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트럼프는 싫지만 미국은 필요하다

외교에 대한 대중의 인식 조사를 늘 챙겨보는 필자는 이달 초 아산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인의 대외 인식 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우호적인 시각이다. 16년 전 아산연구원이 조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일본에 대한 인식이 10점 만점에 5.11점을 기록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외 지도자로 등극했다는 사실이다. 전례 없는 일이다. 한·일 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칼럼을 기고해 온 필자 입장에서는 반가우면서도 놀라울 수밖에 없다. 필자는 총 세 가지 요인으로 이번 현상의 원인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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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연 조사, 트럼프 호감도 추락
한국인 97%가 한·미 동맹 지지
주한미군 주둔 지지도 역대 최고
」

먼저, 중국의 강압으로 인한 구조적 영향이다. 이번 조사를 보면 한·일 국민은 중국의 강압적 태도에 대한 시각이 매우 비슷하다. 둘째, 일본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10년 전 처음 발표됐을 때만 해도 한국은 배제됐으나, 한국과의 관계 개선 없이는 아시아 내 유리한 힘의 균형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본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셋째, 한·일 정상 간 극과 극의 만남이다. 헤비메탈 드럼 연주를 즐기는 일본의 우파 총리와 한국의 진보 대통령이 이색적인 케미를 보이며 양국 관계를 진전시키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또 주목할 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하고 분열적인 리더십에도 불구하고 한·미 동맹이 견고하다는 점이다. 트럼프 개인에 대한 호감도는 2.91점으로 추락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2.29점)을 간신히 웃도는 수준이지만,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5.9점으로 여전히 우호적이다. 파트너국으로 미국은 중국(10.8%)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71.4%의 응답자가 선택했다. 한국인은 인적 교류, 재계 및 제도적 수준에서 이뤄지는 한·미 교류와 트럼프라는 개인을 분리해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74.7%가 미국을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로 꼽았지만, 중국은 19.7%에 그쳤다(10년 전엔 중국이 더 높았다). 중국과 미국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각은 일본, 이스라엘, 폴란드, 필리핀과 같이 미·중 전략 경쟁의 최전선에 위치한 다른 동맹국들과 유사하다.
한·미 동맹에 대한 지지율은 실로 놀랍다. 한국인의 97.1%가 동맹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대규모 여론조사의 오차 범위가 보통 3% 내외임을 감안하면, 이론적으로는 100% 지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K팝에 대한 한국인의 지지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물론 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인정과 그 동맹을 실제로 지지하느냐는 다르다. 그러나 지난 2002년 필자가 백악관에서 근무할 당시 한·미 동맹 강화를 원하는 한국인은 20%에 불과했고 50% 이상이 미·중 사이의 중립 노선을 선호한다는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조사를 지켜봤던 터라 현재의 숫자는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이번 조사 결과 중에는 안주해서는 안 되는 대목도 있다. 주한미군 주둔 지지율은 현재의 안보 위협을 반영하듯 8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통일 후 주둔에 대한 질문에는 찬성 의견이 47.8%로 이전 조사보다 14% 포인트 하락했다. 미국의 강대국으로서의 지속 능력에 대한 불확실성도 감지됐는데, 미국과 중국 중 미국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은 작년 86%에서 올해 72%로 떨어졌다(중국 선택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한·미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는 2025년 47.3%에서 올해 55.3%로 오히려 증가했다. 미국이 한국 수호를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신뢰도는 59.1%로, 202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상충하는 수치들은 세계 질서 관리자로서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에 대한 의구심이 증대하지만, 역설적으로 관리자로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번 조사는 이란 전쟁 발발 이전에 진행됐다. 전쟁으로 미국 대통령의 판단력과 동맹 처우, 혹은 여러 전장에서 군사력과 탄약 보급을 유지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이번 전쟁이 미국의 결단력과 작전 수행 능력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적 존재감이 필요한 한국인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벌써부터 내년 여론조사가 기다려진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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