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 피아니스트는 왜 살인자가 되었나

김성호 2026. 4. 1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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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1320] <모래그릇>

[김성호 평론가]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작 52년 만에 한국서 첫 개봉을 맞는 일본영화 <모래그릇>은 악인에게 서사를 주는 일의 미덕을 말한다. 영화 전체가 오로지 '악인의 서사'에 승부를 걸고 있으며, 꽤나 높은 확률로 그에 큰 불편감을 가진 이조차 설득해 낼 힘을 가졌다.

일본문단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마츠모토 세이초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그보다 나은 영상화란 평가까지 받은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작품은 일본 아카데미상이 생기기 이전, 일본 영화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던 <키네마 준보> 선정 1974년 '일본영화 베스트 10'에서 2위를 차지했다. 52년이 지나 대한해협을 건너 한국에서 이 작품을 선보이는 이유, 그 유효함이 오늘의 한국에 분명히 있다고 믿은 이들의 결단이 이 안에 담겨 있다.

일본 대표 사회파 추리극
▲ 모래그릇 스틸컷
ⓒ 다자인소프트
오늘의 일본 추리문학계 거두 미야베 미유키가 제 예술적 스승이라고까지 격찬하는 마츠모토 세이초가 쓴 작품이다. 그의 작품답게 독자를 놀라게 하는 기기묘묘한 트릭보다 당대 일본 사회의 문제를 읽는 이에게 자연스레 드러내는 솜씨가 두드러진다.
영화는 도쿄 전철역에서 60대 노인의 변사체가 발견되며 시작된다. 돌로 머리를 맞아 죽은 걸로 보아 우발적 살인이다. 베테랑 형사 이마니시(탄바 테츠로 분)와 신참 요시무라(모리타 켄사쿠 분)이 담당자로 배당된다. 일단 사건은 맡았는데 단서랄 게 없다. 거리마다 CCTV가 달려 있던 때가 아니지 않는가. 증인도, 증거도 없는 상황 가운데서 겨우 얻어낸 '카메다'라는 단어가 유일한 단서가 된다. 피해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성냥갑 하나로 찾아간 주점에서, 피해자가 어떤 이와 만나 대화를 나누었고 그중 '카메다'란 말이 나왔단 것. 무얼 뜻하는지 알 수 없는 이 말 하나로부터 시작된 추리극이 차츰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 수고롭다.
▲ 모래그릇 스틸컷
ⓒ 다자인소프트
후반부 40분의 공연이 전달하는 것

<모래그릇>의 인상적 캐릭터는 역시 이마니시다. 그는 여느 이름난 추리물의 주인공과 다르다. 이렇다 할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실마리 하나를 붙들고 전국을 누빈다. 성과 없는 출장에 더는 위에 출장비를 청구할 수도 없게 되자 아예 휴가까지 내서 자비로 수사를 나가는 열정까지 보인다. 무더워 가운데 흠뻑 젖은 셔츠를 아랑곳 않고 묻고 또 묻는 이마니시에게서 그가 건너온 지난 세월이 보이는 듯하다. 그는 참된 형사다. 그 유능함의 근간은 사람을 향하는 마음이다. 섣불리 단정하지 않는 태도다. 그 사실을 영화는 여러 장면을 통해 자연스레 내보인다.

그 수사 끝에 용의자로 떠오른 인물은 당대 일본의 스타 음악가 와가 에이료(가토 고 분)다. 일본 정계의 유력인이 뒤를 봐주는 특출 난 재능의 음악가가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니. 좀처럼 믿기지 않는 상황이지만 수사 끝에 드러나는 증거들이 하나같이 그를 가리킨다. 그러나 죽은 이와 와가가 대체 어떤 관계가 있단 말인가. 범행의 동기도, 그들의 관계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발로 뛰는 이마니시가 조금씩 밝혀낸 사실들이 어느 순간 이어진다. <모래그릇>의 결정적 순간이 되는 마지막 공연에서다.

143분, 무려 2시간 23분의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다. 1시간 30분 내외가 일반적인 요즘 영화와 달리 평균 2시간을 넘나드는 1970년대 영화의 템포가 버겁게 느껴지는 이도 있을 테다. 다분히 정적인 이 영화의 후반부는 또한 독특하다. 무려 40분 동안이 와가가 중심에 서는 클래식 공연으로 채워진다. 그가 작곡해 발표한 신곡 '숙명'을 대중에 선보이는 자리다. 같은 시각 이마니시는 그간의 추리를 바탕으로 경찰에 와가의 혐의를 발표한다. 그리고 요시무라를 대동한 채 공연장에 도착한다. 영화는 공연과 이마니시가 추적해 밝힌 와가의 범행 이유, 그리고 와가가 건너온 지난 시간을 교차편집해 관객 앞에 보인다. 영상은 끊어지고 이어지지만 40분간 사운드는 오로지 '숙명', 와가 필생의 작업으로 가득 채워진다.

악인의 서사
▲ 모래그릇 스틸컷
ⓒ 다자인소프트
예술이 끊임없이 비극을 통해, 특히 1940년대 아서 밀러가 있기까지 왕이며 왕자, 장군, 탁월한 자질을 가진 예술가 등을 주인공 삼아 그들이 실패하고 타락하며 무너지는 이야기를 담아냈던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아무리 훌륭한 이도 몰락할 수 있고, 그와 같은 몰락의 이유가 우리 가운데도 얼마든지 있음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다. 악인은 태생부터 다른 이가 아니다. 같은 인간인 것이다.
선과 악을 구분하여 결코 닿지 않은 이로 묘사하는 풍토는 도리어 현대에 이르러 등장했다. 심리학이 발달하고 개인의 특수성에 보다 집중하는 분위기가 생긴 뒤 사이코패스적 살인마, 소시오패스적 범죄자가 예술 가운데 공공연히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뇌하는 범죄자가 아닌 태생적 악당이 범행을 저지르고, 그 행각 자체에서 장르적 재미를 찾는 경우가 점차 늘어났다. 처음부터 선한 이와 태생부터 악한 이 사이에서 주목할 이는 언제나 선한 이가 됐다. 악인이 어째서 태어났는지,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를 묻지 않았고 물을 필요조차 없었다. 정의가 구현되고 피해자는 구제됐으니. 그러나 그와 같은 단순한 영웅물이 이어지는 동안 빌런은 끊이지 않았음을 주목할 일이다.
▲ 모래그릇 포스터
ⓒ 다자인소프트
같은 통에서 나온 화살인데, 어째서 달랐는가

처음부터 다른 존재인가, 같은 살이 달리 쏘아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다른 존재니 돌아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또 누구는 같은 살이니 잘못 쏘아진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존재라면 작품을 마주한 독자며 관객은 우리가 보기 좋은 쪽의 편에 서면 그만이다. 대체로는 강하고 멋지며 선한 쪽이 선택받는다. 그 필연적 승리에 기뻐하고 정의가 구현되는 모습에 통쾌함을 느낀다. 그뿐이다.

그러나 흥하는 이와 망하는 이가, 선인과 악인이 같은 존재라면 어떠할까. 독자와 관객은 마침내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우리 안에도 선과 악이 공존한단 사실을 직면하게 된다. 그리하여 작품 안의 갈등은 현실 세계 바깥으로 이어진다. 이중 더 나은 예술과 예술가가 택해온 것은 언제나 후자였다.

인간과 사회는 악인에게 서사를 봐야만 한다. 재현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허해야 한다. 불편하고 괴로울지라도 그 길이 더 나은 내일을 빚기 때문이다.

<모래그릇>은 가장 엄격한 법과 정의의 수호자도, 와가 에이료의 맞은 편에 선 이들조차 적어도 몇 걸음은 물러서게 할 힘을 가졌다. '숙명'이라는 곡의 제목이 말하듯, 잘못 쏘여진 살이 그에게 당해낼 수 없는 힘을 가했음을 느끼게 한다. 오로지 그의 탓만이 아니다. 다른 누구라도 그의 자리에 섰다면 명중할 수 없었으리라. 그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이 누구보다 열심히 와가를 추적한 이마니시다. 영화는 고작 실마리를 붙들고 지난한 길을 지나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실에 우리 사회가 가 닿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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