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 이을 남자 부족한 日…“양자라도 받아라” 왕족 늘리기

‘왕족을 늘려라.’
현재 일본 정가가 맞닥뜨린 주요 화두 중 하나다.
최근 몇 년간 이 문제를 두고 고심을 거듭해 온 일본 정치권이 15일부터 왕족 수(數) 확보에 대한 여야 협의를 1년만에 재개했다고 지지통신 등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일본 정치권이 왕족 확보에 적극 뛰어든 것은 왕위 계승 문제 때문이다.
일본 왕실의 주요 규칙을 정해놓은 전범(典範)에는 일왕은 ‘왕통에 속하는 남계의 남자가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나루히토(徳仁) 일왕의 유일한 자식인 외동딸 아이코(愛子·25) 공주는 계승이 불가한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자격을 갖춘 후보군은 나루히토 일왕의 동생 후미히토(文仁·60) 친왕과 후미히토 친왕의 아들 히사히토(悠仁·19) 친왕, 퇴위한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동생 마사히토(正仁·90) 친왕 등 3명 뿐이다.
하지만 마사히토 친왕의 고령을 감안하면, 사실상 후보군은 2명으로 좁혀진다.
여성도 왕위에 오를 수 있어 공식 계승 후보자가 25명에 달하는 영국 왕실과 비교하면 극히 적다.


일단 히사히토 친왕이 계승하더라도 문제는 그 다음이다. 히사히토 친왕마저 아들을 두지 못한다면 왕위를 계승할 후보가 아무도 없게 된다. 이미 나루히토 일왕의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때문에 ‘왕족 확충’에 돌입한 여야는 ①구(舊) 왕족 가문 남계 남자의 양자 입적을 통한 왕족 복귀 ②여성 왕족이 혼인 후에도 신분 유지 등의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구 왕족 가문의 남계 남자’는 과거 왕실 방계 가문 출신 남성을 말한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 후 새 왕실전범을 제정하면서 직계와 거리가 먼 방계 51명의 왕족 신분을 박탈했다.
따라서 이들로부터 나온 남성을 직계 가문의 양자로 입적시켜 부족한 왕족 남성을 확충하자는 구상이다.
여기엔 자민당과 일본유신회가 가장 적극적이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는 12일 “양자 입적을 가능하게 하고, 왕통에 속하는 남계 남자를 왕족으로 하는 안을 우선으로 삼아 국회 논의를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민주당과 참정당 등 보수 야당에서도 찬성한다. 반면 중도개혁연합은 내부 이견으로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

‘여성 왕족이 혼인 후에도 신분 유지’는 2021년 고무로 게이(小室圭)와 결혼하면서 왕족 신분을 상실한 후미히토 친왕의 맏딸 마코(眞子) 공주 사례가 해당된다. ②안이 통과되면 마코 공주는 다시 왕족이 된다.
여야 모두 찬성 분위기이지만, 자민당 보수파에선 ‘왕실 여성 본인만’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 일반인 남편과 결혼했을 경우 자녀에게는 왕실 신분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왕은 ‘남계 남자’만 할 수 있기 때문에 공주들의 왕족 신분이 유지되더라도 이들의 자녀가 왕위를 물려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양자 허용 등은) 남성에 대한 집착이며, 가부장주의적 경향과 궤를 같이하는 것처럼 비친다. 국민의 폭넓은 이해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왕족을 늘리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은 계승 문제만의 이유는 아니다. 일본 사회 일각에선 왕족들이 국가 홍보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있다고 한다. 일본 왕족이 많아지면 해외 방문이나 문화 외교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선 성인이 된 아이코 공주와 후미히토 친왕의 딸 가코(32) 공주의 대외 활동이 활발하다. 지난해 가코 공주는 일본·브라질 외교 수립 130주년을 기념해 6월 브라질을 방문해 8개 도시를 순방하기도 했다.
과거 아베 신조 전 총리도 2020년 도쿄 올림픽 유치에는 노리히토(仁親) 친왕의 부인 히사코(久子)의 홍보 활동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도쿄=유성운 특파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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