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작가가 대한민국 속 '빨간 나라'를 주시한 이유

김상목 2026. 4. 1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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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홍주현 감독의 <빨간 나라를 보았니>

[김상목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2년 6월 1일, 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에 '사지'인 경북. 직전 윤석열 대통령 당선 후 지역을 지배하는 국민의힘은 한층 기세등등하고, 대선 후유증에 시달리는 민주당은 도지사 후보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 당시 현직이던 국민의힘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무투표로 당선이 되는 걸 막으려 경북의 유일한 더불어민주당 도의원 임미애가 급히 선거에 뛰어든다.

2024년 4월 10일, 22회 국회의원선거. 2년 만에 정치 지형이 변했다. 윤석열 정부 실정으로 민주당의 권토중래가 예상되는 중, 하지만 (대구) 경북은 정반대다. 보수가 결집하며 역풍이 분다는 관측. 경북 각지에 출마한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들이 분투한다.

15일 개봉하는 리얼 험지선거 휴먼 다큐멘터리 <빨간 나라를 보았니>는 이들이 왜 굳이 경북에서 출마하는지 선거 현장을 쫓으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한국 현실 선거
 <빨간 나라를 보았니> 스틸
ⓒ (주)트리플픽쳐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민의 권한을 위임받아 대표를 뽑는 선거는 자체로 '민주주의의 꽃'이자 해당 사회의 방향타를 정하는 이벤트다.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빨간 나라를 보았니> 전에도 땀 냄새 풍기는 선거 현장 다큐멘터리는 간간이 등장했다. 이들 다큐멘터리들은 양당 대결 구도에서 항상 소외되기 일쑤인 진보정당 도전기에 초점을 맞췄다. 현실 정치에선 외면당하는 소수 정당의 잊힌 선거 과정이 다큐멘터리에선 오히려 소소하나마 관심받는 셈이다.

근래 개봉했던 작품들 중에서는 2018년 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원외 진보정당 녹색당 선거운동을 기록한, 민환기 감독의 2020년 <청춘 선거>가 있다. 만 32세 여성 후보와 소수 정당의 청년들이 제주 특유의 '궨당(권당의 토착 방언)' 문화와 마주치며 벌어지는 다채롭고 낯선 풍경이 가득 담긴 작업이다.

진보정당의 무명 후보가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도전하는 분투를 프로 영화인이 된 오랜 친구가 카메라로 기록한 박홍열 감독의 2019년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2> 역시 세간에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한국 정치의 소외된 단면을 포착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다.

성소수자 국회의원 후보의 도전을 담은 2009년 홍지유 감독의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는 보수세력 혐오에 시달리는 LGBT(성소수자를 지칭하는 약어) 정체성을 드러낸 후보와 선거운동본부의 풍경을 담았다. 재야 극우 정당 후보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운동 과정을 담은 2017년 강의석 감독의 <애국청년 변희재>도 놓칠 수 없다. '종북'이라 칭하던 감독의 촬영 제안을 뜻밖에 수락한 후보와 선거운동원의 행보가 시선을 끈다.

'초-현실'처럼 느껴지는
 <빨간 나라를 보았니> 스틸
ⓒ (주)트리플픽쳐스
앞서 소개한 작품들과 비교해 홍주현 감독의 <빨간 나라를 보았니>는 퍽 다른 지점을 선보인다. 20년 동안 <한국인의 밥상> <VJ특공대> <인간극장> 등의 방송작가로 활동한 감독은 자신의 장기이자 색깔을 정치 소재 다큐멘터리에서도 드러낸다.

감독은 "선거가 심각한 정치적 구호나 심판의 간절함, 상대를 적으로 여기는 투쟁의 영역에 있지 않기를 바랐다. 상대를 구제불능의 적으로 간주하지 않고도, 휴먼 코믹 다큐멘터리로서도 그 모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한국 사회에서 왜 특정 지역만 이리도 완고하게 꽁꽁 얼어붙었을까? 그런 질문에 답할 최적의 대상은 누굴까? 제작진이 주시한 게 바로 경북의 민주당 후보와 운동원들이다.

정권을 누가 잡건 이 지역에선 별 여파가 없다. 세대를 거듭해 축적된 특정 정당의 독식은 이제 지역 사회 시스템 전반에 뿌리를 내린 듯하다. '작대기'만 세워도 당선된다는 탄식과 자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타 당의 후보는 어차피 안 된다며 꿈도 꾸지 말라는 민심이다. 막상 국민의힘(과 그 전신)에 불만은 많은데 바꿔볼 생각은 없다.

2022년 듣기만 해도 막막하고 아찔해 '초-현실'처럼 느껴지는 경북의 선거 현장으로 카메라가 향한다. 초반부터 임미애 도지사 후보의 선거 유세는 짠 내음 가득하다. 명색이 원내 다수당 광역단체장 후보인데 간절히 내미는 명함조차 받지 않고 고개를 돌리며 슬슬 피하는 게 태반이다.

지지하지 않거나 정치에 무관심해도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지경. 조롱하듯 지나가며 툭 던지는 한 마디에 힘이 쑥 빠진다. 열악한 상황에도 제법 선전했다는 평가와 함께 선거 결과가 공개된다.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속에서

2년 뒤 2024년 다시 찾은 경북. 제작진은 좀 바뀐 분위기 있냐며 이제 구면인 관계자들에게 묻는다. 도지사 후보였던 임미애는 험지에서 고생한 보상처럼 비례 국회의원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한참 아래 순번이라 당선을 장담할 수 없다. 서울과 경북을 오가며 선거 지원에 바쁘다.

하지만 총선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2년 전 임미애 후보의 부군으로 소개된 김현권이 구미시에 입후보했다. 사실은 부부가 모두 가시밭길에서 정치 도전을 거듭해 온 셈이다. 이번엔 부부 모두 후보로 나섰다.

어떤 이들은 오해와 억측으로 부부를 공격하기도 한다. 험지를 방패 삼아 실적 없이 혜택을 받거나 경쟁을 피한다는 주장이다. 꿋꿋하던 후보가 눈물을 훔친다. 설움의 표현일 테다. 이 부부만 그런 건 아니다.
 <빨간 나라를 보았니> 스틸
ⓒ (주)트리플픽쳐스
연달아 민주당 간판으로는 험지로 불리는 곳에서 모자가 총선에 출마한 경우도 있다. 그들은 오히려 울분에 차 항변한다. 민주당 깃발을 든 바람에 동네 봉사단체 활동도 참여하기 어렵고, 이웃과 멀어지고 경제적으로도 불이익을 겪는다는 것이다. 각자의 사연과 각오를 가진 경북 각지에 출마한 후보와 운동원들은 애써 변화의 바람을 믿으며 분전한다.

결과는 미디어 조금만 검색해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여전히 경북은 보수정당 아성으로 우뚝 서 있다. 낙선한 후보 중 누구는 정치를 포기하겠다 하고, 누구는 계속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눈물을 삼키며 제발 이번엔 믿어달라던 지지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제작진은 복잡한 속내를 풀이하고 진단하는 대신, 균형과 비례 논리로 일반화한다. 한 지역의 미래를 위해 지금의 지형은 조금은 변화해야 하지 않냐는 것. 동시에 얻는 것 없이 자신을 희생하며 감당하는 이들을 향한 연민이 여백을 채운다. 아, 임미애는 2024년 5월 비례대표로 제22대 국회의원이 됐다.

<작품정보>

빨간 나라를 보았니
2025|한국|리얼 험지선거 휴먼 다큐멘터리
2026.04.15. 개봉|117분|12세 관람가
감독 홍주현
출연 김현권, 임미애, 배영애, 정석원, 이영수, 박규환, 김상우, 황태성
제작 사려니픽쳐스
배급 ㈜트리플픽쳐스
 <빨간 나라를 보았니> 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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