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됐지만, 아직도 그날이 불쑥..." 세월호 생존자들의 '이중적 괴로움'
[전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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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 지난 2025년 4월16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 인근에서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리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혹시라도 제가 세월호 참사를 면죄부이자 핑계로 생각하게 될까 봐 신경 쓰이고 두려워요. 사회에 진출하면서 뭔가를 못 이뤘을 때마다 '내가 이 핑계를 대면서 제대로 임하지 않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게 아닐까' 의심해요. 좀 뒤처지고 잘못할 때 혹시나 주위에서 '쟤는 세월호 참사를 겪어서 저러는 거야'라며 저만 보고 세월호 참사 생존자 전체에 대한 낙인을 찍지는 않을지에 대한 스트레스도 항상 있는 것 같아요." - 생존 학생 A씨
'그날'로부터 12년이 지났지만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이 여전히 높은 강도의 우울과 울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부터 3년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생존자·생존자 가족을 대상으로 진행된 심리조사에서 생존자들의 '울분', '우울', '불안' 지표는 2021년 소폭 하락했다가 2024년엔 다시 높아졌다.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의 관련 지표는 소폭이나마 하향세를 그리고 있는 것과는 다른 패턴이다.
안산마음건강센터가 2024년 발행한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건강 및 생활 실태조사 연구(2024)'에 따르면, 생존자들의 '외상 후 울분(PTED)', '우울', '불안', '자살 생각' 지표는 2021년에 비해 모두 증가했다. 특히 울분의 경우 생존자들 중 36.7%가 겪고 있어 최초 조사가 이뤄졌던 2017년도의 지표(40.4%)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지난 12년간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의 심리 지원을 해온 정해선 안산마음건강센터 부센터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조사에 응한 생존자들 대부분이 단원고 학생들"이라며 "현장에서 참사를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이라, 유가족·생존자 가족이 겪는 아픔과는 양상이 다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생존 학생의 어머니 문석연씨도 "(세월호 참사 당시) 우리 아이도 배 안에서 유리창 너머로 헬기를 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며 '사람 있다. 구해달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결국 국가가 구조하지 않았다"라며 "그래서 친구들을 다 잃었다. 그래서 울분이 클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24년은 아이들이 28세가 됐을 때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시기인 것도 영향이 클 것 같다"라며 "트라우마는 잠재돼 있다가 외부적으로 힘든 상황이 닥치면 촉발되기도 하는데,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그런 상황이 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존 학생 A씨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가장 가까이서 목격했다 보니, 일상에서 불쑥불쑥 세월호 참사가 떠오른다"라며 "이마저도 힘든데, '서른이 돼서도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나' 스스로 괴로워한다"라며 생존자들이 겪고 있는 '이중적 괴로움'을 털어놨다.
반복된 사회적 참사... "무력감과 허탈감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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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 지난 2025년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린 16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유가족들이 기억영상 시청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생존자들의 심리 지표 악화에는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반복된 사회적 참사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생존 학생 A씨는 "세월호 참사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 우리가 원하는 것만큼 진상규명도 이뤄지지 않았고 대형 참사도 계속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바뀐 것이 있는지'에 대한 회의적인 감정도 있는 것 같다"라며 "특히 이태원 참사의 경우 육지에서 일어난 일이라 구조·대처가 비교적 빠르게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고, 참사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면서 무력감과 허탈함을 느꼈다"라고 설명했다.
생존 학생의 어머니 B씨는 "아는 만큼 울분이 쌓이는 것 같다"라며 "참사 직후에는 많은 아이들(생존 학생들)이 그냥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어른이 돼서 그 상황을 직시하다 보니,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국가의 대응이) 얼마나 허술하고 얼렁뚱땅이었던 건지 알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해선 부센터장도 "희생자 중 또래가 대다수였던 이태원 참사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그 시기에 (생존자들의) 심리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라며 "안전사회 건설·진상규명 촉구 등의 노력을 했음에도, 비슷한 참사가 반복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절망감이 있었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스스로 의심하고 죄책감 갖는 생존자들
생존자들과 그 가족들은 생존자들이 갖고 있는 다중적인 괴로움을 짚기도 했다. A씨는 "그래도 어른이고 스스로 뭔가를 충분히 해낼 수 있어야 할 나이인데 힘듦·울분을 표현하는 게 나잇값을 못하는 건 아닐지 생각할 때가 있다"라며 "세월호 참사에 얽매여 직업·결혼 등 눈에 띄는 결과물을 내고 있지 못하는 내가 나약한 건가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 때가 가끔 있다"라고 말했다.
더해 그는 "'(내가 세월호 참사 생존자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볼까? 내가 잘못한 걸로 다른 생존 학생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한번 굳어진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아 더 우려된다"라며 "우리가 어떤 삶을 겪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만으로 추측·판단하는 시선들 자체가 두렵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고, 아예 없을지라도 그런 걱정을 하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다"라고 토로했다.
문석연씨는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도 상당했을 것"이라며 "살아남은 아이들은 먼저 간 친구들의 몫까지 해내려고 애쓰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B씨는 "참사를 겪은 것 자체도 충격인데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미안함에 아이들은 이중적으로 괴로워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을 되새기며 '그때 더 소리지를 걸'이라며 후회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관련 공식 행사 때 아이들(생존 학생들)이 잘 안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이들은 앞에 마련된 자리에 잘 앉지 않고 뒤에 서 있는다"라며 "친구들의 어머니, 아버지를 뵙는 것만으로도 죄송스러워하고 힘들어한다"라고 설명했다.
장기적 의료지원시스템 만들어져야... "믿고 이야기 나눌 사람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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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 2025년 4월16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 인근에서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리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생존자들과 이들을 12년간 옆에서 지켜봐 온 가족·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참사를 직접 겪은 당사자인 생존자들에 대한 장기적인 의료지원시스템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치료를 위한 의료비 지원이 기간 제한 없이 연장되는 방향으로 특별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A씨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나서 '혼자 짊어지고 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함께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구나' 큰 안정감을 느꼈다"라며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어떤 편견 없이 그저 '그랬구나' 하고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10주기 때 믿을 수 있는 분에게 처음으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이야기 나눈 후에 스스로 당황스러울 정도로 몸에 긴장이 풀린 걸 느겼다"라며 "그 전까지는 하루에 최소 1번 씩은 '난 세월호 참사를 겪었지, 생존자이지'라고 자각했는데 그 이후로는 매일 자각하지 않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문석연씨는 "나이대가 비교적 어린 생존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의료적인 지원이 지금보다 더 장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B씨도 "단원고 학생 생존자들이 75명이다"라며 "어른들이 잘못해서 발생했던 참사였고 정부에서도 잘못을 인정했는데, 이 아이들이 의료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마음 편하게 병원에 갈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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