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남은 지방선거…‘선심성 추경’ 예상 못했나 [세종 백브리프]

배군득 2026. 4. 1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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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처, 물가 자극·선거용 편성 차단 주력
선거 직전 체감형 예산 배치에 시장 시선 엇갈려
성장 효과와 인플레 우려…선거 국면 속 동시 부상
추경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지난 2018년과 2022년 당시에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심형 추경 논란이 불거졌다. 이번 추경도 마찬가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매번 반복되는 '선심형 추경' 논란이 언제쯤 멈춰설지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제미나이

브리핑은 정부의 입장을 가장 정제된 형태로 보여주는 창구다. 하지만 모든 사안이 브리핑 한 번으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설명자료와 해명자료 역시 마찬가지다.

공식 문서는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입장을 밝히는 기능과 별개로, 그 문서만으로는 쟁점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서가 나온 시점, 대응의 속도, 설명의 범위, 빠진 대목까지 함께 살펴봐야 비로소 사안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백브리프’는 정부 설명의 ‘뒤쪽’을 읽는 코너다. 브리핑과 해명자료를 단순히 전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설명이 나오게 된 배경과 정책 흐름, 현장에서 제기되는 의문을 함께 짚는다. 데일리안은 정부가 말한 내용과 아직 설명되지 않은 부분 사이의 간격을 따라가며, 독자들이 사안을 보다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편집자 주>

추가경정예산(추경)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커졌다. 기획예산처가 지난 15일 지방선거를 의식한 추경 편성과 물가 자극 보도에 공개적으로 선을 그으면서다.

이번 반응의 핵심은 한 건의 보도를 바로잡는 데 있지 않다. 추경이 지금 정부 경제운용의 중심축으로 올라선 상황에서, 재정 확대가 곧바로 정치 일정과 물가 변수로 읽히고 있다는 점이 더 본질에 가깝다.

26조2000억원 규모 추경은 지난 3월 31일 편성돼 4월 10일 국회를 통과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오는 6월 3일 치러진다. 편성, 의결, 집행, 선거가 한 달 남짓한 구간에 밀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장의 시선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속도에 방점을 찍고 있다. 추경 26조2000억원 가운데 25조원을 집행관리 대상으로 잡고, 이 중 10조5000억원의 신속 집행 대상 사업은 상반기 85% 이상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고유가 피해지원금은 소득 하위 70%인 3256만 명에게 1인당 10만~60만원을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수출기업과 피해 산업이 지금의 위기를 잘 견뎌내야 우리 경제에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김민석 총리도 “서민, 소상공인, 수출 기업인들이 한시라도 빨리 추경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사업 계획 확정과 집행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체감형 예산을 전면에 세운 셈이다.

그때는 안되고 지금은 된다…반복되는 추경의 굴레

기획처가 서둘러 선을 그은 배경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체감이 빠른 이전지출과 지원금은 경기 대응 수단으로는 유효하지만, 선거와 맞물리면 해석이 달라진다.

지역화폐 방식 지급, 선거 직전까지 이어지는 소비 진작 효과, 정부조직 개편 뒤 예산 기능을 맡은 기획처의 첫 대형 추경이라는 점이 겹치면서 ‘재정의 정치화’ 프레임이 빠르게 형성됐다. 정부는 고유가와 경기 충격 대응을 앞세웠고, 시장은 왜 하필 지금 이 방식이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런 의심은 이번 정부에서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사례는 2022년 지방선거 직전이다. 당시 윤석열 정부의 2차 추경은 5월 29일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다음 날인 5월 30일부터 소상공인 손실보전금 지급에 들어갔다.

지방선거는 6월 1일이었다. 규모는 62조원에 달했다. 피해 보전의 시급성이 명분이었음에도 대규모 현금성 지원이 선거 이틀 전 집행되면서 정치권 안팎에선 곧바로 ‘선심성 추경’ 공방이 붙었다.

2018년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청년 일자리와 구조조정 지역 지원을 위한 3조8317억원 규모 추경을 추진했다. 이 추경은 5월 21일 국회를 통과했다. 그해 지방선거는 6월 13일이었다.

정부는 국회 통과 직후 지자체에 신속한 사업 추진과 집행을 요청했다. 행정안전부 사업에는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와 희망근로 지원사업, 고향사랑상품권 발행이 포함됐다. 고용위기와 지역경제 대응이라는 정책 목적은 뚜렷했어도, 선거를 20여 일 앞둔 시점의 체감형 재정 집행은 역시 정치적 해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선거 전 추경 논란은 특정 정부의 예외적 현상보다 한국 재정 운용이 반복해온 오래된 악순환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1년 보고서에서 역대 정권이 경기부양을 이유로 예산 조기 집행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고 짚었다.

위기 때 재정을 빨리 푸는 것은 정책 수단으로 익숙하지만, 선거와 겹치면 같은 속도가 곧장 정치적 신호로 읽히는 구조가 이미 굳어졌다는 얘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6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바보야, 문제는 물가야”…물가 2차 파급 후폭풍

그렇다고 추경의 필요성 자체가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대외 여건을 보면 성장 방어 논리는 분명하다.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1.0%, 내년을 1.9%로 전망했고, KDI도 최근 경기 진단에서 반도체 호조에도 불구하고 중동 전쟁과 통상 불확실성으로 경기 하방 위험이 커졌다고 봤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추가경정예산이 올해 성장률을 0.2%포인트(p) 정도 상승시킬 것으로 추정한다”고 전망했다. 추경이 경기 둔화의 낙폭을 줄이는 방파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견해다.

정부도 같은 방향을 강조한다. 추경의 순기능은 분명하다. 외부 충격으로 꺾일 수 있는 소비와 수출 현장의 부담을 빠르게 덜고, 성장률 하락 폭을 줄이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반도체 반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내수 보완까지 겹치면 경기의 급락을 막는 효과는 작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물가 환경이 이미 녹록지 않다는 데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0일 기준금리를 2.50%로 동결했다. 이 배경에는 ‘중동 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 확대, 성장 하방 위험 증대, 금융·외환시장 변동성 확대로 향후 전망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같은 날 영문 자료에서도 ‘중동발 공급 충격이 반도체 호황과 추경에도 불구하고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 방어용 재정이 필요한 때이지만, 중앙은행은 동시에 물가 재상승과 환율 불안을 경계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신 후보자는 “수요 측에서 추가로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여기에 표적 지원 중심 설계를 근거로 들었다.

기획처가 내세우는 논리도 맥락이 비슷하다. 국채를 새로 찍지 않았고, 광범위한 보편지급보다 취약계층을 겨냥한 지원이라는 점에서 총수요 과열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정부 입장에선 추경의 정치성보다 구조를 봐달라는 메시지다.

단기 지원만으로는 더 큰 파고 넘을 수 없다

시장과 연구기관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KDI는 4월 경제동향에서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비용 상승이 향후 석유류 외 품목에도 점차 파급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재정투입은 환율·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집행 방식에 있어서 경기 진작 영역에 집중하기보다는 에너지 가격이나 물가 상승 압력 부담 완화에 집중하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추경이 무조건 물가를 밀어 올린다고 단정하기보다, 어디에 얼마나 빨리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 대목에서 이번 논란의 본질이 드러난다. 정부는 위기 대응용 재정을 강조하고, 중앙은행은 물가 상방 위험을 경계하며, 연구기관은 유가발 비용 상승의 확산을 경고하고, 민간 전문가는 집행 구조를 문제 삼는다.

결국 쟁점은 추경의 존재보다 성격에 가깝다. 성장 하방을 막기 위한 방패인지, 선거 전 체감형 지출을 앞세운 정치적 재정인지, 물가 충격을 줄이는 표적 지원인지,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추가 변수인지가 동시에 묻히고 있다.

이번 추경의 역기능도 분명하다. 고유가와 고환율이 이미 수입물가를 밀어 올리는 시기에 체감형 재정이 빠르게 투입되면, 정책 의도와 별개로 물가 기대를 자극하거나 선거용 재정이라는 의심을 더 키울 수 있다.

반면 재정을 늦추면 중동 변수와 내수 부진이 겹친 현장의 충격을 흡수하기 어렵다. 선거 전 추경이어서 문제가 되는지, 아니면 어떤 항목을 어떤 속도로 집행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지가 관건이다.

답은 결국 숫자와 성과에서 나와야 한다. 기획처가 짧은 반박을 넘어 항목별 소비 효과와 물가 파급 경로를 더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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