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된 인종차별주의자 동상을 왜 야구장에? 보수 꼴통 야구단 텍사스 레인저스, 또 논란 자초

배지헌 기자 2026. 4. 16. 12:2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흑인 학생 등교 막은 경비대원이 동상 모델
-공항서 철거된 동상, 5년 만에 야구장에 재등장
-프라이드 나이트도 거부…MLB 가장 보수적인 구단
인종차별의 상징, 제이 뱅크스 동상(사진=유튜브 화면 갈무리)

[더게이트]

인종차별의 상징 같은 인물의 동상이 왜 메이저리그 야구장에? 텍사스 레인저스 야구단이 1956년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막은 것으로 악명높은 경비대원의 동상을 홈구장에 설치해 논란이다. 1947년 메이저리그의 인종 장벽을 허문 재키 로빈슨을 기리는 날을 맞아 파장이 더 커지는 분위기다.

복수의 미국 현지 보도를 종합하면, 텍사스 레인저스는 지난 3월 1일 홈구장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 '원 라이엇, 원 레인저' 동상을 설치했다. 뭐가 켕기는지 구단은 공개 16시간 전에야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제막식 행사가 끝난 뒤 구단 관계자들은 어떤 질문도 받지 않았다.
글로브 라이프 필드(사진=MLB.com)

인종차별주의자, 동상으로 부활하다

동상의 모델인 제이 뱅크스는 문제적 인물이다. 텍사스 경비대 소속 경비대원이었던 뱅크스는 1956년, 앨런 시버스 텍사스 주지사의 명령에 따라 맨스필드 고등학교에서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저지했다. 당시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미 공립학교 인종분리를 위헌으로 선언했고, 연방법원도 흑인 학생들의 입학을 허용하라고 명령한 상태였다. 주지사는 이를 거부하고 경비대를 파견해 흑인 학생들을 가로막았으며, 뱅크스가 그 현장을 지휘했다.

당시의 사진 한 장이 뱅크스의 이름을 역사에 박제했다.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서 있는 뱅크스 뒤로, 학교 입구 위에 흑인 남성을 본뜬 인형이 목에 밧줄을 감고 매달려 있는 사진이다. 미국 남부에서 흑인을 공개 처형하던 린치의 상징이었다. 뱅크스는 그 인형을 철거하지 않았다. 사진은 전국으로 퍼졌고, 맨스필드는 미국 시민권 운동의 상징이 됐다. 그 학교는 지금도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뱅크스의 동상은 1961년 조각가 월딘 타우치가 제작했다. '원 라이엇, 원 레인저'라는 이름은 혼자 출동한 경비대원 한 명이 폭동을 진압했다는 전설적인 일화에서 따왔다. 텍사스 경비대의 정신을 상징하는 이 문구는 야구단 이름의 뿌리이기도 하다.

동상은 수십 년간 댈러스 러브필드 공항에 전시됐다가 2020년 철거됐다. 경비대의 인종차별 역사를 낱낱이 파헤친 더그 스완슨의 저서 출판과 때마침 전국적으로 일어난 경찰 폭력 반대 시위의 여파다. 이후 동상은 5년간 앨라이언스 공항 창고에 숨겨져 있다가, 텍사스 경비대 협회 재단이 야구단 측에 전시를 타진하면서 다시 세상에 나왔다. 

동상 제막 이후 잠잠했던 논란은 재키 로빈슨 데이가 다가오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16일은 MLB 전 구장에서 재키 로빈슨 데이를 기념하는 날이다. 선수 전원이 로빈슨의 등번호 42번을 달고 그라운드에서 인종 평등의 정신을 기린다.

지역사회의 반발도 거세다. 이날 글로브 라이프 필드 밖에선 지역사회 지도자들이 뱅크스 동상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마크 비지 연방하원의원은 "80대 고령인 구단주가 인종차별 역사를 모를 리가 없는데 2026년에 이게 괜찮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비판했다. 비지 의원은 앞서 MLB 커미셔너와 구단 측에 서한을 보내 동상 철거를 촉구한 바 있다.
글로브 라이프 필드(사진=MLB.com)

보수 야구단 텍사스 레인저스의 민낯

이번 논란이 유독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그간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이 보인 극우 보수 행보 때문이다. 텍사스는 MLB 30개 구단 중 유일하게 '프라이드' 행사를 단 한 번도 열지 않은 구단이다. 구단주 레이 데이비스는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그레그 애벗 주지사에게 56만 달러(약 8억 1200만 원) 이상을 후원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에는 다른 29개 구단이 관중 수용을 절반 이하로 제한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100% 관중을 받아들였다. 동상 설치도, 프라이드 나이트 거부도, 팬데믹 무시도 — 하나하나 떼어놓으면 각각의 결정이지만, 쭉 이어놓으면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텍사스 극우 꼴통 정치를 야구장 안에 그대로 들여온 구단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맨스필드 시장 마이클 에반스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구단과의 면담을 추진 중이다. 에반스 시장은 디 애슬레틱에 "동상을 조용히 세워놨으니, 조용히 내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반면 레이 데이비스 구단주는 "우리 구단은 1972년 이후 자랑스럽게 레인저스 이름을 사용해 왔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지 말고 좀 더 솔직하게 구단명을 '남부연합'으로 바꾸는 건 어떨까. 

Copyright © 더게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