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최경주의 조언 듣고 ‘아멘 코너’를 돌다…‘골프 천국’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의 꿈같은 라운드
니클라우스·우즈·매킬로이 등 이용 락커룸 사용
베일 싸인 ANGC 그린피·그린 스피드 직접 확인

‘명인열전’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취재하면서 ‘골프천국’ 오거스타 내셔널GC(이하 ANGC)를 라운드하는 행운을 잡았다.
비회원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ANGC에서 비회원이 라운드를 할 수 있는 방법은 회원 동반 또는 마스터스 기간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런데 비회원인 기자에게 라운드, 그것도 마스터스가 끝난 직후인 월요일에 라운드하는 엄청난 행운이 찾아 왔다.
전혀 기대치 않았던 ‘프레스 로터리(press lottery)’에 당첨돼서다. ANGC는 매년 대회를 취재온 기자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20~30명에게 월요일에 토너먼트 코스를 체험하는 기회를 준다.
ANGC내 프레스 빌딩 데스크에 취재 등록 때 7년 이내 당첨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기자들은 그 기회를 잡기 위해 ‘프레스 로터리’에 응모한다. 올해가 첫 마스터스 취재인 기자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응모했다.
통상적으로 2라운드 때 전광판을 통해 당첨자가 발표되는데 거기에 또 한 명의 한국 기자와 함께 내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올해는 500명 중 20명을 선발했다고 하니 당첨 확률 4%의 행운을 잡은 셈이다. 이벤트 명칭 대로 ‘복권(lottery)’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36년 골프 기자 커리어에 화룡점정을 찍게 되었다는 뿌듯함에 월요일 라운드까지 잠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가슴 설렌 매그놀리아 레인과의 첫 만남
현지시간 토요일에 당첨자 오리엔이션에서 월요일 12시50분 티타임을 받았다. 그날 밤 11시35분 귀국 항공편이어서 시간상 촉박해 티타임 변경을 조심스럽게 타진했다. 하지만 항공편을 변경하라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역시 ANGC다운 처리 방식이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알게된 대만 출신 현지 주민 콴 쿠오씨가 우리의 픽업을 도와 주었다. 미국 골프채널 리포터로 활동하면서 ANGC 라운드 경험이 6차례나 된다는 콴씨는 “비공식적이지만 이번 라운드 티켓은 8만 달러 가치가 있다”고 했다.
초청장에 명기된 도착시간 11시50분에 3번 게이트를 통해 클럽하우스로 이르는 유서깊은 매그놀리아 레인과 조우했다. 대회 기간에도 기자들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 길을 거쳐 갔을 수많은 레전드들이 오버랩 되면서 감동이 벅차 올랐다.

#골프 박물관을 옮겨 놓은 듯한 클럽하우스
클럽하우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골프장 직원의 안내에 따라 2층 락커로 향했다. 잭 니클로스, 아놀드 파머, 게리 플레이어, 타이거 우즈 등 역대 챔피언들이 사용하는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 입었다. 4인 1조인 우리팀이 사용할 락커는 1967년 대회 우승자 게이 브루어, 2009년과 2013년 대회 챔피언 앙헬 카브레라(아르헨티나)의 명찰이 붙은 락커룸이었다.
3층인 클럽하우스는 규모 면에서는 전혀 화려하지 않고 소담스러운 분위기였다. 1층에는 편의시설, 2층은 챔피언 락커룸, 그리고 3층은 미래 세대인 아마추어 골프대회 참가 선수들을 위한 숙소로 이용된다고 했다.
클럽하우스는 골프 박물관 그 자체였다. 역대 챔피언들이 입었던 그린재킷에서 부터 아이젠하워 트리와 아이젠하워 캐빈 등 마스터스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흉상, 역대 챔피언들의 역사적인 세리모니를 재현한 동판, 그리고 챔피언들이 기증한 애장품 등 마스터스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스코어카드상 티잉그라운드는 마스터스와 멤버스 둘 뿐
클럽하우스 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됐다. 이곳저곳을 눈으로만 샅샅이 훑느라 티타임 5분전에 1번 홀(파4) 티잉그라운드에 부랴부랴 도착했다. 골프장 관계자의 주의 사항을 들은 뒤 동반자인 USA투데이의 댄 스피어스, 영국 데일리메일의 리애드 알 서머라이 등과 인사를 했다.
관계자로부터 받은 스코어카드상 티잉그라운드는 멤버스 티(Members Tees)와 마스터스 티(Masters Tees) 둘 뿐이었다. 그린 중앙 기준으로 마스터스 티 전장은 7565야드, 멤버스 티는 6365야드로 멤버스 티가 1200야드 짧았다.
일요일밤 마스터스 첫 취재를 축하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온 ‘탱크’ 최경주프로로 부터 여러 팁을 전수 받았다. 그의 마스터스 출전 경험은 12차례로 한국인 통산 최다 출전이다. 그런 만큼 ANGC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다.
#역사적인 1번 홀 티샷 감흥 영원히 못잊어
라운드는 1캐디1백이었다. 1번 홀(파4)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선 순간 “여기에 내가…”라는 생각에 전율이 느껴졌다. 하루 최다 관중 5만명의 함성만 없을 뿐 갤러리 스탠드, 핀 위치 등은 대회 최종 라운드와 똑 같아 그 아우라에 압도될 수 밖에 없었다.
역사적인 첫 스윙을 했다. ‘1번홀은 오른쪽으로 가면 죽음’이라는 최프로의 말이 떠올라 왼쪽으로 당겨지는 티샷을 했다. 볼이 나무 밑으로 떨어져 레이업한 뒤 3온 2퍼트 보기로 ANGC의 첫 홀을 마쳤다.
2번 홀(파5)에서는 티샷이 오른쪽 페어웨이 벙커로 떨어졌다. 벙커의 모래가 그동안 경험했던 것과 달랐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스프루스 파인 광산 지구의 장석 광산에서 부산물로 생산되는 과립형 석영이었다. 마치 인절미 가루처럼 입자가 고운데 일반 모래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벙커는 턱이 높고 경사가 가팔랐다. 높은 턱을 고려해 9번 쇼트 아이언으로 샷을 했다. 그럼에도 벙커턱에 바운스된 뒤 핀까지 165야드 지점에서 떨어졌다. 7번 아이언으로 세 번째샷을 핀 15m 지점에 올렸다. 하지만 3퍼트로 또 보기를 했다.
#전반 9홀에서 48타로 혹독한 신고식 치러
3번 홀(파4). 대회 때 많은 선수들이 원온에 성공한 홀이다. 멤버스 티는 마스터스 티보다 10야드 짧은 340야드로 세팅됐다. 5번 우드로 티샷해 핀까지 120야드를 남겼다. 피칭웨지로 날린 두 번째샷이 그린을 훌쩍 넘어가 있었다. 쇼트 게임이 서툰데다 그린 폭이 좁아 냉온탕을 거듭하다 트리플보기로 홀아웃했다.
3번 홀을 마치고 나서 ‘스코어에 집착할 것인가, 코스를 구석구석 체험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구력 30년, 핸디캡 7, 홀인원 4회, 라베 70타의 골프 커리어이지만 렌탈 클럽으로는 좋은 스코어를 기대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결국 후자를 택했다. 다만 ‘아멘 코너’에서는 집중해서 스코어를 내보기로 했다.
무수히 많은 벙커와 숲속을 전전하면서 전반 9홀을 48타로 마쳤다. 전장 450야드로 가장 긴 파4홀인 10번 홀에서 3온2퍼트 나이스 보기로 홀아웃하며 백나인을 기분좋게 출발했다.

#악명 높은 ‘아멘코너’ 원 볼 플레이로 2오버 기록
지구상 모든 골퍼들의 동경의 대상인 ‘아멘 코너’의 첫 번째홀인 11번 홀(파4), 화이트도그우드의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섰다. 긴장과 희열이 교차했다. 핀까지 175야드를 남기고 두 번째샷을 그린 오른쪽으로 쳤다. 캐디가 제대로 된 공략이라고 엄지척을 했다.
그린 왼쪽으로 길게 뻗은 연못이 위협적이어서다. 게다가 핀도 왼쪽에 꽂혀 있었다. 6번 아이언으로 친 두 번째샷이 그린에 20야드 가량 못미쳤으나 세 번째샷을 홀 2m 지점에 떨궈 파 세이브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잔뜩 긴장한 퍼터가 말을 듣지 않아 아쉽게 보기로 홀아웃했다.
아쉬움을 남긴 채 ‘골든벨’로 불리는 12번 홀 티잉그라운드로 향했다. 폭이 좁은 그린 왼쪽엔 벤 호건 브릿지, 오른쪽엔 바이런 넬슨 브릿지, 그리고 앞쪽으로는 초기 정착민 존 래의 이름에서 따온 ‘래의 크리크’가 흐른다. 풍광만으로는 평화롭기 그지 없다.
하지만 아니다. 아멘 코너 중에서도 선수들을 가장 괴롭히는 홀이다. ANGC 4개의 파3홀 중 가장 짧다. 올해도 전장 155야드였다. 그럼에도 세계 최정상의 선수들이 혼쭐이 난다. 바람을 잘못 읽거나 스핀이 과도하게 걸릴 경우 경사면을 타고 물속으로 직행한다. 2015년 대회 우승자인 조던 스피스(미국)가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스피스는 2016년 대회 때 이 홀에서 공을 두 차례나 물에 빠뜨리는 바람에 다잡았던 2연패를 기회를 놓쳤다.
멤버스 티에서 거리는 마스터스 티보다 10야드 짧은 145야드였다. 평상시 같으면 9번 아이언 거리지만 캐디가 8번을 권했다. 코를 스칠 정도의 약한 바람 때문이었다. 티샷은 핀 왼쪽 10m 지점에 온그린됐다. 버디 기회였으나 주눅이 들대로 든 퍼터가 이번에도 힘을 발휘하지 못해 아쉽게 3퍼트 보기를 범했다.
13번 아젤리아 홀을 향하면서 바이런 넬슨 브릿지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다리 아래 맑은 크리크 물속을 유유자적하는 송어와 자라 무리가 낯선 이방인의 노고를 위로하는 듯했다.
13번 홀은 티샷에서 서드샷까지는 개인적으로 샷오브더데이였다. 세 차례 샷 모두 완벽에 가까웠다. 약간 좌도그렉홀로 왼쪽 크리크와 오른쪽 숲으로만 티샷을 보내지 않으면 파는 무난한 홀이다. 다만 세 번째샷은 신경을 써야 한다. 빠른 그린 때문에 핀을 오버했다가는 자칫 곤욕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의식해 5m 내리막 퍼트를 거의 터치만 하다시피 퍼트를 했다. 다행히 볼은 홀 바로 옆에 멈춰 파를 잡았다. 그렇게 해서 아멘 코너의 스코어는 2오버로 나쁘지 않았다.
#15번과 16번홀서 우즈의 흔적 만끽
2013년 대회 때 오소 플레이로 스코어 카드를 제출한 우즈가 실격 대신 2벌타만 받아 논란이 됐던 15번 홀(파5), 2005년 대회 때 우즈가 그린 뒤편 러프에서 친 칩샷이 그린 경사를 타고 굴러 멈출 듯하다 홀 속으로 사라지자 ‘피스트 펌프’를 하며 포효했던 16번 홀(파3)의 여운도 만끽했다.
아이스 폭풍으로 2014년에 없어진 ‘아이젠하워 트리’가 있었던 17번 홀(파4)을 지나 ANGC에서 가장 높은 곳에 그린이 있는 18번 홀(파4)에 다다랐다. 매킬로이가 그랬던 것처럼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렸으나 레이업한 뒤 3온 2퍼트로 홀아웃했다. 후반 44타, 토털 92타. 그렇게 나의 역사적인 ANGC의 라운드는 끝났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ANGC의 아우라와 아직도 귀에 생생한 갤러리(패트론)의 함성을 뒤로 한 채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돌려 애틀란타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한동안 나의 ‘ANGC 앓이’는 계속될 듯하다.

■오거스타 내셔널GC에 대한 잘못된 진실
#유리알 그린 스피드는 아무도 몰라
마스터스는 4대 메이저대회 중 한국 선수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회라고 한다. 18홀 라운드를 마친 뒤 기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우선 페어웨이가 넓고 러프가 길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려운 것은 그린과 유일한 페널티 구역인 그린앞을 지나는 크리크와 연못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NGC의 그린(벤트그래스)은 딱딱한데다 워낙 빨라 ‘유리알 그린’으로 불린다. 하루가 지났지만 그린 스피드의 위세는 대단했다. 캐디가 13피트(3.96m) 정도 돼 보인다고 했다. 그가 스피드를 추정치로 얘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린 경도와 스피드를 예고하지 않는 ANGC의 전통 때문이다. 최경주프로에 따르면 대회 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ANGC의그린 스피드가 4~4.5m 사이라는 얘기는 뇌피셜이었다는 게 입증된 순간이었다.
그린 주변에 벙커가 없는 홀이 없었다. 또 대부분이 엘리베이티드 그린(elevated green ), 일명 포대그린이어서 경사면에 떨어지거나 과도한 스핀이 걸리면 굴러 내려가게 돼 있었다. 그 경우 앞쪽에 페널티 구역이 있으면 대참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다행히 기자는 한 번도 볼이 물에 빠진 적은 없었다.
내리막 경사가 심해 선수들이 핀오버를 하지 않으려는 것도 스스로를 발목 잡는 원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 대회 13번 홀의 우즈 같은 경우다. 당시 우즈는 두 번째샷을 그린에 올렸으나 이글 퍼트가 홀을 지나 내리막경사를 타고 그린앞 개울에 빠져 버리는 황당한 참사를 맛봤다.
최경주는 “최근 들어 기후 때문에 관리가 어려워서인지 그린 스피드가 예전만큼 빨라 보이지 않았다”며 “핀오버를 하면 죽음이라 선수들은 특히 앞쪽 핀일 때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했다.
천하의 ANGC도 이상 기온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패트론이 가로 질러 지나는 길인 ‘크로스 웨이’가 아닌 페어웨이 곳곳에도 ANGC의 고유 컬러인 진한 녹색이 아닌 곳이 더러 보였다.
#‘비회원 그린피’ 고액?…그린피 개념 자체 없어
ANGC와 관련된 뇌피셜은 또 있었다. 그린피다. ANGC의 비회원 그린피가 구체적 금액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믿을 수 없는 ‘카더라 통신’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클럽하우스 프론트에 그린피와 관련된 게시물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엄격하게 운영되는 프라이빗 클럽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의 ‘비회원 그린피’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300명으로 알려진 회원수도 정확한 수는 아니다. 회원이 동반한 비회원 그린피는 여타 프라이빗 골프장보다 저렴한 $350~$500 정도로 추정될 뿐이다. 이 또한 비회원이 직접 내는 게 아니고 회원 계정으로 청구된다.
#멀리건은 주지도 받지도 않아
좋은 골프장에 가서 라운드 할 때 미스샷이 나오면 한 번 더 쳐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셀프건, 동반자 권유에 의해서건, 혹은 캐디의 배려에서건 간에 ANGC에서 멀리건은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일련의 과정이 홀을 거듭할수록 아주 당연하게 느껴졌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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