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업금지·칼퇴 독려도 괴롭힘? 日 ‘호와하라’ 딜레마[이세계도쿄]
“과도한 배려로 성장 못해” 불만도
상사 82%, 갑질 피하려 꾸중 안해
“성장 의지·배려 간 불일치에 불안”
“서로 대화하며 의향·기대 조율해야”

일본 직장 내에서 상사가 잔업을 금지하고 정시 퇴근을 하도록 독려하는 것을 괴롭힘으로 여기는 직원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사가 나서서 일을 다 해버리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배려가 결과적으로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이를 ‘화이트 하라스먼트’(약칭 호와하라)라고 부른다. 정확한 의미가 담기지는 않지만 한국어로는 ‘착한 괴롭힘’ ‘선의의 괴롭힘’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권력형 갑질인 ‘파워하라’ 등 일반적 괴롭힘과는 정반대 문제인 탓에 직장 내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일본은 2020년 대기업을 시작으로 2022년부터 모든 기업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의무를 부과하는 일명 파워하라 방지법을 시행 중이다. 개정된 노동정책종합추진법은 직장 내 신체·정신적 공격은 물론 따돌림과 과도한 업무 부과, 업무와 무관한 지시, 사생활 침해 등을 파워하라로 판단한다.
이 법은 일을 지나치게 주지 않는 경우(과소 요구)도 괴롭힘 유형에 포함한다. 다만 특정 직원을 배제하거나 고립시키려는 의도를 전제로 한 규정이라 과도한 배려에서 비롯되는 호와하라와는 거리가 있다.
마이나비는 지난해 12월 18일부터 25일까지 중도(경력)입사 1년 이내인 20~50대 정규직 회사원 1446명을 대상으로 호와하라 경험에 대해 물었다. 결과는 지난 9일 공개했다.

이 조사에서 호와하라를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은 56.9%로 절반을 넘겼다. 의미를 안다는 응답이 29.3%,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의미는 모른다는 응답이 27.6%였다. 전체 조사 대상자 중 3명 중 1명 정도는 호와하라가 뭔지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아예 들어본 적 없다는 사람은 43.1%였다.
호와하라를 알고 있는 비율은 연령대별로 30대가 60.7%로 가장 높았다. 20대가 59.4%로 그 뒤를 이었다. 40대는 55.4%, 50대는 45.7%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인지도가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20대와 30대는 ‘내용까지 이해하고 있다’는 비율과 ‘들어봤지만 내용은 모른다’는 비율이 비교적 비슷하게 나타났다. 40대와 50대는 ‘내용을 이해하고 있다’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모른다’ ‘들어본 적 없다’는 비중이 더 컸다.
돌이켜 보니 호와하라라고 느낀 적 있다는 응답자는 13.6%였다. 7명 중 1명보다 조금 많은 비율이다. 대다수인 72.5%는 호와하라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답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은 13.9%였다.
연령대별 호와하라 경험 비율은 30대와 40대에서 각각 14.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대는 13.5%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50대는 8.2%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호와하라 경험이 없다”는 응답은 50대가 83.2%로 가장 높았다. 이어 40대 75.8%, 20대 69.2%, 30대 68.5% 순이었다. “답하고 싶지 않다”는 응답은 20대 17.3%, 30대 16.7%, 40대 9.4%, 50대 8.7%로 연령이 낮을수록 응답을 유보하는 비율이 높았다.
본인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행동이나 커리어 선택지를 제한하는 행동도 호와하라로 평가받았다. “건강검진이나 출산 문제 때문에 승진하면 힘들 거라며 이번에는 보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일을 남겨두고 정시에 퇴근하라고 들었다” 같은 답변이 있었다.

호와하라 경험자 중 “향후 1년 이내 이직하고 싶다”는 비율은 71.4%로 나타났다. 미경험자(48.1%)보다 23.3% 포인트 높다. 호와하라 경험자는 자신의 업무 능력과 기술을 성장시킬 수 있는 환경을 찾기 위해 이직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라고 가시마 마유미 마이나비 연구원은 해석했다.
가시마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화이트 하라스먼트는 선의의 배려에서 비롯된 경우도 많아 단순히 ‘나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다만 그로 인해 성장 기회가 막혔다고 느낄 경우 이직 의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호와하라에 대해서는 “본인의 성장 의향과 주변의 배려 간 불일치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이후 성장 체감이나 평가, 주변과의 차이를 통해 ‘과도한 배려로 기회를 빼앗겼다’고 뒤늦게 깨닫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배려가 개인의 성장과 활약으로 이어지는지 일상적 대화와 면담을 통해 서로의 의향과 기대를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도쿄 소재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40대 일본인 여성 Y씨는 국민일보에 “후배가 전화가 울리고 있는데도 받지 않아서 ‘전화를 받으면 업무를 배울 수 있으니 받으라’고 주의를 준 적이 있다”며 “그게 파워하라로 받아들여져서 오히려 제가 상사에게 불려가 주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도로도 파워하라라고 한다면 지도 같은 건 불가능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일본 노동·인사 분야 싱크탱크 파소루종합연구소가 2022년 11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사에서 상사의 81.7%가 갑질(하라스먼트)을 피하기 위해 직원이 실수를 해도 엄하게 꾸짖지 않는다고 답했다. 같은 이유로 “회식이나 점심에 부르지 않는다”는 응답도 75.3%로 높게 나타났다. 관리직 4명 중 1명은 갑질이라는 말을 듣는 것을 피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 조사에서도 상사와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못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소루종합연구소 고바야시 유지 주임연구원은 당시 보고서에서 “하라스먼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엄격해지면서 현장에서는 하라스먼트를 회피하려는 상사의 관리 방식이 일상화되고 있다”며 “이런 행동이 상사와 부하 간 심리적 거리감을 만들어내고 결과적으로 부하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라스먼트 예방과 대응은 필요하지만 방어적 대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대화형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는 관리 교육과 그러한 여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근무환경 정비 등을 통해 ‘육성 지향의 하라스먼트 대책’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경영 칼럼니스트 요코야마 노부히로씨는 15일 야후재팬 전문가 칼럼 코너에서 “신입사원의 57.4%가 ‘자신의 직장은 느슨하다’고 느낀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며 “지도받을 기회가 적은 곳에서 ‘이곳에서는 성장할 수 없다’는 초조함을 느끼고 이직하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 ‘아무리 못해도 목표를 반드시 달성시키는 절대달성하는 인재 만들기’의 저자다.
요코야마씨는 “대책의 핵심은 ‘경청’과 ‘대화’일 것”이라며 “하라스먼트를 피하면서도 부하를 성장시키고 있는 상사의 공통점은 상대의 말을 끝까지 정성스럽게 듣는 경청 행동이었다”고 설명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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