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목숨 끊으면 지옥 갈까요?” 그 청년 뒤바꾼 3000원 밥상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 안 오래된 건물 2층.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밥집이 하나 나온다. 청년을 위한 3000원짜리 김치찌개로 유명한 식당, ‘청년밥상문간’이다. 주인장은 18년째 사제의 길을 걷고 있는 이문수 신부다. 그는 9년 전, 천주교 글라렛선교수도회의 동의를 얻어 이곳에 식당을 열었다.
" 밥은 드셨어요? " 지난 13일 오후 5시, 이른 저녁 시간. 함박웃음을 머금은 듬직한 체구의 이 신부가 건넨 첫마디였다. ‘꼬르륵….’ 대답도 전에 배가 반응했다. 사실 구수한 흰 쌀밥 향과 시큼한 김치 냄새에, 식당 문을 열기도 전부터 이미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던 참이었다.
신부님이 차려준 따끈한 김치찌개 한 상으로 허기를 달래고 보니, 이미 이곳은 저녁 식사 손님으로 꽉 차 있었다. 16평(53㎡) 크기의 식당에 놓인 테이블 10여개는 문 연 지 10분 만에 들어찼고, 계단을 타고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손님들은 이미 식당의 시스템이 빠삭한 듯, 능숙하게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셀프로 밥과 반찬을 마음껏 가져다 먹었다. 마치 할머니 집에 온 손자들처럼, 눈치 볼 것 하나 없이 양껏 즐기는 편안한 식사였다. 주방에선 그런 손님들을 한 명 한 명을 살피며 찌개를 끓여 내왔다. 마치 내 식구의 밥상을 준비하듯이.

" 청년밥상문간 손님은 모두 식구죠.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이잖아요. 저렴한 가격도 좋지만, 온정을 느끼려고 오는 분들이 많아요. 청년만 오는 곳이 아닙니다. 일주일에 6일 내내 찾는 50대 중년도 있고,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손으로 짚으며 올라오시는 어르신도 계세요. 모두 사람 그리워서 오시는 단골들이에요. 동네 사랑방 다 됐어요. "
로만칼라(성직자 예복) 셔츠에 앞치마를 두른 이 신부는 식당 한편에 서서 식사 중인 손님들을 내내 넉넉한 미소로 바라봤다. 그는 어쩌다 이토록 따뜻한 사랑방의 주인장이 됐을까. 청년 시절 대학 입시에서 삼수 끝에 성균관대 고분자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신부의 길을 택했던 그가, 지금 청년들에게 김치찌개 한 냄비와 함께 건네고픈 진심은 대체 뭘까. 그래서 그를 만나 물었다.
" 신부님이 김치찌개에 담아 전하고 싶은 온정이란, 어떤 마음인가요? "
📌우연의 연속, 하늘의 계시였을까?
Q : 성직자가 어쩌다 김치찌개집 사장님이 되셨어요?
2015년에 고시원 생활을 하던 한 청년이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본 게 발단이었어요. 엄청 충격적이었어요. 일반적으로 노인이나 노숙인의 끼니를 걱정하지, 청년의 끼니에 대해 고민한 적은 없었거든요. ‘밥이 기본인데, 밥은 굶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더라고요.
때마침 수녀님들이 청년을 위한 밥집을 열어보자고 제안하셨어요. 아마 다른 일이었으면 그냥 웃어 넘겼을 텐데, 이상하게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수도회에 보고를 했더니 단박에 허락이 떨어졌고 심지어 “네가 해봐라”고 하셨죠. 사실 제가 나서는 성격이 아닌데, 그날은 얼결에 “네”라고 고분고분 답을 하고 맡게 됐어요.
(계속)
이 신부는 청년을 위한 밥집을 무료 급식소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무료 식당’이라면 청년들이 한 명도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다.
" 돈 내고 당당하게 먹는 ‘진짜 식당’을 만들자고 다짐했어요. 재벌도, 자립 청년도 밥값 내고 먹으면 똑같은 손님으로 대접받는 그런 곳이요. "
식당을 열자고 마음먹고 나니 행운이 이어졌다. 정릉시장 안 오래된 건물을 우연히 발견하고, 단박에 계약한 게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9년, 청년밥상문간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전국 5곳으로 지점을 확장했다. 3000원이란 저렴한 가격, 얼큰하고 시원한 김치찌개 맛집으로 입소문 나면서 줄 서는 식당이 됐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 팔면 팔수록 손해라는 이 신부의 김치찌개. 과연 3000원을 고수할 수 있을까?
밥집 사장이 된 신부가 김치찌개에 담은 위로 한 그릇, 아래 링크를 동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5093
-우연의 연속, 하늘의 계시였을까?
-“정말 지옥에 떨어질까요?” 청년 목숨 살린 세 글자
-한결같은 김치찌개 맛, 비결은 ‘이것’
-9년 째 유지해온 3000원, 언제 오를까?
■ ‘더 마음’ 기사를 더 읽고 싶다면
「 ‘청부살인’ 영남제분 사모 꾀병…제보자는 나영이 주치의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05776
“청량리 성매매女, 반전이었다” 노숙자 돌보는 여의사의 그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99507
“치매母, 파킨슨父 왜 나만 돌봐!” 딸 불평 잠재운 부모 호통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94476
“17살 내 딸 추모회 엽니다” 자살로 딸 보낸 엄마의 애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89304
」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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