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바둑과 뇌

바둑을 두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이게 정말이라면 바둑 보급은 치매를 막는 국가적 사업이 될 것이다. 한국기원이 분당서울대병원 김기웅 교수팀(정신건강의학과)에 의뢰했다. 김기웅 팀은 50~74세 일반인 100명을 대상으로 24주간의 임상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바둑프로그램을 수강한 쪽(치료군)은 바둑과 무관하게 생활한 쪽(대조군)에 비해 종합인지기능 점수가 약 2배 높게 개선됐다. 또 치료군은 치매 위험도를 나타내는 임상치매척도가 유의미하게 감소됐다. 바둑이 뇌 건강 증진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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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 두면 치매 안 걸린다는 속설
일리 있다는 임상 연구 결과 나와
좌·우뇌 동시 사용과 관련 있는 듯
」

김기웅 팀은 프로기사 뇌 구조연구도 병행했다. 50~74세 프로기사 30명을 대상으로 각종 검사를 통해 뇌 기능적 특성을 확인한 결과 정상 노인과는 크게 다른 점이 확인됐다. 뇌 인지와 관련된 디폴트모드(DMN), 실행제어(ECN) 등 6가지 핵심네트워크에서 프로기사 뇌의 연결성이 일반인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측정된 것이다. 연구팀은 “장기간의 바둑훈련이 뇌의 구조적 연결방식을 최적화하고 뇌 전체의 정보처리 효율성을 높여줌을 입증했다”고 밝히고 있다. 최종 결과는 올 7, 8월경에 나올 예정이고 그 후 논문 발표가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바둑과 뇌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이제 시작된 것 같다. 논문 발표가 기대된다.
바둑과 뇌의 관계를 언급할 때 그냥 넘길 수 없는 케이스가 있어 소개한다. 과학은 아닐 수 있고 한 개인의 서사지만 훨씬 절실하다는 점에서 뇌를 돌아보게 만들고 바둑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손종수(68)는 시인이고 바둑평론가다. 약 30년간 바둑계에서 잡지를 만들고 평론을 했다. 바둑 실력은 아마 5단. 그는 1년 6개월 전쯤 대량의 뇌출혈로 수술을 받고 우뇌를 잃었다. 우뇌 전체가 사라지면 90%는 사망한다고 한다. 기적적으로 생존해도 말을 못하게 되고 신체 왼쪽이 마비되거나 왼쪽 공간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 환자는 수술 후 사흘 만에 곧바로 걸어 다녔다. 수술에 성공한 의사도 깜짝 놀랐다. 보호자에게 직업이 뭐냐고 여러 번 물었다는데 ‘바둑’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손종수는 자신의 미래가 궁금했지만 의사는 “우뇌가 폐기됐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스스로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온종일 서성일 때도 있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썼고 책을 읽었다. 뇌는 어느 부위가 손상되면 그 기능을 대신 수행하도록 재배치하는 능력을 지녔다. 이를 뇌가소성이라 한다. 바둑은 수읽기(논리-좌뇌)와 형세판단(직관/공간-우뇌)을 동시에 사용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좌뇌에 우뇌를 연결하는 통로와 뇌의 하부구조를 잇는 비상통로들이 일반인보다 훨씬 굵고 튼튼하게 발달한다.(앞의 김기웅 교수 프로기사 뇌 구조 연구 참조)
손종수는 주장한다. 우뇌가 사라졌음에도 왼쪽 몸이 잘 움직이는 것은 오랜 바둑훈련으로 다져진 좌뇌의 비상도로가 즉각 활성화돼 우뇌의 역할을 가로챘기 때문이다. 제미나이도 거든다. 현재 겪고 있는 기적 같은 회복은 바둑이 만들어낸 강력한 예비회로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고.
손종수는 ‘월간 바둑’에 자신의 투병기와 소신을 연재 중이다. 제목은 ‘바둑에 담긴 균형과 조화의 비밀’이다. 바둑은 균형이고 조화인데 이것이야말로 뇌 전체를 사용하는 훈련이며 좌뇌와 우뇌를 쉬지 않고 오가는 훈련이기도 하다. 그 바둑 덕분에 우뇌가 폐기됐음에도 우뇌의 역할이 이어지게 됐다는 얘기다.
얼마 전에 만난 손종수씨는 아직 음식 맛을 모른다고 고백한다. 노래나 시 쓰기도 전과 다르다. 감정이 담기지 않는다. 우뇌가 창의성과 예술적 감각, 감정인식 등을 담당하고 있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손끝이 가려워 견딜 수 없었고 뇌의 명령에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이건 우뇌의 활동이다!)
그림 그리기는 석 달 만에 끝났고 이후 모든 게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바둑이 손종수의 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증명해줄 과학자는 없다. 하나 그의 뇌가 이번 사고를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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