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T, 초거대 조선업 AI 개발 착수… 동남권 ‘제조 AX’ 이끈다
400억대 규모 대형 프로젝트 맡아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실증까지
연구 중심 대학 넘어 현장과 호흡
지역 산업 미래 설계 중심축으로

과거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을 뛰게 했던 ‘산업수도’ 울산의 공장 굴뚝 위로 거대한 데이터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단순 제조를 넘어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한 자율 생산 체계로의 전환, 즉 ‘제조 AX(AI 전환)’의 서막이 올랐다. 그 중심에서 혁신의 설계도를 그리고 실행 엔진을 돌리는 주인공은 바로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다. UNIST는 이제 상아탑을 넘어 지역 산업 전체를 가동하는 중심축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 연구·개발(R&D)은 중앙정부가 기획한 판에 지역이 응모하는 ‘수동적 톱다운’ 방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UNIST는 정부의 ‘4극 3특 지역연구개발혁신지원사업’을 통해 이 관행을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131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한 데 이어 내년부터는 매년 최소 260억원 규모의 대규모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는 단순한 자금 수혈이 아니다. 직접 기술 수요를 정의하고 연구와 현장 적용을 주도하는 ‘R&D 지방자치’의 실질적 모델이 마련되고 있다는 관측이 뒤따른다. UNIST가 동남권 산업의 기술 이정표를 세우는 명실상부한 ‘컨트롤 타워’로 우뚝 섰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UNIST를 ‘동남권 AX 전초기지’로 낙점한 데는 AI 역량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해양, 우주항공, 소재 등 동남권 핵심 산업에 AI를 융합해 ‘지능형 자율 설계·생산 체계’를 구축할 최적의 역량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UNIST가 계획하는 ‘제조 AX’는 개별 기업의 공정 개선을 넘어선다. 설계부터 공정, 운영에 이르는 밸류체인 전체의 데이터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산업 생태계 전반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게 목표다.
대학, 출연연, 기업이 뭉친 ‘산·학 AX 공동연구소’는 실험실의 원천기술을 생산 라인에 즉시 안착시키는 ‘혁신 가이드’가 된다. 현장 숙련공의 암묵지를 데이터화해 AI 기반의 의사결정 체계로 전환함으로써 제조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린다.
실질적인 성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UNIST가 지난해 11월 HD현대그룹과 맺은 조선·해양 AI 기술개발 협력이 대표적이다.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로보틱스 등과 손잡은 이 프로젝트는 방대한 조선업 데이터를 자산화해 ‘조선 특화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통해 숙련공의 노하우를 데이터화하고, 선박 설계와 건조 과정을 자동화함으로써 세계 1위 조선 강국의 위상을 높인다는 포석이다.

UNIST의 조선 AX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초거대산업 AI 연구지원사업’ 조선 분야 총괄연구기관으로 최종 선정되며 총 403억원 규모의 대형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HD현대중공업·HD한국조선해양·크라우드웍스와 컨소시엄을 꾸려 조선소 설계 도면, 작업 지시서, 현장 영상, 센서 데이터 등을 통합 학습하는 멀티모달 기반 초거대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실증하는 단계까지 들어갔다.
이 사업에는 UNIST 인공지능대학원과 산업공학과, 컴퓨터공학과, 기계공학과, U미래전략원 연구진이 참여한다. 대학의 AI 연구 역량, 조선 산업 현장의 데이터와 도메인 지식, 데이터 전문기업의 기술력을 한 축으로 묶어 선박 설계와 생산계획 등 핵심 과업을 자동화·최적화하는 구조다. 동남권 제조 AX를 총괄할 대학으로서 UNIST의 위상이 선언을 넘어 구체적 연구개발과 현장 검증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래 산업을 지탱할 자본과 인재 공급망도 촘촘히 구축했다. 동남권 유일의 AI 대학원을 필두로, 재직자 대상의 ‘노바투스대학원’을 2026년까지 미래에너지·산업안전 등 5개 전공으로 확대한다. 올해 신설된 ‘AI & 휴먼(Human) 융합대학’은 학부 단계부터 창의적 인재를 양성한다. ‘유니스트기술지주’는 최근 120억원 규모의 공공기술사업화 펀드를 확보하며 팁스(TIPS) 운영사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특히 서울 강남 사무소 개소는 지역의 혁신 기술이 글로벌 자본과 만나는 핵심 교두보 역할을 수행하며 초기 투자부터 ‘스케일업’까지 책임지는 환경을 조성했다.
박종래 UNIST 총장은 15일 “UNIST는 이제 연구 중심 대학을 넘어 지역 산업의 미래를 설계하고 실제로 작동시키는 ‘오퍼레이팅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정부 기획 받아 적던 시대 막내려… R&D 자치 새 지평 열 것”

“이제 중앙정부의 기획안을 받아 적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지역이 스스로 기술 수요를 정의하고 혁신을 설계하는 ‘연구·개발(R&D) 지방자치’가 대한민국 산업의 새 지평을 열 것입니다.”
박종래(사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총장은 1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엔진이었던 울산이 이제 ‘제조 AX(인공지능 전환)’라는 거대한 전환점에 섰다”며 “그 중심에서 UNIST가 혁신의 설계도와 실행 엔진을 동시에 제공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총장은 이번 UNIST의 ‘지역 R&D 본부’ 선정이 단순히 예산 확보 차원을 넘어 지역 R&D 주권 확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제시한 UNIST의 새 정체성은 ‘오퍼레이팅 아키텍트(Operating Architect)’다. 즉 권역 자율형 R&D 체계가 현장에서 원활히 구동되도록 기획과 조정, 성과 확산을 책임지는 설계자이자 운영자가 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박 총장은 네 가지 핵심 실행 축을 강조했다. 주력 산업 AX를 통한 초격차 기술 확보, 고급 과학기술 인재의 지역 정주화, 개방형 연구 플랫폼 구축, 딥테크 창업 생태계 활성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조선해양·우주항공 등 동남권 주력 산업에 AI를 융합해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정부의 과기원 AX 전략과도 궤를 같이한다. 나아가 UNIST는 울산·부산·경남 지역과의 ‘공진화(Co-evolution)’를 목표로 삼고 있다. 지역 공동체와의 공동 성장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박 총장은 “UNIST가 동남권 산업 혁신의 플랫폼이 되어 부·울·경을 세계적인 연구개발 집적지로 변모시키겠다”며 “지역 현장에 뿌리내린 기술이 기업의 경쟁력이 되고 그 결실이 다시 지역의 성장과 청년들의 일자리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울산과 경남을 잇는 동남권 벨트가 전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한 산업 혁신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울산=조원일 기자 wc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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