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다.
롯데건설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1054억원으로 전년(1695억원) 대비 38% 줄었다. 당기순이익도 1142억원으로 전년(5679억원) 대비 80% 가까이 감소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롯데그룹은 각종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계열사 재무구조 개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주요 개발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 롯데건설은 시공사로 참여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롯데케미칼 입장에서도 1, 2대 주주인 롯데지주와 롯데물산의 현금 동원력이 높아지는 만큼 향후 유동성에 숨통이 트일 것이란 기대다.
게다가 기업 소유 부지 재개발은 일반 주거지역 재개발과 달리 사업이 수월하다. 거주민 대상 동의서를 받거나 이주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없어 개발 기간이 일반 재개발보다 훨씬 짧다. 일례로 서울 금천구 롯데알미늄 공장 부지 아파트 개발 사업은 인허가부터 입주까지 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롯데물산이 구원투수 역할에 나선 것은 다른 계열사와 비교해 경영 여건이 괜찮기 때문이다.
롯데물산은 지난해 매출 4863억원, 영업이익 1316억원을 낼 정도로 수익성이 높다. 부채비율도 70%대에 불과해 재무구조도 탄탄하다.
롯데물산은 그동안 수차례 그룹 구원투수 역할을 해왔다. 2024년 초 롯데건설 프로젝트파이낸싱(PF) 펀드에 이자자금보충 형태로 신용을 보강했다. 2024년 말에는 롯데케미칼이 기한이익상실(EOD) 위기에 처하자, 롯데물산은 그룹 심장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롯데케미칼 회사채에 시중은행 보증을 제공했다. 롯데건설이 지난해 말 7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때, 롯데물산과 호텔롯데가 자금보충약정을 제공하기도 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과거 유동성 위기설이 돌 때마다 롯데그룹은 대규모 부동산 개발로 이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내부 공감대가 있었다”며 “계열사 경영 여건이 녹록지 않자, 부동산 개발 카드로 현금 창출력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볼륨이 커질 경우 총대를 멘 롯데물산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우려도 적잖다. 롯데물산의 지난해 연결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374억원이지만, 1년 내 갚아야 하는 유동성 장기 차입금은 8943억원에 달한다. 순차입부채도 2조4436억원으로 2024년(2조3502억원) 대비 늘었다. 롯데월드타워 담보한도금액 역시 지난해 말 기준 1조6000억원으로 무시 못할 규모다.

핵심 계열사 롯데쇼핑의 경우 백화점 부문 실적은 괜찮지만 할인점(마트) 부문이 불안하다. 할인점 부문 매출은 2023년 5조7347억원에서 2024년 5조5765억원, 지난해 5조4713억원으로 매년 감소세다. 영업이익 역시 2023년 873억원에서 2024년 650억원으로 줄었고, 지난해엔 7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할인점 부문이 연간 적자를 기록한 것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실적이 악화됐던 2021년 이후 4년 만이다. 롯데하이마트 역시 지난해 영업이익은 96억원으로 전년(17억원) 대비 소폭 증가했지만 수익성이 여전히 낮다. 지난해 매출도 2조3001억원으로 전년 대비 2% 감소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침체되다 보니 롯데는 2026년 인사를 통해 그룹 재정비에 안간힘을 썼다. 부회장단이 전원 퇴진하고 유통, 건설, 화학, 식품 분야 CEO 20명을 교체하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사업총괄제(HQ) 폐지로 그룹 의사결정 체제를 단순화해, 속도감 있는 체제로 전환했다.
롯데는 앞서 2024년 유동성 위기설을 진화하기 위해 역대급 쇄신 인사를 단행했는데, 이번 인사에서 또다시 칼을 빼들었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고, 성과도 미흡했다”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위기의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뚜렷한 성과가 나지 않자 고심 끝에 부동산 개발 카드로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부동산 개발 카드로 유동성 위기 돌파에 나서지만, 부동산 경기 흐름이 변수”라며 “중요한 건 주요 계열사 본업 경쟁력 회복인데 적잖은 시간이 걸릴 듯싶다”고 전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5호(2026.04.15~04.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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